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 '촛불'이 단번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 '탄생'했다기보다 '진화'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2002년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 2004년 탄핵 관련 촛불 시위를 거친 촛불은 어느새 성숙했다.
2008년 촛불이 단순한 시위가 아닌 놀라운 정치로 승화된 배경은 이렇다. 그렇다면 이 '생활 정치'는 왜 등장했을까. 정치권이나 학계에선 '신뢰' 문제를 꼽는다.
촛불 집회가 폭발적 힘을 얻을 때 정치권이 놀라움 속 '두려움'을 감지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은 "정당이나 국회의원은 정치의 유통 과정"이라며 "촛불은 그 중간 과정인 정당을 배제하고 국민이 직접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총선 이후 '거대 여당' 체제에 대한 답답함도 한 요인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의 핵심 의원은 "지금의 여대야소 구조는 민의를 통해 탄생한 것이지만 정작 거대 여당 체제가 민의를 발현하는 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국민들이 직접 나선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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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직접적 도전, 생활 정치에 정부는 한발 물러섰다. 추가 협상을 이끌어낸 것은 적잖은 성과란 평가가 우세하다. 특히 국내 문제가 아닌 미국을 상대로 한 국제 이슈여서 더 의미있는 성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 '성과'를 즐기기보다 그 '이상'을 얻지 못한 데 대한 자괴감이 더 큰 게 사회적 분위기다.
이를 두고 생활 정치의 가능성 못지않게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 예라는 지적이 나온다. '탈이념' '탈정파'의 촛불이 물러난 뒤 '이념'의 촛불로 대체되면서 무리한 정치 투쟁으로 변질됐다는 것.
이와함께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딜레마'도 2008년 촛불 속 고민해야할 부분으로 지적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대의제에 대한 불신으로 촛불을 들었지만 그렇다고 대의제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현실도 알고 있다"며 "결국 현 정치 체제와 구조에 '경고'를 던진 게 촛불의 성과"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미 촛불이 던진 경고를 무시한 채 '그들만의 리그'로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 한 인사는 "성숙한 촛불은 이제 정치 과정의 일부분이 됐다"면서 "이를 반영할 구조를 정치권에서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