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각·구조조정·투매…끝이 안보이는 신용경색

뉴욕=김준형 특파원, 유일한 기자 2007.11.27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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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 구조조정, HSBC 상각, 금융주 급락 회오리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꼬리를 무는 대규모 상각, 대대적인 구조조정, 애널리스트의 대폭적인 목표가 하향...

신용경색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월가의 대형 은행들의 상각 발표가 뜸한가 싶더니 이번에는 영국의 HSBC은행이 대규모 상각과 자금 지원을 들고 나왔다. 신용경색에 멍든 월가를 대표하는 씨티그룹은 급기야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구조조정은 고용시장을 직접 악화시키고 소비 경기를 끌어내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애널리스트들은 월가 은행들의 목표가를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연준(FRB)이 연말까지 공개시장정책을 통해 대규모 유동성 지원에 나설 뜻을 공식 밝히는 등 올연말 금융시장은 미국 서브프라임 발 신용경색으로 꽁꽁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씨티, CEO 해임에 이어 구조조정..수퍼펀드 리더 자리도 내줘
26일(현지시간) 상승 출발했던 뉴욕증시는 세계 최대 금융회사인 씨티그룹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소식에 급락세로 반전했다. CNBC는 이날 씨티그룹이 최대 4만5000명의 직원을 감원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감원은 채권과 모기지 부문 등 일부에만 한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부문만을 도려내는 통상적인 월가의 구조조정방식이 아닌 회사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구조조정 방침이라는 점에서 신용경색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찰스 프린스 최고경영자(CEO) 해임 이후 대규모 임직원 정리라는 가혹한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이다.



씨티는 이미 지난 4월에 오는 2009년까지 전직원 30만명의 약 5% 혹은 1만7000명의 인원을 감원해 총 46억달러의 비용을 절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CNBC는 씨티의 각 사업부 최고 책임자들은 이미 상부로부터 감원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받았으며 대상은 최대 4만5000명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씨티그룹 주가는 전날에 비해 6.15% 급락한 29달러 75센트로 마감, 5년만의 최저가로 곤두박질쳤다.

◇HSBC 또다른 뇌관으로 등장
미국 월가를 대표하는 씨티가 철저하게 망가진 이날 영국의 금융가인 '더 씨티'를 대표하는 HSBC가 마침내 서브프라임 투자와 관련한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이날 HSBC는 자사의 2개 구조화투자회사(SIV)를 대차대조표에 반영하기 위해 350억달러를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 주도로 설립이 추진중인 이른바 슈퍼펀드가 본격 출범하기 전에 HSBC 스스로 SIV의 자산을 급하게 유동화시킬 경우에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자산가치 급락을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돼 SIV 불똥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 골드만삭스는 HSBC가 추가로 상각해야 할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이 12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라고 밝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었다.



골드만삭스 홍콩의 로이 라모스 애널리스트는 지난 24일자로 발송한 투자 노트에서 "HSBC가 인수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 하우스홀드인터내셔널 등으로 HSBC의 부실 자산은 계속 쌓이고 있으며 이런 상황이 내년까지 연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은행 투자의견-목표가 하향 또 하향
골드만삭스는 이날 HSBC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매도'로 하향 조정했다. 이에따라 중립 이상의 투자의견을 지닌 대형 은행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됐다.
HSBC주가는 2.6% 하락한 82.54달러로 마감하며 52주 최저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UBS는 신용경색 회오리의 한 가운데에 있는 정부 출자 모기지 회사 패니 메와 프레디 맥의 투자 의견을 모두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패니 메의 목표 주가는 88달러에서 31달러로, 프레디맥은 87달러에서 28달러로 대폭 낮췄다.



이 여파로 패니 매는 10.19% 폭락했고 프레디 맥도 7.44% 급락했다. 워낙 투자심리가 불안하다보니 애널리스트의 액션은 투자자들의 '투매'를 낳았고 그대로 주가에 반영되고있다.

리먼브라더스도 5.6% 급락하는 등 주요 금융주들이 일제히 내려앉으면서 아멕스 시큐리티 브로커/딜러 지수가 4.3% 밀려났다.

◇중앙은행들 소방수 자처..역부족 지적
미국 뉴욕 연방은행은 이날 최근 신용경색에서 불거진 단기 금리 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권 대출에 대한 만기 연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신용위기 우려감이 가시지 않으면서 지난 9일 이후 하루짜리 콜금리가 거의 매일 기준금리인
4.5%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연준은 당장 수요일(28일) 만기가 도래하는 80억달러에 대해 내년 1월10일까지 만기를 연장하는 공개시장정책을 취할 방침이다.

보통 최대 2주 정도의 만기 연장을 해왔으나 6주나 연장하는 파격적인 개입을 단행하는 것이다. 그만큼 신용경색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뉴욕연방은행은 "연말까지 은행권 대출의 만기와 대출 금액이 시장과 준비금 관리를 통해 조절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은 연말을 전후로 은행들의 현금 수요가 급증하는 것을 감안, 이때가 되면 대규모 시장 개입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주 예상되는 규모는 그 어떤 단일 건보다 크다. 한 연준 관리는 "8월부터 고조된 신용경색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올 연말 은행들이 자금 수요를 충당할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전했다.

앞서 유럽중앙은행(ECB)도 시장에 추가로 유동성을 공급할 계획이며 필요하다면 내년 초까지 유동성 공급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ECB는 긴급 성명을 통해 "유로 자금 시장에서 다시 불안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면서 "다음주 환매조건부채권 매입을 통해 평소보다 더 많은 유동성을 추가로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양대 중앙은행의 이같은 유동성 투입 외에도 연준(FRB)의 금리인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시장개입이 신용경색의 거센 불길을 잠재우기 역부족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소비 위축, 실물 경기 냉각된다
씨티를 비롯한 은행들의 구조조정은 수익구조 개선을 목적으로한다. 은행 비용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여 '급한 불은 일단 꺼보자'는 속셈이다. 하지만 대규모 해고로 인한 실업 증가는 5년 넘게 미국 경제를 탄탄하게 지켜온 고용시장에 타격을 준다. 소비는 줄게되고 이는 실물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 가뜩이나 내년 미국 경기 성장률이 2% 아래로 하향조정된 상황에서 신용경색의 파문이 확산될 수 있는 것이다.

전날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금융시장이 새로운 신용 경색으로 빠져들고 있으며 이것이 금융업계에 추가 손실을 입히는 것은 물론 더 나가서 실물 경제에까지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재무장관은 한 기고에서 "미국의 침체가 전세계 성장을 심각하게 둔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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