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곧 길이다

김영권 부국장 겸 문화기획부장 2008.09.09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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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에세이]나는 걷는다(5) : 무심보법

"과거엔 누굴 만나러, 어디를 가기 위해서 다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걸음이 삶입니다. 걷는 중에 누굴 만나고, 가다 보면 어디에 도착합니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을 이끄는 도법 스님의 '걷기'다. 스님은 5년째 그렇게 걷고 있다.



지난 2004년 3월1일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해 제주 부산 경남 울산(2004년), 전남 광주 경북 대구(2005년), 전북 대전 충남(2006년), 충북 강원(2007)을 돌며 생명과 평화를 '탁발'했다. 올해는 경기도를 걷고 있다.

스님은 물 흐르듯 걷는다. 걷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어디에 도착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다. 걸어서 히말라야를 넘었다는 티베트의 노스님도 도법 스님의 '무심보법' 못지 않다.



1959년 티베트에서 중국의 침략을 피해 여든이 넘은 노스님이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에 왔다. 그때 기자들이 놀라서 물었다. "어떻게 그 나이에 그토록 험준한 히말라야를 맨몸으로 넘어올 수 있었습니까?" 노 스님은 대답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왔지요."

누구라도 이런 경지에 쉽게 이르지 못할 것이다. '걷기 매니아'들의 성지가 된 산티아고 가는 길. 프랑스 남단 생장피드포르에서 스페인 서북부 산티아고의 야고보 성당에 이르는 800km 순례길이다.

지난 2003년 9월 69살의 20년 지기 목사와 함께 36일간 이 길을 걸었던 조이스 럽 수녀는 '자신이 평소에 어떻게 걸어왔는지' '그 걸음이 자신을 어디로 이끌었는지'부터 돌아보게 된다.


"중단 없는 전진, 그것이 우리의 무언의 구호였다. 전진, 전진, 전진. 빨리, 빨리, 빨리. 그렇게 서두르는 통에 걷기 자체의 즐거움을 잃고 있음을 우리는 곧 깨달았다. 우리가 집을 떠나온 것은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였건만 우리는 그 긴장을 모양만 바꾸어 그대로 가지고 왔다."

그녀는 "서두르는 스트레스가 내면의 조화와 카미노(여정)의 영적 모험을 앗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걸음을 늦춘다. 그녀가 한 여행자 숙소에서 발견한 경구는 도법 스님의 말씀과 똑같다.

"순례자여, 당신이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곧 길이다. 당신의 발걸음, 그것이 카미노다."

이것이 비단 걷기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삶과 일을 대하는 태도도 이와 똑같다. 결국 다음의 두가지중 하나 아니겠는가.

(1)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걷는다.〓목적 달성을 위해 일한다.
(2)걷다 보니 목적지다.〓일 자체가 즐거움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아침 출근길에 나서는 걸음은 (1)번일 것이다. 일터에서 일하는 방식도 대부분 (1)번일 것이다. 퇴근 길 발걸음도 그리 가볍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쉬지 않고 내달린다. 숨가쁜 경쟁에서 뒤지지 않을까, 탈락하지 않을까 마음이 항상 불안하다. 학교도, 사회도 모두 '성적순'이다. 오로지 경쟁과 승리를 부추긴다. 그러니 느긋하게 걸을 수 없고, 즐겁게 일할 수 없다.

오늘 하루 나에게 일 자체가 즐거움이었던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 시간을 늘리는 것이 바로 행복을 늘리는 길일 것이다.

  
☞웰빙노트

당신은 무슨 일이든 일을 시작하는 순간 '이 일은 꼭 끝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아주 잘' 해야 한다는 생각 역시 습관처럼 한다. 이것은 아주 나쁜 습관이다. 세상에서는 이런 마음가짐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왜냐하면 수행의 관점에서 보면 무슨 일을 하든 행복하고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힘도 커져야 한다. 일을 끝내야 한다는 마음이 있다면 일을 하는 동안 행복하기 어렵다. 천천히 일해야 매순간 행복하게 일할 수 있다. <틱낫한, 힘>

모모야.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 낼 수 없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지.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지. 그러면 더욱 긴장되고 불편한 거야. 나중에는 숨이 탁탁 막혀서 더 이상 비질을 할 수가 없어. 앞에는 여전히 길이 아득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거야.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그러면 일을 잘 해 낼 수 있어. 그래야 하는 거야.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숨이 차지도 않아. 그게 중요한 거야. <미하엘 엔데, 모모>

자연스런 흐름 속에 나 자신을 맡겨두면 모든 추상적인 개념의 사슬에서 벗어나 참다운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나 자신이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느껴집니다. 색깔도, 맛도, 뚜렷한 형체도 없는 자연 그대로인 강물처럼 말입니다. 물도 고이면 결국 썩고 말지만, 그러한 상태를 극복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갈 때는 깨끗함을 다시 유지할 수 있게 마련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생각과 사람과 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참다운 본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은 바로 그러한 자아실현을 향한 끝없는 추구였던 셈입니다. <사티시 쿠마르, 끝없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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