태안사고, GDP 높였다? '환경의 역설'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08.09.2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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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강국을 디자인하라]<1-3>그린GDP, 눈에 보이지 않는 환경비용 잡는 틀

지난해 말 태안에서 발생한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는 엄청난 환경 재난이었다. 태안 주민들은 이 사고로 생계가 끊기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역설적인 사실은 이 사고가 국내총생산(GDP)의 관점에서 보면 성장률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100만여명의 자원봉사자들과 그보다 더 많은 군인, 경찰이 태안에 투입되면서 방제도구 구입비, 교통비, 숙식비 등을 지출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름 쓰레기 처리 비용도 GDP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태안사고, GDP 높였다? '환경의 역설'


 기름 유출 사고로 태안 주민들은 소득 급감을 겪은 것은 물론 크나큰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어야 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복지비용을 더 지출하게 됐다. 그럼에도 막대한 환경 오염으로 큰 피해를 남긴 이 사건이 수치장으로는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이 모순.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경제 분석인 국민총생산(GDP) 등 국민계정(SNA)에는 환경 보호에 지출된 비용을 고려하도록 하는 기준이 없다.



한국은행은 지난 2월 '환경보호 지출계정(EPEA) 개발 결과' 자료를 통해 경제적 관점에서 환경 보호에 지출된 비용을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우리나라가 대기·수질·토양 등 환경 보호를 위해 지출한 비용은 26조5200억원에 달했다.

생산적 부문에 활용되지 못한 채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서만 쓰인 돈이 GDP의 3.1%다. 그나마 여기엔 공장오염 방지 시설에 투자한 비용이나 환경보호기금 등 '직접 시장에 지출된' 금액만 반영됐다. 산업 발전에 따른 환경 오염으로 얻게 된 천식, 아토피 등 난치성 질병 치료비는 물론 깨끗한 물을 마시기 위해 사용하는 비용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산업 발전의 부산물로 얻게 되는 환경 오염을 치유하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을 도외시한 채 단지 환경산업 몇 개를 지정해 100조원을 투자하는 것만으로는 녹색성장의 비전은 공허할 뿐이다. 경제를 보는 새로운 틀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 있다.


이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을 경제분석틀 안에 집어넣고자 하는 시도가 바로 '그린GDP(Green GDP)' 개발이다. 그린GDP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나 자연자원 고갈 등 경제 발전의 부작용으로 인한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을 보완해 만든 경제분석틀이다.

지난 1993년 유엔통계국은 환경 요인을 국민계정에 반영하는 '환경경제 통합계정 핸드북(SEEA)'을 발간해 각국의 지속가능발전 달성 여부를 비교 평가하는 틀을 만드는 시도를 했다.



기존 국민계정(SNA)이 주로 시장을 매개로 하는 경제활동에 한정되는데 비해 환경경제 통합계정(SEEA)은 △경제 내에서의 환경보호활동 △경제와 환경 사이의 자원투입과 오염물질 배출 흐름 △자연자산의 총량과 그 변화량을 포함한다.

우리나라에선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환경부 연구 용역을 받아 SEEA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한국은행이 분석해왔던 환경보호 지출계정 작업도 내년부터는 환경부가 맡아 체계화할 예정이다.

김종호 KEI 정책경제연구실 책임연구원은 "그린GDP 등을 포함시켜 SEEA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정책이 경제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두루 분석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그린GDP가 녹색성장에 투입할 돈을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환경과 관련, 어디가 새는 구멍이고 어디를 막아야 하는지 보여줄 수는 있을 것"이라며 "그린GDP 없이 특정 산업을 육성하는 데만 주력하는 것은 기본 지침 없이 돌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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