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엘리베이터에 갇혔던 기억

이서경 푸른소나무소아정신과 원장 2008.08.2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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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경의 행복한 아이 프로젝트]

얼마전 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진료하면서 어른들의 무심한 태도에 놀란 적이 있었다. 이 아이가 탄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춰 약 2시간 정도 혼자 갇혀 있었다. 아이는 지칠 때까지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쳤고, 마침 계단으로 지나가던 사람이 관리실에 연락해서 구출됐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아이에게 괜찮냐고 물어본 사람이 없었다. 아이는 울다가 너무 지쳐서 멍해져 있는 상태였고, 어른들은 아이에게 관심이 없이 그저 수리에 대한 이야기만 서로 나누었다.



아이는 엘리베이터가 멈춘 3층에서부터 12층에 있는 집까지 혼자 걸어서 올라갔다. 이 사건 이후 아이는 엘리베이터에 혼자 갇혔을 때의 무서웠던 생각이 반복해서 떠오르고, 밤에 악몽을 꾸면서 소리를 지르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으려고 하는 증상을 보였다.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외부의 무서운 사건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공포스러운 사건을 접하게 되면 뇌에서 즉각적으로 스트레스와 관련된 다량의 신경전달물질이 방출되고 자율신경계가 크게 교란된다.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강력한 사건에 심하게 놀라기 때문에 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일상적인 대처방법이나 방어기제가 망가지고, 일시적으로 급박한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무서운 사건이 일어난 초기에는 대개의 아이들이 너무 놀라서 오히려 반응이 별로 없는 듯이 멍한 경우가 많다.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발작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기 때문에 어른들은 조용한 아이의 태도를 보면서 별 것 아니겠지라고 안심하고 넘어가기가 쉽다.

그러나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는 사건과 관련된 두려움, 무력감, 원망감 등의 부정적 감정과 함께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났지, 왜 나에게 일어났지”하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한다.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에 이러한 인지적 재검토 과정 동안, “내가 나쁜 아이라서 그래”와 같이 올바르지 못한 원인을 찾아내게 될 가능성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과 무력하게 혼자 남겨지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 이러한 두려움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오래 지속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되기 때문에 사건이 일어난 직후 어른들이 보여주는 초기 대응 방식이 아이의 심리적 후유증을 줄이는데 매우 중요하다.


초기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게 배려해 주는 것이다. 사고 후 아이의 압도된 감정을 편안하게 가라앉혀주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어릴수록 신체적인 접촉을 통해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좋은데, 안아 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좋다.

아이에게 왜 조심하지 않았냐고 윽박지르거나 화를 내기 이전에 놀랐을 아이의 감정을 달래주는 것이 우선이다. “네가 잘못하거나 나빠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니다”,“주변에 부모를 포함해서 너를 도와 줄 어른들이 있다”는 점을 강조해서 이야기 해주는 것이 좋다.

어른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사고를 당하는 어떠한 아이들에게서도 이러한 초기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사소한 일로 보이더라도 사고를 당한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아이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따뜻하게 배려하고 보살피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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