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부로 변한 공정위..결합시장 '대못'

머니투데이 윤미경 기자 2008.02.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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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 하나로 인수 '조건'이 정통부 업무.."결합판매 강요금지"

SK텔레콤을 향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칼'이 예사롭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5일 전원회의에서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에 대한 기업결합심사를 '조건부'로 인가했다. 그러나 그 '조건'은 사실상 '결합판매'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적지않아 보인다.

우선 공정위가 제시한 4가지 조건은 앞으로 5년간 SK텔레콤의 발목에 '족쇄'를 채워놓겠다는 의도여서, SK텔레콤 입장에선 결코 달갑지 않다. 기업 합병도 아닌 지분 인수에 불과한 기업결합심사에서 공정위가 이처럼 혹독한 '조건'을 제시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게 SK텔레콤의 입장이다.



발끈하기는 정통부도 마찬가지다. 주파수와 로밍에 대한 고유권한은 엄연히 정통부에 있는데, 공정위가 나서서 '로밍을 하라마라' '재분배를 하라마라'하는 것은 분명한 '월권행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날 정통부는 이례적으로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남의 구역'을 넘보는 공정위 견제에 나섰다.

SK텔레콤뿐 아니라 KT를 비롯해 LG통신계열까지 이미 '전화+초고속인터넷+방송'을 묶어 결합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는 시점에서 공정위의 이날 '조건'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게다가 특정사업자에게만 '족쇄'를 채움으로써 오히려 기업간 불공정행위를 조성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SKT 5년동안 '규제 덫'..공정위 "직접 감시하겠다"

이날 공정위가 제시한 조건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은 SK텔레콤에게 앞으로 5년동안 매분기마다 '금지사항 준수여부'를 제대로 지켰는지를 보고토록 의무화시켰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이행보고 점검을 위해 이행감시전문기구까지 설치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1년 하반기에 시장 경쟁상황을 재검토해서 시정조치 일부 또는 전부를 철회하거나 변경하겠다고 했다. 성실히 수행했는지 매분기마다 보고해야 하는 것도 모자라, 별도의 감시기구까지 설치하고 5년이후 다시 재검점하겠다는 것에 지금까지 어떤 기업결합심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강력한' 규제조건인 셈이다.


공정위가 SK텔레콤에게 5년간 지켜야 한다고 제시한 '금지사항'도 현재 정통부가 고시한 결합판매나 입법추진중인 재판매의무화법과 상당부분 겹치는 부분도 있고, 수위가 더 높은 부분도 있다.

결합판매 고시에 이미 '동등접근성보장' 조항이 있음에도 '다른 전기통신사업자가 SK텔레콤의 이동전화와 결합판매를 요청하는 경우 이를 거절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했다. 재판매의무화법에 이미 있는 조항인데도 '재판매와 관련된 조건, 절차, 방법, 대가 등 거래조건을 불리하게 하거나 거절하지 말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 '금지조항'이나 '조건'대로 하자면, SK텔레콤은 향후 5년간 '규제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공정위가 이 조건을 제시한 것이 과연 적법한가에 있다.

김원준 공정위 시장감시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통부가 공정의 합의사항 내용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가 위원회에 절차를 거쳐 직접 SK텔레콤과 하나로측에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면서 "이행여부는 매 분기마다 보고를 하도록 돼 있고 직권으로 점검을 해서 이행여부를 감시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공정위 주장대로 하자면, SK텔레콤의 하나로 인가에 따른 이행감시는 공정위 소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통부의 주장은 다르다. 전기통신사업법을 관할하고 있는 정통부는 "공정위의 합의내용은 SK텔레콤의 하나로 인가에 참조사항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정통부 밥그릇 넘보는 공정위..정통부 '뿔났다'

정통부 고유업무를 공정위가 개입하고 나선데 대해 정통부는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정통부 한 관계자는 "새 정부에서 정통부가 폐지된다고 공정위가 지나치게 구는 것 아니냐"면서 "부처 입장을 떠나 법대로 처리해야 하는 사항이다"라고 못박았다.

SK텔레콤이 독점하고 있는 800MHz 주파수에 대해 재분배를 정통부에 요청하겠다는 공정위 태도에 대해서도 정통부는 불만을 터뜨렸다. "주파수 회수 재배치, 로밍 등 주파수 관련 제반사항은 공정위 소관이 아니라, 전파법, 전기통신사업법 규정에 따른 정통부장관의 소관사항"이라고 정통부는 주장했다.

현행 주파수관련 제반사항에는 '로밍' 문제는 사업자간 합의에 따르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날 공정위는 '조건'에 SK텔레콤의 주파수 로밍을 의무화했다는 점에서 고유업무 궤도를 한참 이탈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그것도 모자라, 800MHz 주파수 이용시한전에 여유대역을 올해부터 매년말 회수해서 SK텔레콤 이외에 다른 사업자에게 '공정하게' 재배치할 것을 정통부에 요구하고 있다.

정통부는 이미 '전파법' 개정을 통해 심사할당으로 사용중인 800MHz와 1.8GHz 주파수를 2011년부터 대가할당방식으로 재분배한다. 때문에 올해안에 주파수 재분배에 대한 로드맵을 완료하기로 돼 있다. 국가 자원인 주파수는 민간에게 할당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국고 창출이 일어난다. 때문에 정통부는 공정위의 '공정하게'라는 요구는 자본의 논리에도 맞지않을 뿐더러, 공정위의 월권으로 판단하고 있다.

◇공정위, 요금할인되는 유·무선 결합판매 반대?

무엇보다 공정위가 내건 조건은 결합상품 시장을 활성화시키려는 정통부 정책방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공정위는 '금지조항'에서 대리점에서 결합상품 판매강요 금지와 더불어 따로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을 제한시키고 결합상품만 이용하는 것을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판매강요를 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도 없다. 또, 개별서비스 가입을 제한시키고 결합상품만 이용토록 하지 말라는 것은 결국 '소비자의 할인혜택 기회'를 박탈하라고 권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공정위의 소비자편익 정책방향과 어긋나는 '조건'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비자후생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시장 공정경쟁을 감시하는 것이 공정위의 역할이었는데, 이날 공정위가 발표한 '인가 조건'은 현재는 아니지만 앞으로 경쟁사업자 배제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전에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로 비쳐진다.

그러나 공정위의 이 논리는 현재 KT와 KTF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는 점에서 '규제 형평성' 논란이 될 수 있다. KT는 자회사 KTF와 이미 오래전부터 이동전화 재판매를 하고 있고, 결합상품을 할인 판매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SK텔레콤이 800MHz 주파수를 독점하고 자금력이 있기 때문에 '경쟁제한성이 있다'는 것이 공정위 판단이다. 이 기준은 그대로 시장을 92% 독점하는 KT 시내전화와 시장의 50% 가까이 점유하는 KT 초고속인터넷도 해당될 수 있다. 공정위도 보도자료에서 'SK텔레콤은 매출액, 영업이익, EBITDA 등 자금창출능력 면에서 KT群과 비등하다'고 했고 마케팅 비용도 KT群과 비슷하다고 언급했다.

다시말해 공정위의 이같은 입장은 유선과 무선의 경계는 허물어지면 안된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왜냐하면 '경쟁제한성이 있기 때문에'. 공정위는 국내 유무선결합시장이 KT와 SK텔레콤, LG계열로 획정되면 케이블TV 사업자가 경쟁에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그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이번 인수건에 최종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통부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사후규제'를 주장했던 공정위가 '사전규제' 방향으로 틀었다면, '사전규제'에 치중했던 정통부는 오히려 '사후규제'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어, 오는 20일 열리는 정보통신정책심의위원회에서 공정위의 합의내용을 어느 정도 수위로 수용할지 판단하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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