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리먼 인수전', 이름값 높였다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이새누리 기자 2008.09.10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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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위 투자은행(IB)인 리먼브라더스 인수를 추진했던 산업은행이 야심을 일단 접었다. 산은은 10일 리먼과의 지분인수 협상이 중단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산은이 이 협상에 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외신을 통해 인수설이 제기된 후 3개월여 만이다. 산은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현 시점에서 리먼브라더스와 거래조건에 이견이 있고 국내외 금융시장 상황을 고려해 협상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현 시점에서 중단'은 추가 협상의 여지를 남기는 대목이지만 금융계에선 사실상 리먼과의 협상이 종결된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너무 컸던 가격차= 산은은 간접적으로 리먼 인수에 강한 의지를 내비췄다. 리먼의 브랜드 가치와 우수 인력이 산은의 고객기반 및 자금력과 결합되면 한국도 단숨에 세계적 IB를 갖게 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걸림돌이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양측의 희망 가격차이가 컸다는 후문이다. 외신에 따르면 산은은 리먼 지분의 25%를 60억달러(6조6600억원 상당)에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었다. 이는 너무 높은 수준이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리먼의 추가부실 가능성도 '악재'였다. 컨소시엄 대상으로 거론된 국내 대형 은행들은 부실을 우려해 손사래를 쳤다. 금융계 관계자는 "산은은 외신을 통해 알려진 가격보다 훨씬 낮은 수준을 리먼에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양측이 제시한 가격차이가 상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목 잡은 정부=산은의 최대 주주인 정부도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원론적 수준에서 신중론을 제기했던 전광우 금융위원장의 발언은 갈수록 인수 불가에 기울었다.


전 위원장은 지난 8일 "국내 시장 안정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민영화가 진전됐을 때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못을 박았다. 리먼 인수보다 발등에 떨어진 산은 민영화가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산은의 리먼 인수는 현행 '산업은행법'상 논란의 소지가 다분했다. 산은은 자기자본의 20%를 초과해 리먼의 지분을 취득할 수 없다. 지난 6월말 현재 산은의 자기자본은 17조4107억원으로 자기자본의 20%까지 투자해도 3조4821억원에 불과했다. 외신 보도대로 리먼 지분 25%를 60억달러에 인수하려해도 컨소시엄을 구성하지 않으면 성사되기 어려운 구조였다.



물론 금융위의 승인을 받으면 출자 한도 제한을 피해갈 수 있지만 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란 여파로 당국의 OK 사인을 낙관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성과 남긴 실패"= 리먼 인수가 실패하더라도 산은 입장에서 실보다 득이 많다는 게 금융계의 평가다. 무엇보다 월가에 산은의 존재를 각인시킨 효과가 적잖다.

산은은 리먼 인수설로 외신의 주목을 받은 것은 물론 뉴욕 증시도 흔들었다. 산은의 리먼 인수협상이 결렬됐다고 전해진 9일(현지시간) 리먼의 주가가 45% 폭락한 가운데 뉴욕증시도 급락했다.



아울러 산은이 세계적 IB와 직접 협상을 진행하면서 축적한 경험도 민영화 이후 소중한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현 시점에서 산은이 잃은 건 없는 것 같다"며 "회계적으로 자산손실이 발생해야 '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히려 국제적 인지도를 높였다는 측면에서 큰 소득"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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