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산업은행장 잘못 뽑았다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인겸 더벨 대표이사 부사장 2008.09.0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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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산업은행장 인선 당시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이례적으로 유력 후보 중 한 사람이었던 민유성 리먼브러더스 한국대표를 적극 밀었고, 민 대표는 산업은행장에 최종 낙점됐다.
 
인사 후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지만 돌이켜보면 민유성씨를 민영화와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의 도약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산업은행 행장으로 뽑은 것은 잘한 인사였다.
 
민 행장은 IB업무에 관한 한 국내 최고 전문가다. 씨티, 모간스탠리, 살로먼스미스바니, 리먼 등을 거친 그의 화려한 경력이 이를 말해준다. 우리금융 부회장을 맡아 민영화 문제를 직접 다루고 고민한 경험도 있다.
 
산업은행장 선임 후 전광우 위원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민 행장을 지지하고 격려했다. 민유성 행장은 5년내 아시아 최강의 IB로 발전하겠다고 화답했다.
 
전 위원장은 국회 특위에 참석해 국내 은행들도 글로벌 IB를 인수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말하고, 뒤이어 산업은행이 세계적 IB인 리먼 인수를 추진하면서 두 사람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콤비는 오래가지 못했다. 민유성 행장은 미국이 서브프라임 위기로 고전하는 지금이 글로벌 IB를 인수할 수 있는 적기고, 장부가 대비 5~10%의 싼 값으로 인수할 수 있는 아주 흔치 않은 기회라고 판단했다. 괜찮은 자산운용사를 인수하면 일거에 국내 IB를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지 CEO에게 경영을 책임지고 맡게 하면 핵심 인력 이탈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았다. 글로벌 IB 인수 후 부실채권(NPL)사업에 뛰어들면 단기간에 큰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구상도 갖고 있었다.
 
이에 대해 전광우 위원장은 공개적으로 민영화 대상인 산업은행이 해외 IB 인수에 나서는 건 문제가 있다고 못을 박아버렸다. 산업은행의 주거래기업들이 유동성 위기에 몰릴 수도 있는데 해외 M&A에 실탄을 모두 써버린다면 아주 곤란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까지 제동을 걸었다.
 
해외 M&A에 대한 금융위의 제동은 산업은행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주 우리금융 이팔성 회장이 뉴욕 현지에서 우리투자증권을 통한 유럽 증권사 인수 가능성을 내비치자 곧바로 우리금융 측에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산업은행이나 우리금융의 해외 M&A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 전광우 위원장 개인 판단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국내 은행들의 글로벌 IB 인수 가능성을 처음 언급하고 불을 지핀 사람이 전 위원장 본인이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들의 고민이 이해는 된다. 서브프라임 위기의 끝이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헐값에 팔았다 해서 지금도 당시 담당 국장이 교도소와 재판장을 오가는 현실에서 무슨 열정이 남았다고 이런 일에 리스크를 걸겠는가. 게다가 촛불에 혼이 나간 정부당국이 미국의 초대형 부실 IB 인수에 무엇 때문에 모험을 걸겠는가.
 
글로벌 IB로의 도약이라는 산업은행의 꿈은 이제 접는 게 좋겠다. 또 정부도 민유성씨 같은 글로벌 IB 인재 대신 내부관리나 잘하는 관리형 인사를 산업은행장으로 빨리 바꿔주는 게 좋겠다. 글로벌 IB가 배제된 산업은행과 민유성 행장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모간스탠리와 블랙스톤에 수십억 달러씩 투자한데 이어 미국과 유럽의 초대형 IB 인수를 추진하는 중국이 그저 부럽다.
 
앞으로는 낯뜨겁게 금융허브니, 글로벌 IB니 하는 말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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