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행위로 '자리리타' 실현해야"

대담=홍찬선 부국장, 정리=이경숙 기자 2008.03.1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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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초대석]송월주 실업극복국민재단 이사장

↑송월주 스님 ⓒ임성균 기자↑송월주 스님 ⓒ임성균 기자


3월 12일 아침, 봄기운 도는 아차산자락 영화사 회주실. 월주(月珠·73) 스님의 방은 자연보다 사람의 세계와 더 가까웠다.

창호문 저편 어딘가에서 굴삭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나무탁자 아래에선 장난감 산새가 지지배배 지저귀었다. 여닫이문 바로 옆엔 여러 신문사 일간지들이 사람 앉은 키 높이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 문 맞은 편, 가장 눈에 띄는 벽에 걸린 편액(扁額)엔 이렇게 쓰여 있다. '귀일심원 요익중생(歸一心源 饒益衆生).' "본래의 청정한 마음으로 돌아가 중생에게 풍요로운 이익을 준다"는 원효대사의 말이다.



전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불교계 큰 어른은 세계 빈곤인구, 국내 실업률 같은 통계를 줄줄줄 읊다가 '자리리타(自利利他)' 같은 법어로 말을 맺었다.

그는 "경제행위가 나도 행복하게 지내면서 남도 행복하게 하는 원력(願力)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생명의 우물 희망콘서트'에서 스님을 뵈었습니다. 캄보디아 등지에 우물을 파주는 뜻 깊은 행사였습니다만 객석이 가득 차지 못해 맘이 좀 아팠습니다.

▶2003년에 지구촌공생회를 시작한 후, 캄보디아에 대여섯번 갔어요. 1인당 GDP가 300 달러 정도되는 나라인데,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80%에요.

거기 사람들 사는 집에 들어가서 보니까 천장으로 별이 보여. 그러니 비 오면 춥잖여. 가족들이 집 안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뭘 덮어쓰고 가만히 앉아 있어요. 감기 걸려서 약을 먹으려면 두끼를 굶어야 해.


그래서 요즘은 지구촌공생회에서 모포 보내주기 운동을 하고 있어요. 1만원이면 모포 3장을 보낼 수 있어. 3000만원이면 9000명한테 나눠줄 수 있는 거야.

우리(지구촌공생회)가 활동하는 캄보디아가 상상 바깥으로 어려운 상황이에요. 캄폿주 주민 44%가 웅덩이 물, 강물을 그냥 마셔요. 수인성 병 앓는 사람들이 많아요. 눈물 없인 볼 수 없어.

그래서 우리가 캄보디아에 우물 1000개 파기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370개 정도 팠어요. 가수 '비'도 50개를 팠어.('비는 2006년 자신의 캐릭터 상품 수익금 전액을 기부했다.)

우리가 세운 캄보디아 푸쿠나 초등학교는 처음엔 1칸짜리로 어설프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학생이 280명이에요. 라오스, 몽골에서도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새로 건립하고, 낡은 학교들은 고쳐주고 있어요. 앞으로 네팔, 미얀마에 초등학교를 지으려고 해요.

받는 사람 기쁨보다 주는 사람 기쁨이 더 커요. 사람은 본래부터 자기 지혜와 자비심을 가지고 있어요. 고통을 줄이고 즐거움을 주려는 맘을 본래부터 가지고 있어요. 그걸 측은지심이라고도 하고 인의, 사랑의 정신이라고도 하지.

- 살림살이가 어렵다, 살기 어렵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를 보면 그러한 목소리는 더 크게 들립니다.

▶지구촌 빈부 격차가 심해요. 고통 겪는 사람들도 많고. 전 세계 65억 인구 중에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27억명이고, 1달러 미만이 11억명이에요.

식수난을 겪는 인구는 11억명이라는 말도 있고 16억명이란 말도 있어요. 아직 전기 혜택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20억명이에요.

그런데 한국은 대외개발원조(ODA)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0개국 중 29번째로 해요. 국제연합(UN) 결의로 국민총소득(GNI)의 0.7%를 빈곤국 돕는 데 쓰자고 했는데, 한국은 2006년에 GNI의 0.05%를 냈어요.

우리나라가 6.25 때 초토화됐던 걸 미국, 유럽 같은 선진국 자금을 받아서 복구했어요. 혜택은 줬던 나라한테 갚는 게 아니라 필요한 나라한테 주면 돼.

교통, 통신 발달로 캄보디아나 아프리카 나라 사람들이 병으로 죽어가는 걸 우리가 쉽게 알 수 있어요. 비행기로 1일권에 속하는 나라들이야.

알기 때문에 도와야 해. 다른 종교보다 불교가 (그런 나눔의 문화가) 약해. 내가 선도하는 기분으로 하고 있어요.

- 2006년부터는 실업극복국민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해 국내 실업 문제 해소에도 앞장서고 계십니다.

▶IMF 외환위기로 노숙자들이 지하도에 누워있었을 때 정부 자금이랑 국민 성금을 1400억원 모아서 실업구제를 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제도적으로 그게 정착되면서 실업극복은 정부가, 기업이 다하는 분위기가 되었어요.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실업률이 3.3%(통계청 1월 기준)이어도 저임금의 일용직, 아르바이트 같은 불완전고용을 포함하면 실제로 고용상태는 악성이에요. 고용률은 지난해 59.8%로 수년째 60%에 못 미쳐요. 선진국은 65∼70% 수준이에요.

청년실업률은 7.6%로, 전체 실업률의 두 배를 넘어섰어요. 구직 단념자나 단시간 근무자, 취업 준비생들까지 포함할 경우 청년층의 체감 실업률은 2006년 기준으로 무려 19.5%에 달해 최악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송월주 스님(사진 왼쪽)과 <br>
홍찬선 머니투데이경제방송 부국장<br>
ⓒ임성균 기자↑송월주 스님(사진 왼쪽)과
홍찬선 머니투데이경제방송 부국장
ⓒ임성균 기자
실업극복국민재단은 사회적기업 지원, 청년일자리 창출사업 같이 정부, 기업이 하기 어려운 틈새로 들어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하고 있어요.

- 이런 상황에서 빌 게이츠 같은 자비심은 일부 사람만 발휘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발휘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바탕자리는 자비와 지혜를 본래 갖추고 있어요. 본래 마음자리가 부처에요. 창공에 찬란한 해가 떠 있어도 구름이 가려 해를 못 보듯이 번뇌, 망심, 애착, 이기심이 자기 성품을 가리고 있을 뿐입니다.

진리 깨달으면, 지혜를 알고 보면 천지가 한 몸이고 모든 것이 한 법성이고 한 몸이고 한 생명이에요. 자연히 베풀고 나누는 마음이 일기 마련입니다.

지혜와 자비심은 두 날개에요. 저 편액에 써 있는 '귀일심원'은 지혜요, '요익중생'은 자비심을 뜻하지.

빌 게이츠가 말한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게 인간 중심적인 자본주의에요. 그게 다 옳은 얘기야. 본래 그래야 하는 거야.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기업, 제3세계를 도와야지.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과실로 소외된 계층 끌어안고 가야 한다고 한 건 사려 깊은 일이에요. 기업도 자유민주주의, 시장 속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게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해요.

다만 기업하는 사람이 사회에 환원하는 측은지심을 가지도록, 공익성을 가지고 살도록 만들어야 해요.

-과거엔 성공한 사람들 사이에 '과시적 소비' 문화가 있었는데 이젠 '과시적 베풂'이라는 문화가 생기는 듯 합니다.

▶돈 버는 사람 창의력을 인정해줘야 해. 그 사람들 공(功)이 있어. 기업주가 창의를 가지고 열심히해서 성공하면 존경하는 문화 있어야 해. 착안자, 기업주가 자기 보람 위해 일할 수 있어야 해.

내가 큰 종단 이끌고 바른 말하면서 살다가 졸업(퇴임)한 뒤엔 작은 일(시민단체 활동)하니까 보람을 느껴. 일찌감치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어. 기업(주)들도 그래야 해요.

-숭례문 방화, 프로야구스타 이호성의 살인사건 같이 끔찍한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물질적으로 흘러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숭례문 방화는 안전불감증 때문에 생긴 것이야. 대통령부터 문화재청장, 구청장, 소방소까지 다 책임이 있는 것이야. 총체적으로 국민들까지 불감증이 있어요.

경제성장의 과실을 고루 나누지 않아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에요. 문화재, 문화에 대한 소중함, 안전과 질서에 대한 불감증이 그런 일 일으킨 거야.

우리가 가진 문제(숭례문 화재 등)는 총체적 문화의식이 부족해서 오는 문제, 반문화의 문제에요.

일류 국가가 되려면 법치국가, 문화창조국가가 되어야지, 경제성장으로 10대 교역국에 들어간다고 일류국가가 되는 게 아니에요.

투명사회, 부정부패가 없는 사회, 준법하고 베풀고 나누는 사회, 구휼과 자비정신이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되어야 일류문화대국이 됩니다.

우리가 경제대국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경제과실을 단순히 나눠주는 것만으로는 일류국가가 될 수는 없어요.

- 많은 사람들이 경제를 키워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경제는 뭐고, 돈은 뭡니까?

▶경제활동은 해야 해요. 농사 짓고 공산품 만드는 데에 종사해서 경제적 이득을 올려야 합니다. 그러나 피해를 주면 안되는 거에요. 정당한 제도와 양식, 룰에 의해 경제활동을 하고 이득을 얻어야지.

나는 사람들한테 이득을 얻으면 4분의 1은 실생활에 쓰고 4분의 1은 재투자하고 4분의 1은 저축하고 4분의 1은 남 돕는 데에 쓰라고 해요. 딱 4분의 1이라기 보다는 일정 부분을 그렇게 하라는 거야.

(경제가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세속을 버리고 경제 외면하고 살라는 것이 아니야. 승려나 성직자들은 마음 바탕자리를 닦아서 수행력을 보여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올바르게 살도록 일깨우는 게 일이에요.

허나 일반인은 사농공상으로 재화를 일구는 게 일이에요. 이때 룰 지키고 사회질서를 지키면서 (남과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남을 돕되 현실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기업을 배척하고 미워하면 안 돼요. 경제, 성장논리를 탐욕이라고 보면 안 됩니다.

불교에서는 경제활동을 하면서 '자리리타'를 실현하라고 해요. 나도 행복하게 지내면서 남도 행복하게 하는 원력을 가져야 합니다.
↑2006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의 빈곤 현장을 돌아보고 있는 송월주 스님(가운데). ⓒ지구촌공생회↑2006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의 빈곤 현장을 돌아보고 있는 송월주 스님(가운데). ⓒ지구촌공생회
종단 개혁에서 대운하 반대까지 '시대의 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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