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인문제와 회사채 시장

김종민삼성증권 채권사업부 연구위원 2008.07.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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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편집자주】자본시장 발전에 신용평가는 인프라와 같은 존재입니다. 서브프라임사태로 신용평가의 공정성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 것도 신용평가의 중요성을 재차 일깨우는 사건입니다. 더벨은 신용평가를 포함해 크레딧시장의 전반을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각을 통해 분석합니다. 신용이슈 등 일련의 현상에 대해 폭넓은 이해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나 참 언제부터 크레딧 애널리스트가 주식시장만 쳐다보게 된 거지?”

한 신용평가사가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했던 크레딧 애널리스트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다. 과도한 외부차입을 통해 덩치를 불려온 어떤 그룹이 향후 계열사들의 국내외 상장에 성공할 경우 재무구조 개선이 가능하다는 견해에 대한 반응이었다.

최근 기업공개(IPO), 인수합병(M&A) 등 주식시장을 주 무대로 벌어지는 이슈들이 회사채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듯하다. 상장의 경우 그 실현가능성을 예측하는데 불확실성이 크다는 문제가 있지만 성사만 되면 기업의 신용도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주식시장을 통한 일종의 자산재평가(장부가의 시가화)에 성공함으로써 유입된 현금으로 차입금을 상환하거나 부채비율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성장잠재력을 이끌 수 있는 투자가 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높은 단기차입금 사용비중과 영업창출 현금의 범위를 넘어서는 공격적인 투자로 '신용등급 적정성 논란'을 일으켰던 한 유통업체가 기업공개(IPO)를 통해 한순간에 실질적 무차입 상태의 우량한 재무구조로 탈바꿈했던 사례는 결과적으론 대부분의 크레딧 애널리스트들을 머쓱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반면에 인수합병(M&A)의 경우 기업의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크레딧 애널리스트들의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최근 국내의 사례들처럼 그것이 지배주주(Owner)나 경영자의 과도한 성장욕구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재원의 대부분을 외부차입에 의존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안정의 기반위에서 성장을 추구하는 경우라면 당연히 얘기는 달라진다.

“크레딧애널리스트들은 투자를 싫어한다”말은 그들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로부터 나온 말이다. 크레딧애널리스트의 대부분은 주식 애널리스트로 변신 가능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한쪽은 현금흐름에, 다른 한쪽은 성장성에 포커스를 둔다는 명백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분석대상인 기업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통찰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대부분의 크레딧애널리스트들이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투자를 통해 성장 동력을 확보해 가는 것에 대하여 무턱대고 인색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크레딧애널리스트들이 일부 그룹들의 과도한 외부차입을 통한 성장전략에 대하여 우려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한동안 미덕처럼 여겨지던 기업들의 '보수적인 재무정책'은 이제 고전이 된듯하고 남의 돈을 빌려 회사를 인수한 후 주가부양 이나 상장을 통해 그 빚을 갚겠다는 다소 황당한 전략이 금융시장에서 무난하게(?)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니 그들의 우려가 노파심만은 아닌 듯싶다.



기업들이 신용도에 대한 우려를 감수하면서까지 성장을 추구하는 행위를 설명하는데 적합한 이론중 하나로 대리인이론 (Agency Theory)을 꼽을 수 있다. 주주와 채권자간에 또는 경영자와 주주간에 서로 다른 입장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해상충'을 말하는 대리인이론은 최근에 공격적인 재무정책으로 인해 벌어지는 크고 작은 신용이슈들을 설명해 주기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오너경영이 대세인 국내현실에서는 경영자와 주주간의 이해상충보다는 지배주주와 채권자간의 이해상충이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배주주(또는 경영자)와 채권자간 대리인문제(Agency Problem)는 대부분의 경우 기업의 신용도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지배주주 중심의 의사결정은 자칫 능력을 벗어난 과도한 위험수용과 확장욕구로 인해 채권자들의 신뢰상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잠시 떠오르는 최근 국내사례들을 짚어보자.

사례 하나
주식과 연계된 차입금을 재원으로 대형 M&A를 잇달아 성사시켰으나 이후 주가 부진 속에 우발채무 부담이 늘어나고 설상가상으로 금융기관마다 투자한도가 소진되어 과거와 달리 회사채 발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그룹.

사례 둘
국내 신용평가의 Case-Study감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LBO방식의 공격적인 M&A를 통해 끝없는 외형확장 욕구를 펼쳐가던 모그룹이 결국 재무적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인수기업을 재매각한 사례.



사례 셋
차입을 통해 본업과는 거리가 먼 공격적인 투자로 ROE(자기자본이익율)를 높였던 모그룹이 자신들의 현명한(?) 선택을 자축하다가 최근 황급히 자산유동화를 통한 자금 확보에 나서는 사례.

모두 과도한 외형확장 욕구가 재무안정성의 저하로 이어진 사례들이다.

사실 주주와 채권자간 대리인문제는 주식과 회사채가 대차대조표(Balance Sheet)의 우축을 함께 구성하는 중요한 자금조달 원천이지만 유가증권으로서 태생적으로 다른 수익과 위험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출발한다.



만기보유를 전제로 한다면 정해진 기간 동안 고정적인 이자수입만을 받게 되는 회사채 투자자 입장에서는 회사의 현금흐름 변동성이 커지는 것이 달가울리 없을 것이다. 변동성을 참아주는 대가로 얻을 수 있는 잠재이익(Upside Potential)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주주는 감내하기 힘들 정도로 위험이 커지기 전까지는 변동성이 커지는 것을 채권자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입장에 있다. 위험이 커지는 것만큼 위험감내(Risk Taking)에 따른 과실도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주주는 위험이 수반되는 M&A나 투자를 통해 미래수익의 변동성을 추구하는 이익사냥꾼(Profit Hunter)의 유전자(DNA)를 채권자 보다 훨씬 더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변동성을 키우려고 하는 지배주주 중심의 의사결정은 그 정도가 과할 경우엔 정해진 원리금의 상환만을 약속받은 채권자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최근 일부 그룹들의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한 공격적인 투자, 사업다각화, 인수합병(M&A) 등이 회사채시장에도 큰 이슈가 되고 있다.

회사채 발행물량을 예측하는데 있어 향후 전개될 인수합병(M&A) 건을 가늠해 보는 것이 필수적일 정도로 회사채 수급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공격적인 재무정책으로 신용평가사에게 달갑지 않은 고민거리를 안겨주거나 회사채 투자자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또한 신용분석 관점에서 볼 때 대리인 문제에서 비롯된 '재무정책의 공격성'에 대한 평가는 '기업지배구조이슈'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분석주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하다.



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채권자에 대한 배려가 충분히 있었다면, 다시 말해 성장전략이 안정성에 대한 과도한 희생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기업의 의사결정에 채권자는 개입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한 유동성이 넘쳐났던 그간의 금융시장 환경은 기업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투자활동에 대하여 채권자에게 성의 있게 설명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우호적이었던 금융시장 환경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지금 지나친 성장전략이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채권자가 감지하게 된다면 상황은 전혀 다른 스토리로 전개될 수 있다. 공격적인 재무정책으로 미래에 대한 합리적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경우 채권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아 보인다.



'불확실성에 대한 디스카운트, 신뢰의 철회, 철저한 외면' 등이 바로 채권자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얼마 안 되는 대안들이다. 과도한 성장욕구로 무거워진 몸이 주체하기 힘들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예상보다 비싼 대가를 치루는 것을 피할 수 없는 때인지도 모른다.
대리인문제와 회사채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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