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자금조달 추진은 그동안 장부상 '숨겨 놓은' 기아차 해외법인의 부실을 더이상 떠안고 갈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이뤄진 '막판 승부수'라는 얘기다.
◇'기아차 유동성 위기', 현실화되나=기아차는 지난해 중순 유동성 의혹에 휩싸이며 주가가 1만4000원대에 1만원대로 내려 앉았다. 야심찬 신차 출시('모하비') 등 호재를 조성하기 위한 온갖 노력에도 주가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급기야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제 그동안 쉬쉬 해왔던 '진실'을 밝혀야 할 때"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기아차의 유동성 위기설, 대규모 자금조달 추진 등은 주로 기아차의 해외법인 부실 때문에 나타나고 있다"며 "현재 재무제표상 지분법 규정으로는 해외법인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경우 추가로 발생하는 부실의 경우 '주석'으로 처리된 채 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고 있는데, 바로 이 점에서 기아차의 실제 경영 및 자금흐름 상태와 장부상 내용 사이에 커다란 '차이(갭)'이 존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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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계자는 이어 "기아차의 기업어음(CP)은 주로 해외법인 부실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해외법인의 반영되지 않은 부실 규모는 7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고 추정했다. 기아차가 현대차에 비해 수출 규모가 크게 작은 데도 무역금융이 배 이상 많다는 점이 의혹의 초점이다. 묘하게도 기아차의 무역금융 규모는 해외법인의 부실규모와 엇비슷한 8000억원에 이른다.
◇유동성 논란, 잠재울까=기아차는 대규모 자금조달을 통해 자본잠식 상태인 해외법인 등에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유동성 논란의 핵심 근원지인 해외법인의 경영정상화를 통해 시장 의혹을 잠재우는 한편 공격적인 경영 및 판매전략을 통해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겠다는 '양동 전략'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얼마나 다급하면 저런 극약처방을 사용할까"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기아차는 새로 발행하는 회사채의 절반 가량을 개인 및 법인고객에 리테일 상품으로 판매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통상 투자등급 수준의 기업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기아차의 신용등급은 AA-인데, 예정금리는 7.5% 수준으로 한단계 낮게 책정됐다. 게다가 기관들의 입질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해 리테일 방식을 혼용하는 궁여지책을 고려하고 있다.
기아차는 단기 차입금인 CP(통상 3개월 만기)를 회사채(3000억원 규모, 만기 1년1개월), 달러채권(5억달러 규모, 만기 5년)의 달러채권 발행(만기 5년) 등을 통해 중장기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미국 등에서 시설투자용으로 현지차입(ECA)을 실시하고 유럽 등에서 재고 담보대출를 받는 것도 현지법인의 부실 해소를 위한 측면지원용이다.
전문가들은 기아차가 유동성 논란과 관련해 '종합 처방전'을 내놓았지만 "과연 약효가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까"라는 분위기다. 지난해 해외채권 발행에 실패하며 CP 발행이 크게 늘었는데, 과연 이번에 내놓은 '만병통치약'이 시장에서 제값을 받고 팔릴 지 장담할 수 없다는 예측이다. 지난해 무리를 해서라도 급한 불을 껐어야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것. 자산규모 2조원 이상 법인은 오는 3월 사업보고서 제출시부터 재무 사항을 연결제무제표 기준으로 공시해야 하는데, 이때 그동안 장부상 반영되지 않았던 자본잠식된 해외법인의 추가 부실 규모도 손실도 잡아야 한다.
한 애널리스트는 "결국 기아차는 현지 해외법인·공장을 매각하고 이를 전세로 활용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사용할 가능성도 점쳐진다"며 "이번이 시장신뢰 회복을 위한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