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세계화로 엄청난 국부 창출!”

대담=이백규산업부장, 정리=홍기삼기자, 사진=임성균기자 2007.12.2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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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 초대석]광주요 조태권회장 인터뷰

조태권회장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나파밸리에서 선보인 '랍스터떡뽁이'조태권회장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나파밸리에서 선보인 '랍스터떡뽁이'


“Wow, Wonderful.”

생소한 음식과 서툰 젓가락질로 잠시 어색했던 처음의 분위기가 단번에 깨졌다. 입에 담긴 음식을 씹는 얼굴마다 환한 웃음이 스며들었다.

지난 10월1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나파밸리의 한 고급 레스토랑. 광주요 조태권(59)회장이 특별히 제작한 식기까지 모두 들고가 처음 선보인 한국 음식에 외국인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행사명은 ‘Korean Cuisine and Culture.’ ‘오색, 오미 그리고 한국의 멋 나파디너파티’라는 제목으로 외국인 포함 총 60명이 초대됐다. 1인 기준으로 총 5~6코스로 구성된 음식이 올려졌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나파밸리. 미국 와인의 최대 생산지로 최고급 와인과 함께 세계 식문화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이 이벤트에는 미국 최고의 와인메이커들과 와이너리 소유주와 오피니언 리더들이 초청됐다. 이들중 한 명이 1병당 100만원이 넘는 79년산 와인을 직접 들고 올 정도로 이날 행사에 초대된 인사들은 모두 VIP급들이었다.

조회장은 첫 메뉴로 화이트와인에 어울리는 어회샐러드를 선보였다. 하지만 조회장은 이 회를 드레싱이 아니라 신맛과 단맛이 어우러진 초장에 찍어 먹게 했다. 처음 보는 초장을 신기한 듯 쳐다보며 머뭇거리던 외국인들이 입안에 감도는 향긋함을 쫓아 어회와 와인 잔을 번갈아 들었다. 우리식 초장과 화이트와인이 만나 한국 음식에 대한 새로운 정체성을 표출한 것이다.



그 다음은 ‘랍스터떡볶음.’ 조회장은 우리나라 대표 간식거리중 하나인 떡볶이를 글로벌 음식인 랍스터와 결합시켜 국제무대에 데뷔시켰다. 분식점에서 파는 5000원짜리 떡볶이가 수만 원짜리 고급음식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삼색모듬전에 이어 선보인 메인요리 ‘등심구이’를 통해 조회장은 광주요의 특별한 식기로 초대 손님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움직이는 오븐구실을 하는 ‘내열자기’를 통해 등심구이가 식탁에 올려졌다. ‘래어’(rare) 상태에서 올려진 등심구이는 내열자기에서 ‘미디엄’(medium)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이어진 메뉴인 홍계탕죽, 밤초와 약차 등이 VIP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포만감이 무르익을 즈음, 조회장은 알콜도수 41도짜리 ‘화요41’을 자연스럽게 등장시켰다. 방울잔을 통해 한국식 원샷 주법도 선보였다. 식사가 끝난 후 이날 모임에 참석한 외국인들은 조회장이 선보인 음식과 술, 도자기들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영웅’이라는 극찬을 쏟아냈다. 한식의 틀을 다시 창조했다는 칭송이 샌프란시스코 한인사회에까지 울려 퍼졌다. 이 행사를 통해 조회장은 “한식은 한식재료에만 국한해야 한다는 ‘한식의 올가미’를 드디어 벗어던졌다”고 자평했다.


조회장은 이 이벤트를 만들기 위해 이미 2년 전부터 나파밸리 최고의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당시 코웃음 치던 식당 주인은 2년 후 조회장의 성공적인 데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회장이 이 행사를 준비한 건 단순한 이벤트를 치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세계 와인의 중심지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나파밸리에 VIP들을 초청해 행사를 연 건 조회장 나름대로의 전략적인 판단이 숨겨져 있었다.

“2020년이 되면 지구상에 20억 명의 중산층이 생긴다는데, 우리나라의 2000만 명만 대상으로 한 음식을 계속 만들 수는 없다. 우리가 세계 모든 사람들의 대중적인 기호식품이라고 할 수 있는 와인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내야 할 때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음식으로 와인중심지의 VIP들에게 인정받으면 한식의 세계화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확신감으로 ‘나파밸리 프로젝트’를 준비한 것이다. 이날 외국인들이 내놓은 찬사는 우리 음식을 ‘생활예술’로 성공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결국 우리 음식이 미국과 ‘통’한 것이다.

우리음식에 대한 조회장의 사랑은 특별하다. 단순한 애정을 넘어 우리 문화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으로 우리 문화가 사라졌다는 게 조회장의 판단이다. 외형위주 산업이 우리 문화를 단절시키고 카피가 판치는 문화 저급화가 진행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특히 우리 먹거리 문화가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외식업으로 영위하는 대부분의 가게들은 거의 생계 유지형이 대부분이다. 모두 단일품목으로 운영하며 배고픔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사업을 해 왔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싸고 푸짐하게 고객에게 밥을 팔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그쳤다. 이 때문에 가격경쟁에 따라 음식의 질이 저하되기 십상이다. 특히 재료에 대한 질 저하 문제를 업주들이 강한 양념으로 해결했다. 이로 인해 우리 국민들을 모두 ‘미맹’으로 만들어버렸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한식 고급 레스토랑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손님 접대시 우리 식문화를 배제하고 중국, 일본, 이태리 식문화를 선호하는 소비 트렌드가 자리잡은 이유가 바로 이러한 사정에서 비롯됐다는 게 조회장의 설명이다.

조회장은 하루빨리 한식업을 산업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자본의 집중화를 통해 대기업이 세계 최고급의 한식당을 지구 곳곳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일본의 경우 이미 주재국 대사관에 나가있는 파견 요리사들을 통해 자국의 음식연구센터로 세계 각국의 전통음식 정보를 집대성해 다시 일본 음식화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조회장은 소개했다.

일본내에서 한식을 자국 음식으로 소화해 인기를 끌고 있는 식당(규가꾸)만 이미 1470개나 된다는 것. 이러한 음식을 일본 외식업계가 ‘퓨전’이라고 부르는 건 다름 아닌 해당 국가와의 문화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어정쩡한 용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조회장의 설명이다.

“2020년 식품산업은 전 세계 GDP의 18%에 달한다. 금액으로만 약 5000조다. 이중 외식부문이 9%에 달한다. 여기서 우리가 챙길 수 있는 몫이 무엇이 있나를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정보기술, 전자, 자동차산업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미래산업 육성을 외식에서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음식문화의 산업화가 필수 요소다.”

조회장은 일본의 해외지사와 상사들이 미국 뉴욕 맨해튼의 유명 고급레스토랑인 ‘노부’를 세계 최고의 식당으로 만들었듯이 우리도 세계적인 한식 식당으로 틀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미 중국 베이징과 서울 신사동에 이러한 구상의 역할모델 레스토랑인 ‘가온’을 런칭한 조회장은 뜻을 같이할 산업계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21세기 외식 국부론’을 제창한 그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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