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찬 거리, 텅빈 권력, 멈춘 경제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8.06.1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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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바다, 2008년 대한민국의 세 풍경

꽉찬 거리, 텅빈 권력, 멈춘 경제


#6월10일. 촛불을 든 수십만의 인파로 거리가 꽉 찼다. 열기는 21년 전 1987년 6월 못지 않았다. 오히려 더 뜨거웠다.

 문화는 진화했다. '폭력'은 사라졌고 자발적 비폭력의 성숙함이 엿보였다. 민주주의의 새 모습이란 평가도 나왔다. 외침도 컸다.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전국민의 함성은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정부의 독주에 제동을 거는 성과도 일궈냈다.



 #6월10일. 대한민국은 텅 비었다. 촛불로 꽉 찬 거리와 대조를 이뤘다. 청와대 참모진의 사표 제출에 이어 한승수 총리를 비롯 내각까지 일괄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사표 수리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사의 표명만으로 국정 운영은 일시 중단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정부가 빈 셈이다. 게다가 18대 국회는 개원조차 못했다. 자연스레 국회의사당도 텅 비어있다.



 #6월10일. 대한민국의 엔진이 멈추고 있다. 꽉 찬 거리와 텅 빈 권력 사이 경제의 흐름이 끊길 상황에 직면했다. 이른바 노동계의 '총파업'이다.

 건설노조와 화물연대는 이미 파업을 결의했다. 쇠고기 문제와 고유가 악몽이 이유다. 정치와 경제적 이슈가 결합돼 있다보니 추진력이 예전보다 강하다. 여기에 민주노총까지 총파업 투표에 돌입했다.

 대한민국의 현재다. 꽉 찬 듯 하면서도 텅 빈 상황이다. 굴러가는 것 같지만 안정된 게 없다. 청와대, 행정부, 입법부는 사실상 멈췄다. 공무원들은 새 정부 들어 잇단 질책에 일손을 놓았다. 경제 엔진도 멈췄다.


 1차적 책임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 '긴박'하다지만 겉모습에선 그리 급해 보이지 않는다. 수습책이나 쇄신책은 차일피일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답을 내놔야할 때가 된 것 같다"며 "현재의 상황을 마냥 끌고 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끝까지 고민하는 스타일이지만 이번에는 좀 달라야 한다"며 "대통령이 결단하고 국민들도 일정 정도 타협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6.29 선언과 같은 특단의 대책이 돌파구가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우세하다. 정치의 실종이 대의민주주의 대신 거리 민주주의를 만들었다는 이유에서다. 정치권 한 인사는 "정치인들이 파업을 하고 있는 마당에 노동계에 파업을 자제하라고 할 수 있겠냐"며 "이제 여야가 국회에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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