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익거래 뒷짐, 국민연금의 한계

더벨 전병윤 기자 2008.09.1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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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부정적 여론에 '불구경'…외인만 '독식'

이 기사는 09월11일(08:55)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국민연금이 무슨 동네북 입니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일하는 한 직원의 푸념이다. 수익률이 안 좋다고 언론의 뭇매를 맞는데도, 수익을 올릴 기회를 뻔히 보고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게 주식 현·선물 차익거래다. 이 전략은 주식 현물과 선물의 가격 차이를 이용한 동시 매매로 차익을 얻는 걸 말한다. 손실을 볼 위험이 거의 없어 '무위험 차익거래'로 부른다.



운용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국민연금이 이런 거래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사실상 국민연금은 차익거래를 할 수 없는 처지다.

국민연금은 지난 2006년부터 자산운용사에게 인덱스펀드 운용을 맡기면서 전체 자산의 40%이상 현물 비중을 유지토록 하고, 하루에 전체의 5%만 차익거래를 시도할 수 있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국민연금 스스로 막아 놓은 셈이다. 원인은 좀 엉뚱한데 있다. 국민연금의 차익거래 물량이 쏟아져 증시의 급락을 키운다는 여론 때문.


'국민연금의 스위칭 매매로 인해 프로그램 매도가 폭발, 증시 급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식의 비판성 기사를 종종 볼 수 있다.

스위칭 매매는 현물을 갖고 있다가 팔고 선물로 전환하는 걸 뜻한다. 프로그램 매매란 기관투자자들이 대량으로 사고파는 걸 말한다.



물론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차익거래는 양면이 있다. 매도차익(현물 매도+선물매수)을 하려면 매수차익(현물매수+선물매도)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니까 증시 하락에 영향을 주기 전에 상승에 이미 한몫했다는 뜻이다. 여론은 차익거래 물량으로 증시가 오를 때면 조용하다 내리면 들끓는 속성을 보인다.

당시 국민연금에서 일했던 한 담당자는 "당시 증시 조정기여서 여론이 갈수록 악화됐고 결국 감독당국에 불려가 참고인으로 진술까지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고육지책으로 차익거래를 제한하는 자구안을 내놓은 것.

반면 외국인들은 차익거래 시장에서 짭짤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최근 선물 고평가로 인해 베이시스(선물가격-현물가격)가 벌어져 이론베이시스(금리 비용을 감안한 가격)보다 3배 가량 높은 현상이 이어졌다. 차익거래를 시도해 선물·옵션 만기일에 청산할 경우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더구나 외국인들은 거래세(매도금액의 0.3%)를 안 내려고 상장지수펀드(ETF)를 이용한 변종 차익거래까지 나서고 있는 판이다.(8월27일자 기사, 외국인 ETF 차익거래 '절묘한 기법' 참조)

정확한 추정이 어렵지만, 국민연금의 인덱스펀드 위탁운용 자산은 현재 2조원 수준으로 전제 차익거래 시장에서 차지하는 영향력도 작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러나 국민연금 내부적으로 차익거래를 자제해야 한다는 자성도 나온다. 인덱스펀드에서 현·선물 차익거래를 하는 것은 '플러스 알파'를 노리는 것이지 운용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 지수를 잘 따라가도록 현물 주식을 정밀히 구성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원칙론도 적지 않다.



국민연금의 운용자산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차익거래 물량 또한 늘어날 경우 시장에 혼란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신중론 역시 존재한다. 또한 "굳이 욕먹으면서까지 수익을 내야 할 필요가 있냐"는 체념적 반응마저 나온다.

시각은 다양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차익거래 자체를 이렇게 부정적으로 보는 나라도 흔치 않다. 위법도 아니고 금융시장에서 허용하고 있는 투자 전략인데도 유독 국민연금만 나서면 힐난한다.

국민연금은 연금 수급자의 노후자금을 불려야 한다. 총, 칼만 안 들었지 하루하루 수익률 전쟁을 치르고 있다.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낮다고 지적하면서, 한편으로는 너무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는 게 아닌지 함께 고민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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