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쇄 채워놓고 시장 활성화라니"

머니투데이 임상연 기자 2008.09.11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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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근로자중 퇴직연금 가입자 11.3%로 지지부진

세제혜택 확대, 자산운용 규제 완화 등 개선 시급

“손발 모두 묶어 놓고 퇴직연금 시장 활성화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정부가 기업이나 근로자들을 유인할 수 있는 당근은 주지 못할 망정 형평성에 어긋난 세금이나 떼 가고 규제만 하니….”

퇴직연금 시장 현황을 묻는 질문에 한 증권사 퇴직연금 담당자는 “답답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퇴직연금을 둘러싼 각종 규제와 세제 문제 때문에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지난 31개월간의 퇴직연금 성적표를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지난 7월말 현재 전체 사업장 중 퇴직연금을 도입한 곳은 8.1%(4만1079개소)에 불과한 상태며 가입 근로자도 11.3%(76만9710명)에 그치고 있다. 또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4조1321억원으로 당초 정부와 연구기관 예상치의 4%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는 OECD 30개국 중 26위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족쇄 채워놓고 시장 활성화라니"


운용 규제로 수익률 부진
퇴직연금 전문가들은 지지부진 한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업과 근로자들의 가입을 유도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세제 혜택 문제와 자산운용 규제는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재 퇴직연금의 자산운용은 그야말로 절름발이 신세다. 현 상태로는 은퇴이후 생활보장자금을 마련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근로자가 직접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은 주식 직접 투자는 물론 간접 투자인 주식형펀드(주식투자 비중 40%이상)에도 투자 자체가 금지돼 있다. 그나마 규제가 덜한 확정급부형(DB) 퇴직연금도 국내외 상장주식 등에 30%까지, 주식형펀드 등에 50% 이내로 투자가 제한돼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운용 실적도 좋을 리 없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의 적립금 평균 운용수익률은 5.80%로 같은 기간 주식 직접투자(33.93%, 코스피상승률)은 물론 펀드 투자수익률(주식펀드 30.09%, 채권펀드 7.98%)에 크게 못 미쳤다. 퇴직연금 가입자 입장에서는 차라리 직접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나았던 셈이다.

자산운용사 한 관계자는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 처럼 퇴직연금 자산운용을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며 “저조한 퇴직연금 운용수익률은 기업과 근로자들이 퇴직연금 가입을 기피하는 요인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족쇄 채워놓고 시장 활성화라니"
쥐꼬리 만한 세제 혜택도 문제
세제 혜택 확대는 자산운용 규제 완화보다 더 시급한 문제로 꼽힌다. 퇴직연금 전문가들은 현재의 쥐꼬리 만한 세제혜택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않는 한 시장 활성화는 요원하다고 지적한다.

실례로 우리나라의 DC형 퇴직연금의 경우 추가 불입액에 한해 연 최대 300만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진다. 이마저도 개인연금과 합산한 금액이다. 이에 반해 미국의 경우 국내보다 5배 가량 많은 연간 최대 1500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세제 혜택을 통해 근로자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은퇴자금을 관리, 운용할 수 있도록 유인하기 위해서다.



또 국내 퇴직연금은 자금 운용 과정에서 생긴 이자나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비과세 혜택을 주고 있지만 펀드를 통한 주식 거래 시에는 거래세를 내도록 하고 있다. 일반 공모펀드나 연기금 펀드에도 부과되지 않는 거래세로 인해 자산운용에 제약을 받고, 수익률 제고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강성모 한국투자증권 퇴직연금연구소장은 “세제 혜택이 매우 적은 한국의 퇴직연금이 미국처럼 급성장하리라 기대하기 힘들다”며 “기존의 퇴직금 제도와 별다른 차이도 없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정도의 제도로는 믿고 의탁할 수 있는 사회보장체제를 만들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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