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장비와 음향장치, 빛을 활용하는 기기 등을 이용한 ‘쓸모 없는 발명품’들이 예술품인 양 전시장을 활보한다. 심금을 울리기보다는 시선의 쾌락을 추구하고 사물이나 감정에 대한 철학적 사고보다 재미와 흥미를 제공한다. 눈과 손을 현혹시키고 있다. 예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를 지경이다.
결국 예술창작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가치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에 기묘한 작품 제작방식을 가지고서는 예술가로서의 생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 과학문명과 기술을 잘 활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과학이나 의학은 문화라 칭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것이다.
중국의 소동파(蘇東坡, 蘇軾 1036~1101)는 "대나무를 그리려면 마음속에 대나무를 자라게 한 다음 대나무가 나의 마음과 일치하였을 때 곧바로 그려내야 한다"고 하였다. 사회를 그리거나 자신을 그리거나 상관없이 예술에 있어서 그림은 외양뿐만 아니라 마음과 감정이 이끄는 바대로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술의 기본은 사물이나 감정에 대한 직관적 표현력에 있다. 예술가는 발명가가 아니다. 기기묘묘한 발명품을 팔아서는 곤란하다. '어떻게 그렸을까'하는 기법을 팔아서도 안 된다. 정신을 팔고 예술성을 팔아야한다. 이것이 창작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과학에 의한 기술에 의해 미술품이 대량 복제되거나 팝아트의 영향 아래 기술과 예술이 통합되는 경향을 보이기는 하지만 예술은 여전히 정신적 영역의 것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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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호의 ‘yellow-rhythm’은 바다의 광의적 현상으로부터 연상된 파문에서 시작된다. 바다의 표면에서 전개되는 물결에서 현재의 경험과 정신적 이데아를 떠올리게 한다. 바다는 작가 자신의 실존을 이해하는 거대한 파노라마다. 바다의 물결 위에 올려진 거대한 꽃 한송이는 영혼의 통로이자 생의 근원적 모태로서 발생하는 창작의 원류다.
이지호, yellow-rhythm, 125×65cm, 장지위에 채색,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