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써놓고 봉사왔어요"

희망대장정,정리=이경숙 기자 2007.12.1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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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시아, 빈곤을 넘어]<끝-2>아시아 빈곤지역에서 만난 한국인, 한국

편집자주 2달러, 우리돈으로 약 1800원. 이 돈으로 아시아 인구 중 9억명이 하루를 삽니다. 21세기 이후 아시아 경제성장률은 연 평균6.3%로 다른 지역의 2배에 가깝습니다. 아시아는 과연 빈곤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아 김이경, 윤여정, 주세운 등 세 젊은이로 구성된 '희망대장정'팀이 지난 9월, 아시아 최빈국의 빈곤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80일 동안 이어질 이들의 희망대장정을 머니투데이가 전해드립니다.

↑11월 6일, 인도 둥게스와리 마을에서 JTS 봉사자 오태양씨가 학생들이 수공예수업 과제물로 만든 목도리를 들어보이고 있다.↑11월 6일, 인도 둥게스와리 마을에서 JTS 봉사자 오태양씨가 학생들이 수공예수업 과제물로 만든 목도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아시아 빈곤지역에서 우리는 뜻밖에도 우리가 보지 못했던 '한국', '한국인'의 모습을 봤다. 어떤 모습은 아름다웠고, 어떤 모습은 잔인했다.

여행 시작 사흘째, 우리는 방글라데시에서 우리 또래(22세)의 한 대학생을 만났다.그는 굿네이버스 방글라데시가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빈민촌에서 운영하는 밧다라 학교에서 교사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던 그는 방글라데시로 오기 전에 유서를 썼다고 말했다. '자신이 죽으면 보험 등 유산의 절반을 밧다라 학교를 위해 써달라'고.

"근데 저 정말 죽을 뻔 한 적 있었어요. 밧다라 학교 2층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졌거든요. 다행히 나무 위로 떨어져 크게 다치진 않았어요."



그는 하교하는 아이들과 방글라데시어로 수다를 떨다가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곧바로 가정 방문을 갔다. 언어도, 피부색도 다른 아이들의 삶을 다독이는 그의 모습은 '정다운 한국인'으로 다가왔다.

어떤 한국인들은 현지인조차 들어가길 꺼리는 인도 둥게스와리의 불가촉천민 마을에서 헌신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삶을 바꾸고 있었다. 한국의 국제기아ㆍ질병ㆍ문맹퇴치기구인 'JTS(Join Together Society)'의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들이 포기하고 온 한국의 삶은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것이었다. 인도JTS에서 2년째 천민마을을 개발하고 있는 오태양씨(33)는 서울교대를 졸업했다. 한국에선 '맞선 1순위 신랑감'이라는 교사직을 포기하고 인도로 온 셈이다.
↑11월 3일 지바카병원의 운영자 <br>
김정준 JTS 자원봉사자가 한달에 <br>
한번 있는 토요 특별활동 시간에 <br>
중등과정 학생들에게 영어읽기 <br>
수업을 하고 있다.↑11월 3일 지바카병원의 운영자
김정준 JTS 자원봉사자가 한달에
한번 있는 토요 특별활동 시간에
중등과정 학생들에게 영어읽기
수업을 하고 있다.
김정준씨(38)는 GE메디칼시스템즈코리아에서 일하다가 2004년 인도JTS에 왔다. 그는 전 직장의 경험을 살려 지바카병원 운영을 맡았다. 이 병원은 2001년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와 JTS가 설립했다. 여기서 그는 치료 기회를 얻기 어려운 인도 하층민들한테 평생 무료로 의료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


이들은 이것이 '희생'은 아니라고 말했다. 오태양씨는 "자신이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라도 하게 되면 대가를 바라게 된다"고 말했다. 그런 사람은 초심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일에는 재미와 보람이 둘 다 있어야 해요. 저는 이곳에서 재미와 보람 둘 다 찾고 있어요. 제가 하는 건 저 자신을 위한 수행이에요. 남을 돕는 게 아니라 제 자신을 닦는 일이죠."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삶의 기쁨과 보람을 찾는 JTS의 자원봉사자들에게서 우리는 '자비로운 한국인'을 봤다.

하지만, 한국에 살다온 이주노동자들 속에서 본 한국의 모습은 잔인했다. 네팔에서 만난 샤말 타파씨(35)는 한국에서 10년 동안 일하다가 강제추방 당했다.

지난 2004년 한국정부가 아무 신원증명 서류도 발급하지 않고 추방시킨 탓에, 그는 네팔로 돌아와서도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런데도 우리가 네팔 탐방을 기획할 때 "뭐든지 돕겠다"며 우리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줬다.



네팔인 싸누(27)씨는 한국의 전자부품 공장에서 3년 동안 조립 업무를 하다가 결혼하기 위해 돌아왔다. 그는 우리가 공정무역 공장을 찾지 못해 길을 헤맬 때 아무 보상 없이 길잡이로 나서줬다.

방글라데시에서 만난 아자드 호센씨(40)는 서툰 한국말로 "한국에서 일, 힘들었다"고 여러번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방글라데시에 머무는 한달 동안, 그는 아버지가 자식을 보살피듯 우리를 걱정해줬다. 사심 없는 그들의 친절에 우리가 오히려 부끄러워졌다.

네팔 치트완에서 만난 한 소년 가이드는 우리를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알고 보니 내년에 한국에 일하러 올 예정이란다. 마음이 아팠다.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았던 친절을 이 소년 같은 새로운 이주노동자에게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사진 왼쪽부터 희망대장정의 주세운, 샤말 타파, 희망대장정의 김이경, 윤여정. 한국에서 일하다 네팔로 강제추방당한 타파씨는 우리가 네팔 탐방을 기획할 때 "뭐든지 돕겠다"며 우리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줬다. ↑사진 왼쪽부터 희망대장정의 주세운, 샤말 타파, 희망대장정의 김이경, 윤여정. 한국에서 일하다 네팔로 강제추방당한 타파씨는 우리가 네팔 탐방을 기획할 때 "뭐든지 돕겠다"며 우리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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