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받아 기부하는 컨설턴트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2008.04.0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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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머니,기적을 일으키는 돈]<2-2>고영 컨설턴트 기부ㆍ봉사하게 된 사연

대출 받아 기부하는 컨설턴트


2006년, 그는 '연봉의 80%를 기부하는 컨설턴트'로 처음 언론에 소개됐다. 지난해엔 그가 변호사 입회 하에 ‘사망 시 전 재산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내겠다’는 유서를 썼다는 소문이 들렸다.

최근 그의 소식이 다시 들렸다. 그가 '바리의 꿈'이라는 사회적기업을 무료로 컨설팅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바리의 꿈'은 러시아 연해주 자연농 청국장을 팔아 연해주의 가난한 고려인 동포를 돕는다.



이미 그는 2006년부터 '아름다운가게'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름다운가게는 기부 받은 물품을 팔아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회적기업이다.

얼마전 그는 주변의 컨설턴트, 회계사, 펀드운용역 등 전문가들과 함께 '사회적기업컨설팅그룹'이라는 전문가 자원봉사단을 만들었다. 뜻 있는 전문가들이 힘을 모아 사회적기업들을 돕자는 취지였다.



그의 미담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의문을 제기했다. "어떻게 연봉 80%를 기부할 수 있느냐, 부잣집 아들 아니냐." "나중에 출마하려고 미리 평판 만드는 것 아니냐." 등등.

미담의 주인공인 고영(32, 사진)씨를 만났다. 그는 부잣집 아들도, 국회의원 후보도 아니었다. 그의 가족은 평범한 서민층이었고, 그는 한 외국계 컨설팅기업의 컨설턴트였다.

남다른 점이라면 '믿음'과 '꿈'이랄까. 그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잃은 믿음은 군대에서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후 더 신실하게 되살아났다.


그는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앞으로 가난한 사람들도 치료 기회를 얻을 수 있게 10조원을 모아 재단을 세우는 것이 꿈이란다.

"도우면서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돕지 않는다면 느끼지 못할 깨달음이 있습니다."



남다른 그의 기부, 봉사 이력을 만든 건 보이지 않는 신의 힘뿐만이 아니었다. 거기엔 보이는 사람의 힘도 작용했다.

2003년 초, 그가 고려대 총학생회장에 출마했다가 떨어졌던 때 일이다. 갚을 빚은 800만원. 그해 겨울, 그는 하루 1끼를 먹으면서 버텼다. 다음 학기에 진학할 대학원 등록금은 당연히 없었다. 그는 "그땐 얼굴도 못 들고 다녔다"고 말했다.

"어느날 학교 앞 영철버거를 지나는데 영철이형(이영철 영철버거 사장)이 저를 불러 세워요. 새벽 1시반쯤이었죠. 1000원짜리 햄버거 하나를 주면서 자판기에서 100원짜리 커피를 뽑아줬어요. 그러면서 자기가 막노동하던 시절 얘기를 해줬죠."



그 때 그의 굳은 마음을 녹인 것이 빈 속을 채우던 햄버거였을까, 자판기에서 뽑은 따뜻한 커피 한잔이었을까. 아니면 초등학교 4학년도 마치지 못했다는 '영철이형'이었을까.

"영철이형이 그랬어요. 고개 숙이고 다니지 말라고. 세상에 질 것 같아도 고개를 들고 다니라고. 그게 잘 안 되면 그냥 사람들한테 인사하라고."

'영철이형'은 그에게 등록금 330만원을 건넸다. 아무 조건 없이. 하지만 고씨는 고대 경영대학원을 다니면서 10만원, 20만원씩 그 돈을 갚았다. 석사수료 뒤엔 주변에서어려운 사연을 들을 때마다 돈을 건넸다.



최근에도 그는 종자 살 돈이 없는 연해주 고려인들에게 2500만원어치 종자를 지원했다. 그 탓에 그의 마이너스 통장은 한도가 소진됐다.

그는 또 "출소하면 고통 받는 사람을 돕는 상담가가 되고 싶다"는 재소자와 자활 기회를 잡지 못한 성매매 피해자도 돕고 있다. 아무 조건 없이.

혹시 그들이 고씨의 선의를 이용하는 건 아닐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는 "그냥 반응하고 믿는다"고 말했다.



"세상엔 온통 판단(하려는 사람)만 있습니다. 때론 판단하지 않고 믿는 게 필요해요. 컨설팅 때 변화 관리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게 '불신'입니다. '동기'는 그 다음 문제죠. 믿음이 사람을 바꿉니다. 제가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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