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육체파는 알아도 입체파는 잘 몰라.”
입체파와 육체파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간혹 코미디 프로에서 미술품을 이야기하면서 등장하는 입체파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피카소의 작품을 보고 무조건 입체파라 이야기한다.
피카소의 그림 중 가장 비싼 작품은 1905년 그의 나이 24살에 그린 ‘파이프를 든 소년’이다. 2006년 경매에서 1억40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이 작품은 장밋빛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입체파와는 큰 관련이 없는 작품이다. 입체파적인 그림으로 비싼 작품은 1937년에 그려진 ‘도라마르의 초상’으로 2006년에 952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이 용어는 1908년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가 브라크(Braque Georges)라는 화가가 참가한 전시회에서 그의 풍경화를 보면서 ‘입방체(cubes)로 만들어진 그림’이라고 하는 것을 평론가 루이스 복셀(Louis Vouxcelles)이라는 사람이 잡지에 입체파라는 말을 쓰면서 형성되었다.
Braque Georges, 에스타크의 집, Oil on canvas, 1908, 73 x 60cm
이후에 브라크와 피카소 같은 거장의 손길에 힘입어 종이를 찢어 붙이거나 하는 파피에 꼴레(papier colle)가 수용되면서 꼴라주 기법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후기에 이르면 풍부한 색상이 수용되고 기하학적 색면과 함께 대상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관련된 다양한 시각의 작품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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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많은 작품 중에는 오선지가 그려진 종이나 우표, 여타의 그림들이 붙여져서 제작된다. 이때에 이르면 그림이 그려지는 화면 안에서의 모든 물건들은 색을 칠하는 것과 동일시된다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입체주의는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면서 그 의미와 목적이 상실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