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7·7 개각과 절영지회(絶纓之會)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8.07.1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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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의 여의도 편지]

편집자주 별명이 '제비'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릅니다.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유도 명확치 않습니다. 이름 영문 이니셜 (JB) 발음에 다소 날카로운 이미지가 겹치며 탄생한 것 같다는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이젠 이름보다 더 친숙합니다. 동여의도가 금융의 중심지라면 서여의도는 정치와 권력의 본산입니다. '제비처럼' 날렵하게 서여의도를 휘저어 재밌는 얘기가 담긴 '박씨'를 물어다 드리겠습니다.

# '용인(用人)'을 얘기할 때 항상 인용되는 옛 얘기가 하나 있다. '절영지회(絶纓之會)'.

초나라 장왕이 전투에서 승리한 후 많은 장수를 불러 연회를 베풀었다. 즐겁게 노닐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등불이 꺼졌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여인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왕의 애첩이었다. 한 장수가 어둠을 틈타 그녀를 희롱한 것이었다.



애첩은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 그 사람의 갓끈을 잡아 뜯었다.

그리곤 "저를 희롱한 사람의 갓끈을 끊었으니 불을 켜고 그 사람을 잡아달라"고 했다. 애첩의 부탁에 장왕은 이렇게 명령했다.



"불을 켜기 전에 모든 신하와 장수들은 자신의 갓끈을 끊어 던지라." 결국 왕의 애첩을 희롱한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찾아낼 수 없었다.

몇 년 뒤 전쟁이 벌어졌을 때 한 장수가 목숨을 걸고 왕을 구했다. 장왕이 그 장수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싸운 이유를 물었다.

"몇 해 전 갓끈을 뜯겼던 게 저였습니다. 폐하의 온정을 받은 뒤 목숨을 바쳐 폐하의 은혜에 보답하려 했을 뿐입니다." 훗날 이 모임은 갓끈을 끊은 모임(絶纓之會)으로 불렸다.


# 7.7 개각으로 시끄럽다. '소폭' 개각의 뒷말이 '대폭'을 넘어선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유임과 최중경 전 재정부 차관의 경질이 화두다.

청와대와 여당에선 '강만수-최중경'을 분리한다. 청와대 대변인은 최 차관 경질에 대해 "환율과 물가에 문제점이 있다는 여론을 반영해 문책한 것"이라고 딱지를 붙였다. 이른바 '대리 경질' 논란이 나온 이유도 여기 있다.

논란이 되자 이명박(MB) 대통령이 부연 설명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단독 회동한 자리에서 "차관은 별도의 이유에 의해 책임을 물은 것이지 절대 (장관) 대신 책임을 진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제팀의 협조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재계까지 협조하고 이해하는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취한 불가피한 조치다"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자신이 거느렸던 부하를 내보내는 환송사라기보다는 검사의 기소문과 같다.

여당내 의견도 다르지 않다. 강 장관에겐 "기회를 줘야 한다"는 반응이 주인 반면 최 차관에겐 "당에선 초기부터 별로였다"는 말이 나온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목소리다.

#과천 관가 간부들은 혀를 차고 실무 직원들은 한숨을 쉰다. '대리 경질'이란 신조어를 낳을 만큼 '이상한' 인사는 부차적이다. 장수건 부장수건 이들을 보호하거나 책임져주는 대장이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다.

관료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한 의원은 이를 두고 "무섭다"고 했다. 새 정부 초기 힘들게 뛴 장수에게 외부도 아닌 아군에서, 그것도 떠나는 뒤편에서 화살을 쏘아대는 데 대한 두려움이다.

한 전직 관료는 최 차관에 대한 이 대통령의 발언과 청와대 대변인의 설명을 두고 "두 번 죽이는 잔인함"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2005년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낙마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개 서신을 쓴 것과 비교하며 혀를 찼다.

그 편지의 내용은 "진실을 밝히도록 하겠다.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을 지게 하고 억울한 일이 있다면 억울함을 풀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절영지회'나 '공개 서신'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인사를 통해 드러난 MB식 '용인술'이 개인적, 국가적으로 남길 후폭풍이 너무 크지 않을까 걱정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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