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진료 미안해'..8년간 2만건 e상담

머니투데이 최은미 기자 2008.07.0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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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가족, 쿨패밀리]<2-1>아들 노동영 박사가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가족'

<편주>우당 이회영 등 6형제는 신라, 고려, 조선 3조에 걸쳐 문벌이 높은 '삼한갑족'의 후손이었다. 다섯째인 이시영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뺀 나머지 5형제는 모두 독립운동 중 사망했다. 경주 최 부자 집안은 300년, 10대에 걸쳐 부를 지켰다. 독특한 가훈과 가풍이 이 집안의 부를 유지했다. 지금도 우리는 현대판 경주 최 부자, 우당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고속성장과정에서 잊힌 한국판 노블리스오블리주의 가족을 찾아 그들의 가풍과 철학을 전하고자 한다.

↑노동영 서울대병원 유방센터 소장 ⓒ이경숙 기자↑노동영 서울대병원 유방센터 소장 ⓒ이경숙 기자


노동영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52. 유방센터 소장. 사진)는 간밤에 쌓인 환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해준 답변만 1만5000여건에 달한다. 이메일을 통한 것까지 하면 2만 건은 족히 넘을 것이다. '1분 진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환자들에게 너무 미안했단다.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의사와 하고 싶었던 얘기를 접어둘 수밖에 없는 많은 환자들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었어요. 이제 습관이 되서 하루라도 빼먹으면 종일 이상할 정도죠."

그는 국내 유방암 분야에서 명의 중 명의다. 서울대병원 유방센터를 이끌며, 2004년부터 2007년까지 12만 명의 환자들을 돌봤다. 한 해 평균 900건의 수술을 하니 매일 가슴속 암덩이로 고통 받는 2~3명의 환자를 살린 것이다.



환자들과의 진료실 밖 만남은 온라인상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서울대병원 유방센터에서 치료받은 환자 500여명의 모임 '비너스회' 행사에 누구보다 열심이다. 의사가 진료실 밖에서까지 환자들과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좋은 이야기도 두세 번 들으면 귀찮은 법인데 아픈 얘기, 힘든 얘기는 오죽하겠나.

"환자들은 의사와 사적인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안심해요. 그렇게 만나면서 환자들의 생각과 생활을 공유하는 것이 진료 현장에서 도움이 많이 되기도 하고요."

그는 말한다. 의사는 환자를 좋아해야 한다고. 좋아야 돌봐주고 싶고, 아픔을 해결해주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들의 상황을 함께 느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단다.


이런 그를 환자들은 '의사'가 아니라 '우상'이라고 표현한다. 이병림 비너스회 회장은 "굉장히 바쁘실텐데 치료를 마친 환자들에게까지도 상당히 신경을 써주세요. 환자들 모임에도 늘 참석해주시고, 의사 대 환자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해주시죠."

그의 연구실은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증거물'들로 가득했다. 벽에는 환자가 그려준 초상화 여러 점이 걸려있으며, 책상 유리 속에는 환자들과 함께한 사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책장 한 켠의 파일북에는 환자들에게 받은 '팬레터'가 그득했다.

유방암 환자들은 치료보다 치료 후 가슴절제로 인한 고통이 더 크다. 수술 후 생존한다고 해도 여성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에 우울증에 빠지는 것이 사회문제화 될 정도다. 따라서 치료 후에도 꾸준히 격려하며 자신감을 주고, 그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은 치료만큼 중요하다.

노 교수는 예방캠페인에도 직접 나서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0년 한국유방건강재단을 설립하고 '유방암 예방 핑크리본캠페인'을 주도해왔다. 여성암 중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이 발병하지만 대부분 환자들이 말기에 병원을 찾는 현실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이제는 '핑크리본'하면 '유방암', '노동영 교수'를 떠올릴 정도다. 특별한 날 주변에서 받는 선물도 대부분 '핑크색'이다. 넥타이도, 손수건도 모두 핑크색인 이유다.
↑노동영 소장의 연구실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감사패와 공로패들.ⓒ이경숙 기자↑노동영 소장의 연구실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감사패와 공로패들.ⓒ이경숙 기자
"아버지(노관택 경기도립의료원 파주병원 난청센터장)께서 언젠가 '너 매일 그렇게 여자들한테 둘러싸여 있는데 애들 엄마가 뭐라고 안하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옆에서 듣고 있던 어머니도 '난 네 아버지가 그랬으면 가만히 안 있었겠다' 하시며 편드세요. 부모님이 보기에도 그럴 정도이니 가족들이 많이 섭섭해하죠."

그는 이수요씨(48)와의 사이에서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아버지로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 그는 "일요일에까지 병원에 출근할 정도로 가정에 소홀한 아빠"라고 평가한다. 이제 좀 여유가 생기니 세 자녀 모두 대학생이 돼 노 교수만큼 바쁘다.

"한번은 이젠 좀 같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주말에 집에 있었더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아니라 왜 안 나가냐고 되묻더라고요. 이제 늦은 거죠. "

당연히 자녀교육은 부인 차지였다. 이현재 전 국무총리의 맏딸인 노 교수의 부인은 아이들에게 자유와 책임을 강조한다. 워낙 엄격한 가풍 아래서 자라서인지 아이들에게 만큼은 자유를 주고 싶어 한다고.

명의 2대를 낳은 집안이지만 노 교수의 자녀들은 모두 의대와 거리가 먼 전공을 택하고 있다. 두 딸은 문헌정보학과 아동학을, 아들은 관광경영을 공부한다. 그는 아이들은 물론 아이들 배우자로도 의사를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의사의 삶'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솔직히 전 아이들에게 이거해라 저거해라 주문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에요. 일에 빠져 같이 보낸 시간이 적다보니 '말발'이 안 서는거죠.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와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있는데 이해하기 쉽지 않은가봐요."

↑노 소장의 연구실 책장 한켠에 꽃힌 파일북들에는 환자들이 보내온 편지가 가득했다. ⓒ이경숙 기자↑노 소장의 연구실 책장 한켠에 꽃힌 파일북들에는 환자들이 보내온 편지가 가득했다. ⓒ이경숙 기자
그가 생각하는 가정교육은 '분위기'였다. 꼭 얼굴을 보지 않아도, 대화를 하지 않아도 집안 분위기 자체가 교육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은 그랬다. 그의 아버지 노관택 박사도 지금의 그 못지않게 바빠 함께하는 시간은 적었지만 풍기는 '느낌'만으로 뜻을 알 수 있었단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의사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당연히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사가 흔치 않던 시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환자들을 대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의사 이외의 길에 한눈을 팔아본 적이 없다.

있다면 프렌치호른 정도? 중학교 때 그는 독학으로 피아노를 공부할 정도로 클래식에 빠졌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가장 먼저 찾아간 곳도 오케스트라 서클이었다. 다룰 줄 아는 악기 하나 없이 무턱대고 찾아간 서클에서 프렌치호른을 접하고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오케스트라 지도교수가 되는 꿈도 이뤘다. 8년째 지도교수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의사는 예술과 가까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사람을 다루기 때문에 깊이 있는 예술적 감수성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의사들이 더 순수하고 따뜻하다고 믿는다.

"아버지도 항상 강조하셨지만 사람살이에는 무엇보다 '예'(禮)가 중요해요. 타인을 배려하고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이죠.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료해주는 의사에겐 두 말할 필요가 없어요."

지식만큼 경험과 철학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노 교수. 그는 오는 8월 24일 80여명의 의대생 단원들과 KBS홀에 선다.

◇노동영 교수 약력

△1989~현재 서울의대 전임의, 조교수, 부교수, 교수
△1993~1995년 미국 국립보건원 전임의
△1991~현재 대한암협회 상임이사
△1993~1995 미국 국립보건원 국제 연구전임의
△1996~현재 한국유방암학회 상임이사
△1999~현재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 이사
△2000~현재 서울지방법원 자문위원
△2000-현재 한국유방건강재단 상임이사
△2000~2004년 서울대병원 의무기록실장
△2003~2004년 서울대병원 의료정보센터장
△2004~현재 과학기술 한림원 정회원
△2007~현재 보건복지부 의료전문평가위원
△현재 2009년 세계 유방암학회 조직위원장
△현재 한국유방암학회 차기 이사장
△학력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사(1981년) 및 의학박사(1986)
△상훈 = 오가논 인터내셔널 젊은 연구자상(2001년), 한국유방암학회 동아학술상(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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