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 시민운동가 박원순의 꿈

이백규 산업부국장, 사진=김병관 기자 기자 2008.01.2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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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같은 소박한 삶..희망이 넘쳐나는 사회를 향해

사무실은 마치 대문호 톨스토이의 모스크바 집필실처럼 소박했다. 난방비를 줄여줄 전기스토브가 걸상 뒤에 있고 벽엔 에어컨 대신 부채질로 여름을 나는 사진이 붙어 있다. 창문을 뺀 3면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포스트잇과 메모지 가운데 B4 크기의 큼직한 게시문 같은 게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걸려 있다.

"원순씨가 모집한 회원 53명 모금액 625만원-열심히 하지 않으면 박수경에게 혼나요." 영리기업체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할당된 목표치와 달성치'를 대표적 비영리기구의 대표 방에서 보게 된 것은 의외였다. '혼난다'는 깜찍한 멘트와 함께.



실용적 시민운동가 박원순의 꿈


 함박눈 쏟아지는 1월 어느날 서울 종로구 수송동 안국동 로터리의 관음손 건물 4층 허름한 사무실에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 변호사(52)를 만났다. 정부와 기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듯 시민단체와 기업도 서로 배우고 소통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시민단체도 기업 경영처럼 지속가능하게 운영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영리기업체 직원들이 돈을 버는 것과 궤를 달리하기는 해도 그래도 돈을 잘 모금해와야 한다며 리더로서 이를 솔선수범하고 있다고 했다.



 진보좌파와 보수우파가 한판 세게 붙은 이번 대통령선거가 한쪽의 참패로 마무리됐다. 정치권력의 파워시프트가 이뤄진 것과 때를 맞춰 시민운동판에도 중심축의 대이동이 예고되고 있다.

시대의 요구와 글로벌 트렌드의 진화로 변화는 이미 진행됐으나 정치권력의 180도 선회로 그 변화는 가속도를 내고 있고 증가하는 자체 운동에너지로 스스로 구동하기 시작했다.

 참여연대와 아름다운가게. 봉사와 헌신이라는 취지는 같지만 사회적 변혁과 개인적 실천이라는 서로 상반되고 이질적인 두 운동을 주창하고 성공시킨 그는 요즘 '희망제작소'라는 또다른 새로운 물건을 이 사회에 들이밀었다.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온 그로부터 격변의 회오리가 불어닥친 시민운동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고 간간이 세상 사는 얘기도 나눴다.

 몇년 전 뉴욕특파원 시절 미국 뉴저지 아름다운가게 1호점 서약식장에서 조우한 이래 맑고 올곧고 반듯한 실용주의 운동가라는 상큼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그를 어떤 이들은 무처럼 겉은 희지만 속은 시뻘겋다고도 한다.

-아름다운가게, 이름이 신선합니다. 영어로는 어떻게 씁니까. 뷰티숍하면 미용실인데. 작명에 얽힌 얘기 좀 들려주십시오.
▶그땐 간판에 형용사를 쓰는 게 흔치 않았습니다. 뭔가 특별한 걸로 만들자고 했고 그래서 회원들이 수상한가게, 알뜰가게 등을 내놓았습니다. 헌물건 다시 쓰자고 기부하고 번돈 떼내 자선하니 마음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진선미' 중 으뜸은 무엇으로 여기고 살아오셨습니까.
▶다 중요하죠. '진선'이 조화되면 더욱 아름답지요.

-검사 1년 만에 그만두신 에피소드는 유명합니다. 1995년 참여연대를 만드시고 7년간 대표 격인 사무처장을 맡아 이끌어왔는데, 말씀대로 '분신'같은 곳이었을 텐데 왜 어느날 갑자기 떠나셨습니까.
▶평생 같은 직업에 머물러 있지 못할 것이란 예감이 있었습니다. 모범생으로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검사를 했으나 사람들 잡아넣는 게 영 불편했습니다. 변호사로 방향을 틀었고 그 시대는 지금처럼 '돈 버는 게' 화두가 아니어서 그냥 인권변호사가 됐습니다. 91년 영국에 갔다가 사회적 시스템을 법으로 바꿔야 사회가 변화할 것같아 참여연대를 시작했습니다. 투명하고 바른 사회 만들기에 힘을 보탰다고 자부합니다. 7년간 한 조직에만 있다보니 '이건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색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실용적 시민운동가 박원순의 꿈
-이번 대선 때 국민들이 희망하는 대통령 후보로 비정치인 가운데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더불어 가장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설문조사에서 나왔습니다. 한편 시민단체는 정치로부터 독립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시민운동은 정치무대 입문의 관문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음 대선에 기회가 주어지면 대선에 출마하실 생각이신지요. 시민운동가들의 정치 참여 또는 반정부 활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시민운동과 정치는 본래 경계가 없습니다. 시민단체는 공적 훈련을 하기 좋은 곳입니다. 활동가들이 지방정부에 들어가는 게 나쁜 게 아닙니다. 사회를 바꾸는 데 권력만큼 효율적인 데는 없습니다. 문제는 시민운동하기에 환경이 너무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월급 많이 주는 회사, 번지르르한 회사로 인재들이 몰립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곳에 관객과 배우가 너무 적어 못떠나고 있습니다.

-3년 전 저서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의 것이다'에서 시민단체는 무엇으로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하셨습니다. 이젠 답을 찾으셨습니까.
▶어느 시대나 과제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지식인들은 목숨을 내놓고 간언을 했습니다. 임진란이 터지자 칼과 창을 들고 의병을 일으켰고 일제시대엔 독립운동을, 4ㆍ19를, 반독재를 했습니다. 앞으론 소비자 보호, 도농 직거래, 생협(생산자협회), 여성 등등 할거리가 많습니다.

-아름다운재단보다 희망제작소에 몰두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the Hope Institute'는 시민의 관점에서 정책대안을 개발하고 제시하는 순수 민간 봉사 연구소입니다. 주로 공공정책을 연구합니다. 행자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정책개발을 하고 있고 충남도에도 지방정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정책을 판다고나 할까요. 지하철 버스의 손잡이 높낮이를 다르게 한 게 대표적입니다.

-시민단체들은 간사나 상근자들을 위한 비용을 비롯해 재정적 독립이 숙제입니다. 하지만 돈을 너무 밝히는 단체들이 많은 것도 현실입니다.
▶단체보다 시민이 더 문제입니다. 그들은 공공의 선을 위해 헌신하는데 시민이 재정적으로 도와주지 않으니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의 삼성 공격을 어떻게 보십니까.
▶대기업이 한국경제 성장의 동력인 것은 사실이지만 재벌도 좀더 바뀌어야 합니다. 삼성은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스스로 고쳐나가겠다는 시그널을 보여줘야 합니다. 안 그러니 강제적 수술(특검)에 들어간 것 아닙니까.

-혹시 태안에 가보신 적이 있는지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나 참여연대가 참 똑똑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합니다만 너무 이성적인 것은 아닌지요. 성명서 1장 내는 것보다 가서 매서운 겨울바다 칼바람 맞아가며 매캐한 냄새로 속이 느글거리는 가운데 돌 닦기가 지금 이 시대, 우리 사회, 한국 시민들의 요구사항이 아닌가요. 시민과 따로 노는 시민운동이란 지적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하셨는데 아직 유효합니까.
▶유엔은 물론 월드뱅크에도 시민단체 파트가 따로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바른 소리하는 선비들이 없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다양한 기능이 어깨동무하듯 어우러져야 합니다. 미국에도 정책 감시, 비판 기능이 활성화돼 있습니다.

-조국의 미래상, 어떻게 그리고 계십니까.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넘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삶이 보장되고, 문화예술이 풍성해지며, 휴머니티(인간애)가 발현되는 창의적 사회를 그려 봅니다. 서로 위하고 조화로운 생태계적 균형을 도모해야 합니다. 정부돥민간돥시민단체 3자가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가운데 힘을 합하면 그런 아름다운 사회를 우리는 꾸밀 수 있을 것입니다.

 
실용적 시민운동가 박원순의 꿈
인터뷰는 1시간 만에 끝났고 사진 찍는 틈을 타 벽을 둘러보니 톨스토이 방 같은 첫인상 잔상 위에 10대인 딸아이 방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깔깔 호호" "건빵 속에 들어 있는 별사탕처럼"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의 이마 한가운데에 붙어 있는점자스티커를 가리키며) 저 위에 있는 점자는 무슨 뜻일까요" "원순씨 당신은 □이다" 등등.

그와 인연이 닿은 수많은 사람의 자필 메모지가 벽에 덕지덕지 빼곡히 붙어 있고 틈틈이 웃는 사진, 진지한 캐리커처, 인형, 액세서리, 풍선, 밀짚모자 등이 어린이 방처럼 꾸며져 있다.
 
장난기 넘치는 공간엔 YMCA 이학영 총장의 '고향으로 내려가 시장이 돼라' '공공리더의 지혜=사람 낚는 어부가 돼라'와 '새로운 관료상' '농민리더 마을이장' 'Best 시장' 등 그들의 연구화두가 적힌 화이트보드가 놓여 있었다.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고 즐겁게 탐구하다보면 그가 꿈꾸는 맑고, 밝고, 서로 어깨동무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아주 먼 미래의 일은 아닐 것이라는 일감이 들었다. 비갠 날 갑자기 떠오른 무지개를 봤을 때의 설렘과 상큼함 속에 같이 더 머물러 있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채 희망제작소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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