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산업은 냉장고 같은 가전산업과 사뭇 다른 '장치산업'입니다. 정부로부터 허가받은 사업자끼리만 경쟁하는 통신시장은 다른 산업과 달리 정부의 통제를 많이 받는 편입니다. 정부로부터 사업허가권을 받기 위해선 일정 자격을 갖춰야 하고, 사업허가권을 받아놓고 제때 사업을 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게 통신산업입니다.
가까스로 사업허가를 받고 수조원을 투자해 시설을 갖췄다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소비자들이 외면하면 망합니다. 그만큼 통신산업은 투자부담도 크고 '수익화'하는 데 오래 걸리는 편입니다.
이처럼 하나의 통신서비스가 시장에 선보이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립니다. 또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해서 반드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과거 PCS사업자 가운데 신세기통신 한솔PCS 등은 과열경쟁을 버티지 못하고 SK텔레콤과 KTF에 각각 흡수합병됐습니다.
통신시장도 지난 10년 새 많이 달라졌습니다. 4800만명의 국민 가운데 4400만명이 이동전화서비스를 이용하고, 1500만가구 가운데 1400만가구 정도가 초고속인터넷에 가입돼 있습니다. '틈'이 없을 정도로 빼곡한 시장입니다.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정부도 '유효경쟁'을 접고 '완전 시장경쟁'으로 통신시장이 전환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시점이 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합쳐진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시장의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추고 통신시장의 새로운 경쟁 패러다임을 열어가려 준비 중입니다. 요금경쟁을 촉발해 통신요금이 꾸준히 내려가도록 '규제 틀'을 개편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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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통신시장은 소비자만 염두에 둘 수는 없습니다. 통신산업은 정보기술(IT)산업을 견인하는 동력입니다. KT와 SK텔레콤이 한해 투자비를 1000억원만 줄이면 수십개 중소업체가 도산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통신업체들의 투자는 국내 IT산업의 '종자돈' 구실을 합니다. 이 때문에 통신요금은 '무조건 내리는 게 좋다'는 식의 접근방식은 자칫 국내 IT산업 자체를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습니다. 소비자 못지않게 시장과 산업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14년간 '유효경쟁'을 통한 규제정책으로 국내 통신과 IT산업의 '주춧돌'을 다진 정보통신부는 부처 폐지와 함께 역할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끝은 또다른 시작입니다. 통신과 방송 그리고 각종 융합산업은 새로운 조직 '방통위원회'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그래서 방통위의 '시작'에 기대를 걸어보려 합니다.
통신시장의 얽히고설킨 상황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했던 [통신잠망경] 칼럼도 이번 호를 끝으로 글을 맺습니다. 2003년 11월부터 지금까지 4년5개월 동안 어쭙잖은 글을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끝은 또다른 시작이니, 계속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