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나쁜 비밀과 좋은 비밀

이서경 푸른소나무소아정신과 원장 2008.09.1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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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경의 행복한 아이 프로젝트]

5살 하영이(가명)은 유치원을 가기 싫어하고 자주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평소에 말도 잘 듣고 착하고 순한 아이가 짜증을 많이 내고 잘 먹지도 않아서 부모는 걱정이 되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어느 날 팬티에 피가 묻어 있어서 아이에게 물어보니 유치원에서 남자 아이가 병원 놀이를 하자며 성기에 장난감을 찔렀다는 것이었다.

부모는 너무 놀라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놀이 관찰과 심리 검사를 통해 본 아이의 심리 상태는 자신이 무엇인가에 공격당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감, 원망감 등이 많은 상태였고, 정서적으로도 불안정한 상태였다. 아이의 놀이 치료와 부모 상담을 거쳐 아이는 예전보다 밝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변하게 됐고 병원 놀이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아동의 경우에는 어른이 윽박지르거나 또는 하영이와 같이 또래 친구가 꼬드겨서 영문도 모른 채 성추행을 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러한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아이에게 어떻게 교육을 하는 것이 좋을까.

평상시에 아이에게 우리 몸에 소중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매우 소중하기 때문에 목욕을 하거나 옷을 갈아입을 때 도와주는 부모에게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몸도 내 몸과 마찬가지로 소중하기 때문에 함부로 만지거나 봐서는 안 된다고 설명해줘야 한다. 이러한 설명을 위생상의 문제나 안전감의 문제로 설명해주는 것도 좋다. 다른 사람이 부모가 설명한 것과 다른 얘기를 하거나 행동을 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시켜 주고, 역할놀이를 통해서 시범을 보일 수도 있다. 어른이나 친구의 행동이 부모가 설명한 것과 다르다면, “안 돼”, “싫어”라고 표현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이라고 확신시켜준다.

또 어릴 적부터 신체적 친밀감과 관련한 문제에서 아이 본인의 기분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아이가 할아버지한테 안기거나 삼촌이 뺨에 뽀뽀하는 것을 싫어한다면 “할아버지가 기분 나빠하시잖아, 삼촌이 미워한다”라고 하면서 아이에게 안기거나 뽀뽀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신체적 접촉과 관련해서는 아이의 의사와 기분을 존중하는 것이 추후에 성추행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족 구성원 내에서도 아이가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을 “싫어”라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모들이 평소에 잘 교육하지 않는 부분이 비밀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동생에게 생일선물로 주려고 장난감을 숨겨놓는 것은 좋고 재미있는 비밀이지만, 컵을 깨고 그 조각을 숨기는 것은 나쁜 비밀이다. 아이에게 좋은 비밀은 지켜야 하지만, 나쁜 비밀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해 준다. 안 좋은 행동을 어른이나 친구가 비밀로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나쁜 비밀이라고 설명해 준다. 특히 혼낸다고 협박을 하거나 다친다고 겁주는 등 기분이 나빠지는 비밀은 굉장히 나쁜 비밀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꼭 알려줘야 한다고 말이다.

아이가 신체적 접촉과 관련하여 기분 나쁜 일을 당했다고 얘기하면,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매우 진지하게 들어줘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는 아이가 말하는 게 사실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아이가 말을 지어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이가 말하는 것을 진지하게 들어줌으로써 부모가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표현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한테 부모에게 말한 것이 매우 잘 한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고, 부모가 이 상황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안전감을 심어준다.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반복해서 말해 주는 것이 좋다.

아이가 큰 충격을 받은 경우에는 소아 정신과에서 검사와 치료를 받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는 것은 아이의 심리적 상처를 보듬어 주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부모의 분노감, 죄책감, 무력감을 푸는데도 도움이 된다. 아무리 성격이 좋고, 힘든 일에 흔들리지 않는 부모라고 할지라도 아이가 이런 일을 당하면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화가 나고 떨리고 놀라서 평상시와는 다르게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사소한 것에도 예민해져서 짜증이 늘 수 있다. 그러나 감정 조절이 본인의 컨트롤을 벗어나는 경우에는 아이의 정서 상태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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