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 턱밑' 원화, 중장기 약세 굳히기

더벨 이승우 기자 2008.03.13 10:12
글자크기

국내 수급 구도 변화… 서브프라임이 '인식 전환' 자극

작년 10월31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800원대로 진입하면서 하락세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됐다. 기업들은 너도 나도 달러 팔자에 나섰고 이곳 저곳 연구소에서는 환율이 더 내릴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후 5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상황은 정반대다. 그 때 장중 환율이 899.60원이었고 이달 12일 현재 환율이 971.30원이니까 그 사이 무려 70원 이상 올랐다.



IMF 외환위기 이후 하락 일변도였던 원/달러 환율이 드디어 중장기 상승(원화 가치 하락) 추세로 전환한 것인가. 많은 외환 전문가들이 '그렇다'고 답하고 있다.

원화 약세 추세로 진입했다고 판단하는 가장 큰 근거는 바로 국내 달러 수급구도의 변화다.



한 나라의 전체 달러 수급을 나타내 주는 경상수지가 작년 12월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이후 3개월 연속 적자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게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경상수지 악화로 직결됐다.

또 3월과 4월에 몰려 있는 외국인 배당금 송금이 달러 환전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프로페셔널 정보서비스 thebell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국민은행, S-Oil, 삼성전자 등 결산 배당 상위 10개사가 올해 외국인 주주에게 지급할 배당금 총액은 3조2426억원으로 나타났다. 달러로 환산할 경우 34억달러가 된다.

그동안 조선업체들의 대규모 선박 수주에 이은 선물환 매도로 인한 달러 매물에 시달리던 서울 외환시장의 수급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김태완 대구은행 차장은 "올해 들어 원자재가격이 급등하며 경상수지가 IMF 이후 처음으로 적자로 전환하는 등 달러화 수급의 장기적 추세가 변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외국계은행 한 외환딜러도 "환율이 하루 5원, 10원 오르는 데도 달러를 팔자고 나서는 쪽이 많지 않다"며 "매물 공백이 상당히 심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수급 구도가 변화하는 와중에 지난 몇 년동안 심어져 온 "환율은 하락하기만 한다"는 인식을 확실히 전환시켜 준 트리거(Triger)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문제다.

글로벌 달러 약세에도 불구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이머징 국가들의 통화 팔자를 부추겼다. 경상적자 전환 등 수급 구도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원화가 주 공격 대상이었다. 주식 뿐 아니라 원/달러 환율 시장에서 원화는 찬밥 신세가 된 셈이다.

김태완 차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손실이 달러화의 유동성 경색으로 이어지며 이머징마켓에 대한 투자회수로 이어지고 있다"며 "달러화 잉여상태에서 부족상태로 국면이 전환된 가운데 최근 글로벌 유동성 경색과 3월 배당금수요 등 단기 달러수요가 달러화의 부족현상을 자극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달러 부족 사태가 이어지면서 원/달러 환율 상승 추세가 굳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임지원 JP모간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몇 년동안의 원화 절상 추세가 되돌림을 하고 있다"며 "최근 환율 급등은 원화 약세 기조로 가는 과정이라고 본다"고 판단했다. 그는 급등 이후 단기 조정이 있겠지만 월별 변동성을 키우며 서서히 고점을 높여가는 중장기적 약세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진우 NH선물 기획조사부장은 "지난 2004년 이후 그토록 매도 일변도로 쏠렸던 시장이 이제는 매물 및 달러 유동성 부족을 실감하면서 또 다시 매수 일변도로 쏠릴 차례다"고 말했다.



반면 고유선 대우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금리인하 속도가 다소 완화되고 미국 경제가 하반기부터는 최악의 국면을 벗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며 "환율 급등세가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