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용 부회장이 직원에 남긴 이메일

머니투데이 오동희 2008.05.1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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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42년이 내 인생 자체, IMF때 가슴아팠다..VCR문제로 원형 탈모증 앓아"

윤종용 부회장이 직원에 남긴 이메일


다음은 지난 14일 삼성전자 (63,000원 ▼100 -0.16%) CEO에서 물러난 윤종용 상임고문이 15일 삼성전자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보낸 이임사 전문이다.

<이임사>



오늘 이 자리에 서니 정말 마음이 홀가분합니다.
무거운 짐을 항상 두 어깨에 짊어지고 살다가
이제 내려놓게 되니 너무도 홀가분합니다

그러나 또한 만감도 교차합니다
세상사는 유시유종으로 시작이 있으면
끝도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42년전 대학을 갓 졸업한 팔팔한 청년으로 삼성에
들어왔던 나에게 있어서
삼성은 나의 인생의 모든 것, 그 자체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그동안 삼성 안에서 여러 분들과 같은
훌륭한인재들과 동고동락을 하면서
일을 배우고 인생을 배우면서
꿈꾸어왔던 것의 대부분을 이루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오늘의 삼성전자 위상과 모습을 보면
저 스스로도 대견스럽고 실감이 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중장기적으로 원대한 목표를 세울 때만 해도
마음 한구석에 "과연 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일말의 불안감과 부담도 있었지만
우리는 놀랍게도 목표를 초과달성하거나 조기에
성취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쉽지 않은 여정에서 임직원 여러분은 항상 저에게
한없는 신뢰와 믿음을 보여주었고
불굴의 투지와 노력과 희생으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최고의 인재들과 함께 지구촌을 대상으로 펼친
치열한 대회전 속에서 우리는 실패가 아닌 승리를
좌절이 아닌 극복과 도약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여러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난해말 뜻하지 않게 삼성이 어려운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 되면서 저도 걱정과 번민이 많았습니다.

초일류로 가는 길목에서 터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수개월 동안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지장을 받고
우리 임직원들은 물론 가족들까지 자부심과 명예에
상처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에야 말로
그룹 창립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직감했습니다.



급기야 그룹을 일사분란하게 이끌어오시던
회장님이 퇴진하시고 전략기획실이 해체되는
그룹의 경영쇄신안이 발표되는 순간
IMF 등 어려운 경영상황에서도 고락을 같이하며
극복해왔던 저도
분명하게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2년여 전부터 후진양성을 위해 퇴진해야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위기에 처한 분위기를 일신하고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는
그룹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도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
판단하여 용퇴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장들과 사업부장들의 역량도 많이 향상되어
회사발전의 기반이 구축되었고
그 결과 회사도 일류회사로 진입했습니다.



또한 제 후임을 맡은 이윤우 부회장의
경륜과 연륜을 고려할 때
CEO로서 충분히 잘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돌아보면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제가 담당했던 어느 사업, 어느 업무 하나
애착이 가지 않는 것이 없지만
그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5년 가까이
VCR 사업을 맡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경험입니다.



워낙 기술이 없고 어려운 사업이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고, 선대 회장님의
관심 제품이어서 큰 중압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당시 부회장이던 이건희 회장님의 엄명으로
사상 초유로 3개월간 라인을 세우고 품질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얼마나 힘겨웠던지 원형 탈모증이
걸리기도 했지만 초창기의 어려움을 겪고
세계적으로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제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이
97년 삼성전자 총괄 대표이사로 부임하자마자
겪어야 했던 IMF의 위기입니다.

재무적으로 회사는 거의 도산상태에 이르렀고
위기의 극복과 회생을 위해서는
기존 사업 중 상당부분을 대폭 정리해야 했습니다.
또, 30%에 달하는 임직원들의 구조조정을 포함한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회사의 최고 책임자로 결정해야만 했던 모든 것이
너무 힘들었고 어려웠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
어느 때보다도 결연하고 단호하게 결정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 불가피하게 희생되었던
동료 임직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그들의 희생과 남아있던 여러분들의 노력으로
회사는 재도약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고
디지털 시대에 효과적으로 진입하여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떠나지만 그 동안 느끼고 배운
경험과 노하우는 조직에 전승이 되고 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2003년부터 제 생각과 경험을
책으로 정리하여 임직원들과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경영자로서 책임이 무거워지면서
"경영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
고민하면서 성공한 기업들의 사례를 수집하여 조사하고
그런 과정에서 그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 기업사와
산업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초일류로 가는 생각'입니다.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유능한 선후배가 많은 삼성이라는 훌륭한 조직 속에서
선대 이병철 회장님과 이건희 회장님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고 훈련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저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있었고
이 책을 읽은 많은 임직원들로부터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생각하게 되어
보탬이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보람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제가 떠나기 전
몇차례 수정, 보완할 기회가 있었지만
본래 의도했던 것에 비해 아직 미완성으로서
앞으로도 여러분이 공부하여 부족한 부분을
계속 채워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기회를 빌어 후배 임직원 여러 분께 몇가지 당부를 드리고자 합니다.

작년부터 세계 주요지역을 돌아보면서
인류의 문명과 산업화의 흐름을 바꾸어 온
역사적인 지역을 찾아 해당지역의 사업책임자들과 함께
앞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를 새롭게 하고
결의를 다진 바 있습니다.



또 동서문명의 교류와 네트웍을 형성했던
실크로드를 따라 바쿠에서 결의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땅, 새로운 길을 개척했던 대항해 시대의
항로를 따라 인도의 코친과 필리핀의 세부에서도
모험정신으로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자고 결의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에는 제철산업으로 산업혁명의
기폭제가 되고 철길을 열어 간
영국의 버밍햄에서 원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모두가 같이 뛸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짐과 결의가 모두 달성된다면
그 때는 분명히 초일류로 확실하게 진입한
삼성전자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저와의 약속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의 다짐이고 결의이므로
반드시 달성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한가지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윗 사람의 지시를 기다리기 전에
스스로 고민하고 깨우쳐 길을 열어 나가는
창조적인 리더가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저는 기회있을 때마다 격물치지(格物致知)를
강조해왔습니다.



이는 사물의 본래의 근본 이치를 알아내는 경지를 말합니다.

항상 깊이 생각하고 집중하는 회장님을 대할 때마다
사물을 완전히 꿰뚫어보는 격물치지의 경지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삼성전자는 이미 많은 부분에서 세계 1위를
점하고 있거나 정상 수준에 도달하여 있습니다.



그동안에는 앞서 달리던 선두주자를 벤치마킹하고
배울 수 있었지만 지금부터는 우리가 나아갈 길에
쉽게 참조할 선생도 답안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가치관, 사고방식, 일하는 방법이
과거와는 달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집중하여 스스로 깨우치지 않으면
2위와의 간극을 벌리고 확실하게 정상을 굳건히 지킬
방도를 찾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자만을 경계하고 성공에 도취되지 말고
항상 새롭게 변화하고 혁신을 계속해주시기 바랍니다.

내년이면 삼성전자가 창립 40주년을 맞이합니다.
불혹의 나이가 되는 것입니다.

기업사에 삼성전자만한 성공사례도
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통과 위상을 뽐내던 세계 정상의 기업들도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현재에 만족하고 과거의 성공에 도취되어
방심하고 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지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쉬지 말고 내일과 미래를 보면서 뛰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임직원 여러분!



이제 저는 홀가분하게 무거운 짐을 내려놓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영원히 내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며
더욱 발전하는 회사의 모습을 뒤에서
열심히 성원하겠습니다.

임직원 여러분!
우리의 꿈이었던 초일류기업 삼성전자를
꼭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동안의 고마움을 어찌 몇마디의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 분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임직원 여러분과 가정에 항상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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