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號 20년, 세계 초일류기업 도약

머니투데이 오동희 기자 2007.11.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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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건희 회장 취임 20년]매출 9배, 이익 52배, 시총 140배 늘어

1987년 11월 19일 갑작스러운 삼성 이병철 회장의 타계.

20년간 꾸준히 경영수업은 해왔지만, 호암 이병철 회장의 타계는 당시 이건희 부회장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이병철 회장의 타계 후 2주만에 전격적 그룹 회장에 취임한 46세 젊은 총수의 어깨는 그 무엇보다는 무거운 중압감에 눌렸다.



그후 20년 이같은 중압감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은 삼성. 한국 대표 기업으로 성장한 그 삼성의 리더십인 이건희 회장이 내달 1일로 취임 20주년을 맞는다.

1987년 12월1일 이건희 삼성 회장 취임식.1987년 12월1일 이건희 삼성 회장 취임식.


◆매출 150조, 직원 25만명으로 성장=지난 1987년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후 20년간 삼성 그룹의 성장은 `성공적'이었다. 이 회장이 취임할 당시 삼성 그룹의 매출은 17조원에 불과했고, 이익은 2700억원에 머물렀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매출(2006년 기준)은 8.9배인 152조원으로 늘었고, 세전이익은 52.6배 증가한 14조 2000억원으로 증가했다.

또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1987년 당시 1조원에서 지난해에는 140조원으로 140배 늘었다. 수출은 9억달러였던 것이 73.7배 늘어 지난해 663억달러를 기록했다. 그 사이 직원수는 16만명에서 25만명으로 약 60% 증가했다. 삼성의 브랜드가치는 당시 '안방 기업'에서 전세계 21위의 가치(169억달러)로 성장했다.

삼성의 이같은 성장을 이끌어오기까지는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었고, 현재 걸어가는 길도 순탄치만은 않다.


"거대한 책임의 산 앞에 서 있는 나는 절대 고독을 느꼈다."

연매출 150조원을 넘어선 삼성 그룹을 이끄는 이건희 회장이 지난 1995년 독일 알게마이네 자이퉁지에 삼성 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한 후 삼성을 변화시키기 위해 추진한 신경영을 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을 밝힌 속내였다. 내부 개혁의 어려움을 토로한 말이다.



이건희 회장이 1993년 양(量) 중심에서 질(質) 중심의 경영 전환을 요구하는 신경영 선언(프랑크푸르트선언) 당시 삼성 임원들에게 강연하고 있는 모습.이건희 회장이 1993년 양(量) 중심에서 질(質) 중심의 경영 전환을 요구하는 신경영 선언(프랑크푸르트선언) 당시 삼성 임원들에게 강연하고 있는 모습.
◆끊임없는 변화 모색=1987년에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이듬해인 1988년 3월 22일 서울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삼성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제 2창업을 선언한다.

제2창업 선언은 1966년 동양방송에 입사해 20여년을 경영수업을 한 이 회장은 갑작스러운 경영권 승계를 창립 50주년을 계기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선이었다.

이 회장은 창립 50주년을 맞아 `90년대까지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제1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이같은 바람은 제2 창업 후 5년이 지난 1992년까지도 원하는 수준까지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이듬해에는 `가족을 빼고는 모두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이르게 된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약 5년간은 이 회장이 새로운 삼성호에 줄기차게 개혁을 요구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1995년 알게마이네 자이퉁지에 기고한 `21세기를 향한 아젠더(Agenda fur das 21 Jahrhundert)'라는 글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회장 취임 이전부터 질 위주의 경영을 끊임없이 강조해 왔지만 경영관행은 여전히 양적 기조를 벗어나지 못했고, 대단히 위험한 타성이 그룹을 지배하고 있었고 내 눈에는 위험수위를 넘는 것으로 보였다."



이같은 고착화된 타성을 깨기 위해 이 회장은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불리는 '신경영'을 선언했다. 그 당시의 심정이 "거대한 책임의 산 앞에 서 있는 나는 절대 고독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신경영 선언 후 임직원을 상대로 수백시간의 강연과 토론을 했고, 그 내용을 정리하는 데는 2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규모보다는 질(質)을 중시하는 신경영 선언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조직 문화에는 줄기차게 변화와 위기 의식을 강조했다.

◆질 중심의 경영, 15만대 휴대폰 화형식=삼성은 60년대 이래 매 6년마다 10배씩의 외형 성장을 기록했고, 80년대에는 포춘 500대 기업의 연평균 성장률 6.7%보다 3배 이상 높은 23.7%의 성장세를 기록했지만, 글로벌기업으로서의 삼성은 찾기 힘들었고, 국내 1위, 안방기업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회장이 직접 쓴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언급했듯이 1990년까지만 해도 삼성제품은 LA의 한 매장 구석에 먼지를 쓴 채 `처박혀' 있었다. 1991년 당시 삼성 그룹 전 계열사의 순이익을 합해도 현대중공업 한 기업의 순이익 2000억원보다 못할 정도로 초라했다.

이를 바꾸는 작업이 첨단 산업을 맡은 삼성전자로부터 시작됐고, 반도체, TFT LCD, 휴대폰, TV 등에서의 혁신을 통해 글로벌 리더로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회장은 양보다는 질을 강조하기 위해 1995년에는 휴대폰 15만대(약 150억원어치)의 화형식을 치르기도 했다. 설날 직원들에게 선물한 2000대의 휴대폰 통화품질이 좋지 않다는 반응을 들은 후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조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98년 매출 20조 1000억원, 순이익 3000억원으로 영업이익률 1.5%에 그쳤던 삼성전자는 2000년부터 변신에 성공했다.

이건희號 20년, 세계 초일류기업 도약
◆GDP 18%, 수출 20% 차지-그러나...=그룹의 중추인 삼성전자의 2000년부터 2005년까지 6년간 올린 순이익이 40조 4000억원으로, 1968년 삼성전자 창사 이래 32년간 올린 전체 누적 순이익의 83%에 달하는 등 변화에 성공했다.

또한, 삼성의 국가경제 기여도를 보면 매출액 152조원은 우리나라 GDP 848조원의 18%, 시가총액 140조원은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의 20%, 수출액 668억원은 국가 전체 수출의 21%를 차지하고 있다.



그 동안 난공불락으로만 여겨졌던 일본 소니를 제치고 2002년에는 시가총액에서, 2005년에는 브랜드가치에서 앞서면서 세계 최고의 전자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이제는 오히려 일본 언론들이 '삼성을 배우라'고 조언하는가 하면, 일본 전자업체들이 힘을 합쳐 '타도 삼성'을 외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지난 20년간 이건희호의 순항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삼성은 이제 지난 20년의 성과를 발판으로 앞으로의 20년을 준비할 때이지만 최근 그룹 안팎으로 위기에 몰려 있다.



세계 반도체 경기의 침체와 중국과 일본의 압박 등 국제적 요인과 함께, 국내에선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의 비리의혹 폭로로 검찰의 수사와 특검을 눈앞에 두고 그룹 경영에 혼란을 빚고 있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의 이 회장 체제 이후 20년간 쌓아온 고성장의 성과가 최근의 경영외적인 요인들로 인해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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