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쇠고기 협상, 정부 '속았나 믿었나'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8.05.1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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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예고안과 고시안 달라 '기망행위' 의혹

-미국 동물성사료 강화조치, 2005년 10월 입법예고안에서 후퇴
-30개월 미만 뇌와 척수는 동물성 사료 가능
-정부, "구체적 협의 안했지만 안전성 문제 없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의 근거가 되는 새 수입위생조건의 국내 고시가 임박한 가운데 '기망행위'(속임수) 논란이 막판 변수로 대두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측이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2005년 10월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와 관련한 입법예고한 수준의 관보 게재를 언급해놓고도 정작 지난달 25일 미국 FDA(식품의약국)가 연방관보 고시는 다르게 했다는 의혹이다.

미국은 2005년 10월 입법예고를 통해 도축검사에서 불합격된 모든 연령의 소에서 뇌와 척수가 제거되지 않으면 동물사료로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쇠고기 협상 이후의 4월 고시안은 30개월 이상 소에 대해서만 뇌와 척수를 제거토록 돼 있다. 다시 말하면 30개월 미만 소의 뇌와 척수는 동물성 사료로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정부는 광우병 사태가 커진뒤 내놓은 지난 2일자 보도자료에서 "30개월 미만 소라 하더라도 도축검사에 합격하지 못한 소의 경우 돼지 사료용 등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이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미국측이 2005년 입법예고 안대로 관보에 게재할 것처럼 했다가 다른 내용을 개제했다면 '기망행위'에 해당돼 협상 자체를 파기할 수도 있는 중대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만일 미국이 입법예고 내용대로 하겠다고 합의해 놓고도 관보에서 다르게 공고한 것이라면, 이러한 미국의 기망행위를 이유로 30개월령 해제 취소가 가능하다"며 이에 관한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미국측이 취할 동물성사료 금지 강화조치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협상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30개월 이상 쇠고기에 대한 강화된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를 연방관보에 게재하는 시점에서 수입키로 합의했으면서도 미국측 조치에 관해서는 협의를 생략했다는 것이다.

우리측 협상 대표였던 민동석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은 12일 "그 부분에 대해서 미국측과 별도로 협의를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안전성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에서 어떤 내용으로 강화된 동물성 사료금지 조치를 고시할 것인지를 묻지는 않았지만 이미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받은 만큼 주요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공식 해명자료를 내고 "2005년 입법예고안에서 일부 수정이 됐다고 해도 30개월 미만 소의 뇌와 척수는 광우병을 전파시킬 가능성이 있는 광우병 위험물질(SRM)이 아니어서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 정책관은 "(따로 협의는 하지 않았지만) 2005년 입법예고안을 머리에 두고 있었다"고 말해 미 FDA가 우리측 협상단이 생각했던 것보다 '낮은 단계'의 조치를 게재했음은 인정했다.

민 정책관은 "광우병에 걸린 소 전체를 동물성 사료로 쓸 수 없도록 한 점은 2005년 입법예고 때 없었던 것으로 이전보다 강화된 조치"라고 덧붙였다.

농식품부는 2일자 보도자료와 미국측 관보 내용이 틀린 점에 대해서는 "행정상의 착오로 미국의 연방관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 해명이 사실이라고 해도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안전성이 의심받으면서 국내에서 '광우병 파동'까지 발생한 점에 비춰 우리측 협상단이 너무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또 단순한 번역상의 실수로 보기엔 웬지 미심쩍다는 의문도 많아 이를 둘러싼 의혹도 또다른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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