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모여서 얻었고 쏠려서 잃었다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8.08.1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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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그 빛과 그림자 中] '발화 100일' 득과 실

2008년 '촛불'은 놀라운 정치 행위였다. 시민사회나 학계, 정치권도 모두 놀랐다. 촛불 밖에선 '거리 정치'로 불렸지만 촛불 안에선 '생활 정치' 그 자체였다.

물론 이 '촛불'이 단번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 '탄생'했다기보다 '진화'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2002년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 2004년 탄핵 관련 촛불 시위를 거친 촛불은 어느새 성숙했다.



그리고 다양화와 자율성을 체득했다. 다양성은 탈이념과 맞닿았다. 과거에 비해 진보적 색채가 옅었다. 자율성은 운동권적 수직 구조와 반대편에 있다. 대신 인터넷을 통한 수평적 네트워크가 새 구조를 만들었다.

2008년 촛불이 단순한 시위가 아닌 놀라운 정치로 승화된 배경은 이렇다. 그렇다면 이 '생활 정치'는 왜 등장했을까. 정치권이나 학계에선 '신뢰' 문제를 꼽는다.



이는 곧 '대의 민주주의'와 연결된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운영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불신이 결국 생활인을 정치 현장으로 등장시켰다"는 얘기다.

촛불 집회가 폭발적 힘을 얻을 때 정치권이 놀라움 속 '두려움'을 감지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은 "정당이나 국회의원은 정치의 유통 과정"이라며 "촛불은 그 중간 과정인 정당을 배제하고 국민이 직접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총선 이후 '거대 여당' 체제에 대한 답답함도 한 요인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의 핵심 의원은 "지금의 여대야소 구조는 민의를 통해 탄생한 것이지만 정작 거대 여당 체제가 민의를 발현하는 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국민들이 직접 나선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 직접적 도전, 생활 정치에 정부는 한발 물러섰다. 추가 협상을 이끌어낸 것은 적잖은 성과란 평가가 우세하다. 특히 국내 문제가 아닌 미국을 상대로 한 국제 이슈여서 더 의미있는 성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 '성과'를 즐기기보다 그 '이상'을 얻지 못한 데 대한 자괴감이 더 큰 게 사회적 분위기다.



이를 두고 생활 정치의 가능성 못지않게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 예라는 지적이 나온다. '탈이념' '탈정파'의 촛불이 물러난 뒤 '이념'의 촛불로 대체되면서 무리한 정치 투쟁으로 변질됐다는 것.

이와함께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딜레마'도 2008년 촛불 속 고민해야할 부분으로 지적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대의제에 대한 불신으로 촛불을 들었지만 그렇다고 대의제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현실도 알고 있다"며 "결국 현 정치 체제와 구조에 '경고'를 던진 게 촛불의 성과"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미 촛불이 던진 경고를 무시한 채 '그들만의 리그'로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 한 인사는 "성숙한 촛불은 이제 정치 과정의 일부분이 됐다"면서 "이를 반영할 구조를 정치권에서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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