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이러한 기업의 '힘'을 어떻게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어떤 투자자들은 '영업이익률'의 비교를 통해 '힘'을 가늠하기도 하고 ROE나 ROA 같은 효율성 지표를 토대로 정의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지표들을 비교해 보면 자연스레 강력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골라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들은 항상 기업을 살펴 볼 때 해당 기업이 '가격결정 능력'이 있는지, '관리능력'은 적절한지 여부에 집중해야 한다. 할인점으로 대표되는 국내 유통업체들을 살펴보면 '가격결정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지 체감할 수 있는데 제조업과 유통업의 대내외적인 환경 변화 속에서 '가격결정 능력'을 갖게 되면서 강력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 트렌드의 변화로 할인점을 비롯한 대형 유통조직이 유통의 대세가 되면서 힘의 균형이 유통으로 기울었고 제조업체들의 가격 결정력은 실질적인 힘을 잃어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최근까지도 제품 가격을 꾸준히 올려온 주체가 제조업체들이다 보니 대외적인 힘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은 것 같아 보일 수 있지만 1+1 할인과 같은 각종 행사 참여 및 매대의 좋은 위치를 차지하려는 경쟁 등에 불이 붙으면서 가격 인상분의 실 수혜가 더 이상 제조업체들에게 흘러 들어가지 않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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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체들이 과거에는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가격을 결정했다면 이제는 외부적인 요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인상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됐으며 점점 가격 인상 마저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제조업과 유통업의 업종간 장벽을 허물게 된 'PB상품'이 등장하면서 제조업체들의 파워는 더욱 줄어들었다.
강력한 브랜드 및 규모의 우위를 바탕으로 유통을 주무르던 상황이 이제는 규모와 소비 트렌드의 우위를 배경으로 유통의 파워가 제조를 넘어서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항상 기업을 분석할 때 '누가 실질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실질적'인 가격 결정 능력이 중요한데 아무리 가격을 직접 결정하더라도 그에 대한 수혜를 직접적으로 누리지 못한다면 가격 결정 능력이 없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유통업체들의 실질적인 가격 결정 능력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물론 소비 트렌드가 변화된 것도 하나의 이유이지만 그 보다 치열했던 경쟁상황이 종료되면서 '과점화'된 업계 구도와 더욱 관계가 깊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 유통업계는 '월마트'와 '까르푸'로 대표되는 외국계의 진입과 더불어 치열한 경쟁 속에 놓여 있었다. 당시 가격 할인 열풍은 '가격 결정권'이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넘어오게 되는 발단이 되었다. 치열했던 경쟁 속에서 외국계 유통업체들이 퇴출되었고 소수 국내 업체들만 살아남게 되면서 자연스레 '과점화'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 당시 유통업으로 기울기 시작했던 힘의 축은 '과점화'와 함께 굳어져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현재 유통의 제조에 대한 강력한 파워는 하나의 전리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현재는 옮겨진 힘의 축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데 'PB상품'은 이러한 노력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단지 제조업체들의 제품 가격을 결정하는 능력을 넘어 제품 자체를 생산하게 됨으로써 제조업체들의 존립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 모든 제품을 'PB 상품화'할 수는 없겠지만 'PB 상품'의 구색이 늘면서 조금씩 '가격 결정 능력'을 감싸고 있었던 '브랜드 파워' 마저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옮겨가고 있다. 국내 유통업체들은 현재 이러한 힘의 이동과 더불어 해외 진출 등의 양적 팽창까지 함께 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기업의 '힘', 즉 '가격 결정력'에 집중했던 투자자라면 기업의 성장과 함께 그에 따른 수혜를 톡톡히 누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더라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힘의 축'은 계속 이동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