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대한 혁신적 표현 기법

박정수 현대미술경영연구소 소장 2008.07.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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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미술품 투자와 감상법 / 입체파와 피카소

“이것도 그림이야. 발가락으로 그려도 이것보다는 잘 그리겠다.”

“에이 육체파는 알아도 입체파는 잘 몰라.”

입체파와 육체파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간혹 코미디 프로에서 미술품을 이야기하면서 등장하는 입체파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피카소의 작품을 보고 무조건 입체파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의 미술품 중에는 입체파적인 작품 보다는 다른 유형의 작품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이해하자. 피카소가 세기적 거장이며 너무나 유명해 입체파에 상당한 관여와 기여를 했다는 것 때문에 피카소는 입체파라는 등식이 성립되었을 뿐이다.

피카소의 그림 중 가장 비싼 작품은 1905년 그의 나이 24살에 그린 ‘파이프를 든 소년’이다. 2006년 경매에서 1억40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이 작품은 장밋빛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입체파와는 큰 관련이 없는 작품이다. 입체파적인 그림으로 비싼 작품은 1937년에 그려진 ‘도라마르의 초상’으로 2006년에 952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우리는 정육면체로 만들어진 입방체 장난감 ‘큐빅’을 가지고 놀았다. 각 면에 파랑색과 빨강색, 흰색, 노란색 등으로 만들어진 것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어느새 여섯 가지 색상이 뒤섞여 처음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법칙을 외우거나 분해하여 재조립 하는 수밖에 없었다. 뒷면이나 옆면 등의 다양한 면을 한 면에서 볼 수 있게 한 것이 입체파 즉 큐비즘(cubism)이다.

이 용어는 1908년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가 브라크(Braque Georges)라는 화가가 참가한 전시회에서 그의 풍경화를 보면서 ‘입방체(cubes)로 만들어진 그림’이라고 하는 것을 평론가 루이스 복셀(Louis Vouxcelles)이라는 사람이 잡지에 입체파라는 말을 쓰면서 형성되었다.
Braque Georges, 에스타크의 집, Oil on canvas, 1908, 73 x 60cmBraque Georges, 에스타크의 집, Oil on canvas, 1908, 73 x 60cm


초기의 입체파는 자연의 모든 대상물을 원추와 원통, 구로 취급된다는 세잔의 말을 중심으로 원근법과 명암을 중시 여기지 않으면서 단순화된 형태의 조형과 색상으로 사물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어떤 대상을 한곳에서만 바라보고서는 그 대상이 가진 본래의 모습과 공간을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시기였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어떠한 대상의 참 모습을 그릴 수 없다는 철학적 요소와의 결합이다.

이후에 브라크와 피카소 같은 거장의 손길에 힘입어 종이를 찢어 붙이거나 하는 파피에 꼴레(papier colle)가 수용되면서 꼴라주 기법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후기에 이르면 풍부한 색상이 수용되고 기하학적 색면과 함께 대상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관련된 다양한 시각의 작품들이 등장한다.


피카소의 많은 작품 중에는 오선지가 그려진 종이나 우표, 여타의 그림들이 붙여져서 제작된다. 이때에 이르면 그림이 그려지는 화면 안에서의 모든 물건들은 색을 칠하는 것과 동일시된다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입체주의는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면서 그 의미와 목적이 상실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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