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토끼는 이미 내 집안에서 기르는 동물로 우호적 지지 세력을 뜻한다. 산토끼는 길들여야 하는 대상이다. 집토끼와 비교하면 우호적이지 않다.
정당을 비롯한 정치세력들은 이 사이에서 항상 고민한다. 선거를 치를 때나 주요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이 '딜레마'를 겪는다.
반면 '산토끼론자'들은 집토끼의 한계를 강조한다. 외연 확대를 하지 않고는 선거 승리나 정책 추진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운데 대한 반격이었다.
"기존 후보들만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는 주장은 "젊은 층, 중도 세력도 끌고 올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산토끼론'에 밀렸다. 그리고 이는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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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집토끼론'이 용도폐기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8월 한편의 드라마였던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은 집토끼의 위력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승자는 이명박 대통령이었지만 여론조사를 제외한 당원이나 국민선거인단은 박근혜 전 대표를 택했다. 이를 두고 MB캠프에서 뛰었던 강승규 의원은 "집토끼의 힘은 대단했다. 산토끼를 모아올 정도였다"고 평했다.
# 정책 추진 때도 비슷하다. 다만 집권 여당의 경우 통상 집토끼 우선 정책을 편다는 게 중론이다. 지지 세력을 앞장세워 외곽을 확장시키는 수순을 밟는다.
참여정부 때도 그랬다. 당시 여당은 '4대 개혁 입법'에 올인했다. 이중 '사립학교법' '과거사법' '신문법' 등 3가지 법안은 우여곡절 속에 빛을 봤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끝내 손질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수많은 집토끼들이 떠났다.
구여권 인사는 "집권 여당이 확실한 입장을 정하지 못한 채 실용이니 개혁이니 타협이니 하면서 오락가락한 게 결국 패착이 됐다"고 돌이켰다.
# 최근 여권 흐름을 보면 다르지 않다. 감세 정책, 규제 완화, 재개발 재건축, 그린벨트 해제 등 최근 들어 쏟아져 나오는 각종 정책은 집토끼용이다.
그런데 결정적일 때 멈칫한다. 종합부동산세 개편을 놓고 집권 여당이 보이고 있는 모습이 그렇다.
그간 각종 정책을 주도했던 여당의 기세는 찾아볼 수 없다. '당정 협의'를 강조해왔던 여당인데 유독 이 사안만은 '협의'도, '합의'도 아닌 정부의 '입법예고안'이라며 발을 뺀다.
'당론'이란 단어만 나오면 아예 손사래를 친다. '집토끼'를 잡고 싶지만 '산토끼'의 적잖은 비판이 귓전에 맴도는 탓이다.
문제는 이게 '습관'이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촛불'이든 종부세든 '뜨거운 감자' 앞에만 서면 머뭇거리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비겁해 보일 뿐이다.
집에서 산을 걱정하고 산 속에서 집 생각을 하다보면 되는 일이 없다. 지난 정권이 국보법 개정을 놓고 실용이니 개혁이니 우왕좌왕한 이후 그 틀에서 허우적댔던 모습도 겹쳐진다.
여당이면 여당답게 지지 세력의 호응을 토대로 진정성을 갖고 설득해가야 한다. 산토끼도 못 잡으면서 집토끼마저 산으로 도망가면 그 때는 후회해도 늦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