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해외IB' 놓고 군침만…

더벨 박준식 기자 2008.08.28 13:39
글자크기

[글로벌 IB 인수시대]③민간銀이 더 보수적..소수지분 인수 네트워크 넓혀야

이 기사는 08월27일(14:12)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최근 사석에서 "해외 일부 투자은행(IB)들이 '네이키드 프라이스(벌거벗은 가격)'에 인수를 원하고 있지만 모두가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회가 왔는데도 정부는 물론 민간 은행들도 쉽게 나서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민간이 정부 기관에 앞서 해외 선진 IB를 인수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정부 보다 보수적인 태도와 지배구조는 물론 위험을 평가하는 능력의 한계 등 겹겹이 장애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우선 현재 시장 주체들이 태생적으로 보수적인 정체성 한계를 갖고 있다. 규모 면에서 국민, 우리, 신한, 농협, 하나은행을 빅5로 꼽지만 이 중 민간이라 부를 수 있는 국민, 신한, 하나는 소매영업에 특화해 조직을 키운 특성이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 대출이 많던 조흥, 한빛 등 유수의 은행들이 외환위기 중 도미노처럼 몰락했지만 이들은 리테일 뱅킹에 집중해 살아남았다"며 "현재 주류의 위험 부담 성향이 보수적인 이상 공격적인 투자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은행들의 이런 태도는 올초 한국투자공사(KIC)의 메릴린치의 지분 인수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투자 초기 세계적인 IB의 주주로 참가할 기회를 국영기업이 독점했다고 원성을 높였던 이들은 KIC의 평가손이 6개월만에 1조원에 달하자 자칫 큰 실수를 할 뻔했다는 입장으로 돌변했다.

예대마진에 의존하는 사업구조와 한정된 영업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진출을 꿈꾸면서도 책임주체가 되는 건 꺼리고 있다.


일부의 경우 이머징마켓이나 선진국 교포은행을 사들여 조심스레 진출을 타진하고 있지만 이 역시 적잖은 시행착오 과정을 겪고 있다. 국민과 신한 등은 해외은행 M&A를 위해 사내 전담조직과 브로커, IB, 컨설턴트 등 외부의 지원을 활용하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인수대상은 이머징마켓에 국한돼 있다.

선진국 IB가 급격한 부실로 매물이 될 가능성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 인수 대상(Target)을 확정하지 못한 한계도 드러냈다. 하나IB증권의 이찬근 사장은 "대형 M&A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선 잠재적 인수대상 리스트를 작성하고 대상이 나오기 전부터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데 국내 은행은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목표물을 설정하더라도 정밀실사(Due diligence)를 통해 추가적인 부실을 알 수 없다는 건 더 큰 리스크를 야기할 수 있다. 한신정평가의 김영섭 연구원은 "해외 IB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가치평가 능력이 전제돼야 한다"며 "해외자산 비율이 평균 4%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내 은행들은 잠재 리스크를 파악할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소수 핵심인재를 관리할 능력이 없는 건 장기적인 진출을 위해서도 시급히 개선돼야 할 문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서비스가 중심인 금융업을 한다면서 해당국의 언어와 문화는 고사하고 영어 소통능력도 갖추지 못한 국내 직원들을 파견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소매금융 부서와 IB 부서의 인센티브 체계가 큰 차별성이 없는 이상 우수인력의 이탈을 막을 수 없는 것도 개선 과제다. 홍대희 HMC투자증권 부사장은 "능력에 맞는 성과보상제도를 갖추지 못하면 IB가 아니라 빈껍데기를 사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민간이 해외 IB 투자에 나서기 위해서는 경영권을 포함한 전략적 투자(SI)라는 장기 전략 아래에서 재무적 투자(FI) 형태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소수 지분이라도 확보해 IB 업무에 필요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게 위험을 줄이면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는 대안이 될 것이라는 충고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