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박근혜,108일만에 달라진 '동반자'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8.05.0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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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의 여의도 편지]

편집자주 별명이 '제비'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릅니다.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유도 명확치 않습니다. 이름 영문 이니셜 (JB) 발음에 다소 날카로운 이미지가 겹치며 탄생한 것 같다는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이젠 이름보다 더 친숙합니다. 동여의도가 금융의 중심지라면 서여의도는 정치와 권력의 본산입니다. '제비처럼' 날렵하게 서여의도를 휘저어 재밌는 얘기가 담긴 '박씨'를 물어다 드리겠습니다.

# 지난 1월23일. 이명박(MB) 대통령 당선인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자리를 함께 했다.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다녀온 박근혜가 MB에게 방중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였다.

서면 보고도 가능하니 회동까진 필요 없었다. 하지만 둘은 마주 앉았다. 양쪽 모두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친박(친박근혜)' 인사들은 ‘친이(친이명박)’이 공천에서 자신들을 제거할 것으로 확신했다. '살생부'가 공공연히 떠돌기 시작한 것도 이 때다.

MB측에선 '친박' 인사들의 집단 행동 가능성을 점쳤다. 탈당, 창당 등의 얘기가 떠돌았다. 파국을 막기 위한 자리가 1.23 회동이었다.



# 파국은 없었다. MB와 박근혜는 모두 "(공천은) 당에서 원칙과 기준을 갖고 공정히 잘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 날 이후 둘 사이의 관계는 더 악화됐다. 감정은 상했고 상호간의 신뢰는 깨졌다. 박근혜는 MB의 약속 위반을 문제 삼았다. 영남권 공천 학살, 친박 인사들의 공천 탈락 등은 배신감을 더했다.

박근혜는 낙천한 뒤 탈당한 친박 인사들에게 "살아 돌아오라"고 했고 그들은 살아 돌아왔다. 박근혜는 살아 남은 인사들의 "복당"을 요구했다. "4.9 총선의 민의는 여기 있다"고 자신감도 드러냈다.


# MB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총선 직후 "국내엔 내 경쟁자가 없다"고 했다. "친이는 없다. 친박은 몰라도…"라고도 했다.

복당을 요구한 박근혜을 향한 답이었다. MB는 '과반 의석'을 믿었다. 4월 민생 국회, 과반 의석을 통한 개혁 정책 실행 등을 구상했다. '당내 화합'보단 '국정 운영'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박근혜 역시 끈질겼다. 특유의 한마디 정치로 MB를 건드렸다. 계파 정치란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선별 복당은 정당한 방법이 아니다"(4월11일) "전당대회 불출마할테니 복당 허용하라"(4월25일) 등 압박 강도도 더했다.

# 점점 멀어지는가 했던 둘이 10일 만난다. 108일만의 조우다. 총선 이후 자존심 싸움을 벌인지 꼭 한 달 만이다.

MB가 한 발 물러났다. 상황이 MB편이 아니었다. 인사 파동, 재산 파동, 쇠고기 파동 등 집권 2개월반만에 각종 파동으로 MB의 지지율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박근혜와의 신뢰가 깨져도 국민의 신뢰만 얻으면 된다는 신념이 있었으나 이 믿음조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마저 완전히 등을 돌리면?'이란 생각은 걱정이 됐다.

MB는 결국 박근혜를 향해 손을 벌렸다.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서라도 '당내 화합'은 필수 조건이 됐다. MB의 복심으로 평가받는 류우익 대통령실장이 직접 박근혜에게 전화를 한 것도 신뢰 회복을 위한 작은 노력이었다.

하지만 깨진 신뢰를 회복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시기와 의제 등에 대한 양측간 `기싸움'으로 진통을 겪으며 회동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데만 3주가 걸렸다.

# MB와 박근혜 회동 자체가 둘 간의 신뢰 회복을 뜻하지는 않는다. MB쪽에선 만남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친박쪽에선 "이제 시작" "지켜보자"란 입장이다. "워낙 당한 게 많아서…"(친박계 의원)란 말도 나온다.

6개월 전 비슷한 상황에서 MB는 "정치적 파트너, 국정의 동반자"라는 말로 박근혜의 힘을 얻었다. 그러나 이번엔 '말 한마디'로 박근혜를 얻기는 힘든 상황이다. ‘말 한마디’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경험 때문이다.

구체적 선물이 필요하다. 그 답은 박근혜가 한달간 외쳐온 친박 인사의 복당이고 이는 곧 박근혜의 힘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과연 MB가 조건없는 복당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깨진 거울을 붙이려면 둘 모두 갈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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