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에게 없는 것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08.06.0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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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성공학]42번째..'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1. 저명한 산업심리학자인 폴 바비악 등이 쓴 책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랜덤하우스)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리들이 다니는 직장에도 이른바 '사이코'들이 널려 있다는 거다. 게다가 그들은 얼핏 보면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며 카리스마 넘치는 인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사람들이 비즈니스에 적합하다고 착각하는 ‘냉담함’이나 ‘자기도취적 심리’(자긍심), 포식자적 본능 같은 반사회적인 사이코패스의 특성으로 중무장한 채 말이다.

이 화이트컬러 사이코들은 남다른 지능과 포장술, 당당하고 거리낌 없는 태도로 주위 사람들을 조종해 결국에는 자신이 속한 조직은 물론 사회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더구나 권력의 지위에 오르기까지 이 같은 부정적인 성격을 감추는 데도 매우 탁월하다. 그래서 저자들은 이들을 ‘양복 입은 독사(Snakes In Suits)’라고 비유했다.



책에 인용된 산업심리학자인 보드와 프리츠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영국 최고경영자들의 인격적 특성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이 사이코패스의 특성과 일치했으며 임원 승진 대상자 중 3.5%가 사이코패스로 드러났다고 한다.

저자는 그래서 이런 화이트컬러 사이코들에 의해 기업이 조종당하지 않으려면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기업의 문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진단한다. 사람을 단순하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나 통제의 대상이 아닌, 공감하고 이해하고 협동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같은 조언이 과연 기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지.



2. 가치 있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뭘까. 실력이나 정신력 이전에 공감하는 힘(공감력)이 있어야 한다. 칼 알브레이트의 저서 'SPACE 호감의 법칙' 에서는 이 공감력이 다른 사람과 유대감을 나누며 협력하는 데 바탕이 된다고 적고 있다. 동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채 모두가 만족하는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른 사람과 공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을 측은하게 여기는 '측은지심'이 있어야 한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고통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덕성이다.

심지어 동물들 조차도 이런 마음이 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한 칼럼에서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 내용을 소개한 적이 있다.


두 마리의 쥐를 각기 나란히 위치한 우리에 각각 가둬두었다. 첫번째 쥐가 우리속의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오는데, 이 때마다 옆 우리에 있는 쥐가 전기 쇼크를 받도록 장치돼 있었다.

과연 쥐는 버튼을 눌러 먹이를 실컷 먹을 것인가. 아니다. 이 상황에서 첫번째 쥐는 머지않아 스스로 먹이를 먹는 것을 포기하고 굶주림을 선택한다. 아, 쥐 조차도 내 옆 다른 쥐의 고통을 모른 척 하지 않는다.



↑출처: 영화공식 홈페이지↑출처: 영화공식 홈페이지


3.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감동 실화를 담아냈다.

다만, 최고의 명승부가 이뤄지기까지 이면을 담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픽션이다. 영화 '우생순'은 스포츠물이면서 한편의 훌륭한 리더십 교과서이기도 하다.

먼저 감독을 맡았다가 나중에 선수로 나선 혜경부터 살펴 보자. 그녀가 감독을 맡을 당시, 대표팀의 전력은 수준 이하였다. 체력도 정신력도 형편 없다. 이미 두번이나 금메달을 딴 경험이 있던 엘리트 선수였던 혜경이 보기에 이런 후배 선수들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당연히 자신이 배운 대로 매섭게 몰아부치며 혹독한 훈련을 시키지만, 젊은 선수들은 그저 마지못해 따를 뿐이다. 생각다 못한 혜경은 자신의 동료였던 미숙과 정란을 대표팀으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후배들은 영 못 마땅하다. 자신들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듯 하여 내심 불안하다. 이러니 팀 워크가 생길 리 없다. 자연스레 불화가 생긴다.

그러나 혜경을 포함한 미숙과 정란은 결국 후배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운동 후 뒷정리를 솔선수범하며, 생리 조절제를 먹으면 나중에 불임으로 고생하게 된다는 경험 같은 것을 따뜻한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조언해 준다. 우락부락한 여자 유도부원들의 텃새를 아줌마의 파워로 막아주기도 하고. 차츰 언니들의 이런 열정을 이해하게 된 후배들은 실력있는 이 선배들을 진심으로 따르게 된다.

혜경의 뒤를 이은 감독 승필도 마찬가지 수순을 밟는다. 처음엔 선수들의 습성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유럽식 훈련방식을 도입, 냉철한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선수들을 기계적으로만 대한다. 그러나 동료를 아끼는 혜경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선수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아끼는 감독으로 변한다. 결승전의 승부 던지기를 앞두고 그가 한 말은 정말로 따뜻하다. "혹시 지더라도 우리 절대 울지 말기로 합시다."



영화에서도 보듯, 저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정신력은 그저 조직원들을 몰아 붙인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구성원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교감할 때 정신력은 자연스레 강해진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품어내는 그릇의 크기가 큰 사람이 리더로서 훨씬 더 어울리는 것 같다.

4. 최근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는 촛불집회가 한창이다. 국민들은 광우병이 의심되는 미국산 쇠고기가 먹기 싫다고 끊임 없이 거리로 몰려 나온다. 그런 국민들을 군화발과 물대포로 강경진입하는 경찰 조차도 그들의 급식을 위한 입찰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배제하는 판에, 대통령 등 정부 관계자들은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로또 당첨됐다가 벼락맞을 확률', '복어에서 독을 빼고 먹는 것과 같다', '질 좋고 값싼 고기' 등 밉상 가득한 소리를 물대포 쏘듯, 군화발 날리듯 해댄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층의 입장에서 국민은 무지하고 우매하기 짝이 없다. 미국 의회의 비준을 받아 한미 FTA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의 쇠고기를 수입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질 좋고 싼 고기'인데, 진짜 광우병 걸릴 확률이 낮은데도 왜 이렇게 안 먹겠다고 말을 안 들어먹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니 기껏 나오는 말이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알아내라'일 밖에.



이 대목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삶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원인을 얼핏이나마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약관의 나이 35세때 현대건설 사장에 올라 무서운 추진력으로 70~80년대 개발 건설신화를 이룩한 '불도저형' 1세대 CEO 출신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1세대 CEO로서 이명박은 '이행형' 또는 '가신형' CEO라는 점이다. 즉, 정주영이라는 걸출한 보스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출세 가도를 달렸으며, 보스와 조직이 부여하는 과업을 충실히 이행하여 인정받은 케이스다.

반드시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이같은 유형을 가진 인물들의 주된 관심사는 단연코 부여받은 과업이다. '잘난' 자신이 부리는 사람들은 과업 달성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또 과업에 방해되는 요소는 밀고 지나가야 하는 한낱 방해물일 뿐이다. 그러니 이 대통령 입장에선 과업인 무역 활성화를 위해 미국 쇠고기 수입은 강행해야 겠고, 그걸 먹고 싶어하든 말든 간에 국민들의 의사에는 별 관심이 없을 수 밖에.



초기 산업화 시대에서 가난을 이기기 위해 오직 성공만을 향해 달린 CEO였던 이명박. 어쩌면 그의 속내에는 두려워하는 민초들의 여린 마음까지 담아낼 공간이 없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적어도 최근 이 대통령의 행보로 보면 정말 그렇다.

5. 카를 R. 포퍼는 다음의 3가지 생각을 '열린 사회의 적'으로 규정했다. 전체 집단에서 한 가지 정도는 잃어도 아무 상관없다는 주장(전체주의), 개인은 전체 사회의 흐름에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견해(역사적 법칙론), 당면한 현실보다는 이상만을 추구하는 생각(유토피아주의)이 바로 그것이다.

포퍼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의 지금까지 행보가 딱 '열린 사회의 적'에 해당한다. 무역활성화를 위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아무리 낮다해도) 국민들이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은 뒷전으로 두는 것이 그렇고, 정부가 정한 방향에는 국민들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고집이 그렇고, 국가에게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국민들의 불안보다 (확실치도 않은) 무역상의 이익만을 쫓는 행보가 바로 그렇다.



포퍼는 이에 열린 사회를 향한 해결책으로 '방법론적 개체주의'를 역설한 바 있다. 어떤 사회나 집단은 하나의 이론적 구성물일 뿐, 개개인을 무시한 사회는 존재가치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단 한 사람의 광우병 환자가 생길 가능성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열린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자세라 할 수 있겠다.

공자의 말씀도 이번 촛불집회 사태를 해결하는 좋은 참고가 된다. 제자인 자공이 정치에 대하여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는 "먹을 것이 풍족하고, 방위가 튼튼하며, 백성이 나라를 믿고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공이 "부득이 이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공자는 군사력이라 답했다. 그렇다면 남은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하느냐고 자공이 또 물었다. 공자의 답은 이러했다. "먹을 것이다. 백성들에게 믿음이 없다면 나라 자체가 존립할 수 없느니라."

3일 드디어 정부가 국민적 여론을 반영,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금지 등 부분적인 재협상에 나서기로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러나 이제 국민의 관심은 이제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 뿐 아니라 통치 방식과 철학, 그리고 어떻게 국민의 호감을 얻어 공감대를 형성하느냐의 문제로까지 커져있다. 대통령부터가 달라져야 하고, 그 주위에서 "(투기 의혹을 묻는 질문에) 귀신이 했나 보지요", "신앙심이 부족해 정책이 실패한 것"과 같은 말을 함부로 해대는 부도덕하고 무능한 인사들을 확 걷어내야 한다.



취임100일을 맞은 우리의 대통령. 앞으로 '사이코패스'처럼 행동하면서 우리나라를 망치는 '열린 사회의 적'이 될까, 아니면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내 '선진 한국'으로 가는 기틀을 다질 수 있을까. 지금 그 선택의 공은 대통령에게 넘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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