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반가운 수확의 계절이다. 계절이 일러 추석이 중순에 있다. 추석을 전후해 각종 과일을 거두고 들녘도 황금색으로 물들고 있다. ‘1년 내내 한가위만 같아라’고 할 정도로 먹거리가 풍성하고, 인심도 후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9월 위기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외국인이 8조원(약 80억달러)가량 보유하고 있는 국채의 만기가 9일과 10일에 몰려 있고 △한국에 500억달러 규모의 3개월짜리 단기 채권을 갖고 있는 외국 투자자들이 만기연장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외국인의 주식매도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탓이다.
하지 않는 모습이다. 외환보유액이 2475억달러나 돼서 문제가 없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정부의 대응이 잘못될 경우엔 97년에 일어났던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시장의 반응이다.
위기는 숫자 게임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숫자상으로는 위기가 발생할 상황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경상수지 적자가 GDP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고, 외환보유액도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지만 IMF에서 위기라고 판정할 정도로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위기는 발생했다. 위기는 단순한 숫자 게임이 아니라 심리와 음모, 정부의 잘못된 대응과 외부 상황 등과 같은 여러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복잡게임(Complex Game)이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에 아무런 문제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거세게 공격하는 투기세력에 충분하지 않은 외환보유액을 너무 일찍 써버림으로써 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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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그 때와 다르기 때문에 아무 문제없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상당수의 국민들도 그런 생각에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정부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의 대응 양상을 보면 그다지 다른 게 없어 보인다.
달러 낭비에 따른 정책 신뢰 상실,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둘러싼 과열 양상, 금호그룹과 두산그룹의 유동성 위기설에 따른 한차례 진통, 부동산값 하락에 따른 주택담보대출의 무더기 부실채권화 우려 등 국내 요인이 녹록치 않다.
해외 요인은 더 심각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헤지펀드는 물론 뮤추얼펀드나 투자은행(IB) 등은 유동성, 즉 달러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코스피지수가 고점에 비해 30% 이상 급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 계속 주식을 팔고 있다. 채권도 만기가 되면 상환요청이 있을 뿐만 아니라 중도에 손해나더라도 매각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가격에 상관없이 일단 팔고 보자’는 분위기다.
1793년 미국의 필라델피아에는 황열병이 강타했다. 의사이면서 독립선언서에도 서명했던 벤자민 러쉬는 당시 ‘고열을 수반하는 질병은 출혈로 치료해야 한다’는 의학이론에 따라 수천명의 활열병 환자를 치료했다.
그는 ‘이 치료법이 활열병보다 더 위험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러쉬는 ‘증세가 호전되는 것은 치료의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며, 환자가 사망한 것은 병이 너무 심각해서 출혈로 치료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탓’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치료했던 수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이런 평가기준 때문에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결코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쉽지 않은 9월의 금융시장을 대하는 정부가 혹시 러쉬와 같은 오류에 빠져 있지 않은지 우려스럽다. ‘예고된 위기는 없다’는 게 경험법칙이기는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했을 때 주가는 폭락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위기설을 말끔히 걷어내고 풍성한 한가위를 즐길 수 있는 9월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