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시장]북한의 WTO 가입론

송기호 변호사 2007.11.25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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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물질적으로 결핍된 조선의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에게는 당시의 '북벌론'과 '소중화(小中華)론'은 인민의 풍요를 가로막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의 지배자들이 오랑캐라고 업신여기던 청나라로부터, 배울 것은 배우고 적극적으로 교역을 추진하자는 연암의 사상은 당대 성리학자들에게는 매우 급진적이었다.



◆북한의 열하일기

최근 북한은 국제금융기구 가입을 추진하고 있고, 북한의 고위 공무원들은 미국 정부의 주선으로 미국에서 국제금융의 구조에 대한 학습을 받았다. 더욱이 북미 핵 협상은 실질적 성과를 내는 등 북미 수교는 조만간 가시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북한의 모습은 과거와 다른 새로운 모습이다. 북한의 '열하일기 전략'이라고 부를 만하다. 국제통상의 측면에서 본다면, 북한과 미국은 머지않아 상호 무역 정상화의 길로 갈 것이다.

중국이 그랬듯이 북미수교 이후의 북한은 미국과 정상교역 관계국(PNTR)이 될 것이고 북한산 제품은 미국에게 자유로이, 그리고 통상적인 관세율로 수출될 전망이다.

필자는 지금 상황에서 북한에게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준비를 권하고 싶다. 세계 152개 회원국의 공동 국제 통상 규범인 WTO는 북한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의미 있는 도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WTO에서 가난한 나라에게 제공하는 여러 특혜와 과도기적 조치를 적용받으면서 세계무역질서에 더 잘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WTO가 요구하는 변화는 북한에게 상당한 도전이 될 것이다.

아다시피 지금의 WTO는 우루과이 라운드(UR)의 산물로서, 단순히 상품 무역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서비스(GATS), 지적 재산권(TRIPs) 등 한 나라의 사회적 내부 질서와 관련된 분야도 적용 대상이다.

비록 북한이 최근 10여년 간 여러 법적 제도적 정비를 활발히 추진했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WTO 규범의 원활한 작동을 충분히 보장할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북한으로서는 북한의 사회 구성 원리의 자율성을 지키면서도 WTO 적합성을 도모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신축성을 여러 각도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

◆DDA와 한미 FTA

북한의 WTO 가입 준비에서 중요한 고려점은 DDA라고 하는 새로운 WTO 국제규범 협상이다. 1998년 합의돼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 그 협상이 공식 개시된 DDA는 북한에게 매우 중요하다.
북한이 WTO에 가입한다면, 북한에게는 이 DDA 규범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DDA 협상이 지금의 WTO, UR 협상과 다른 점은 미국과 유럽연합이라는 국제통상의 양극구조가 더 이상 관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DDA가 공식협상 개시 7년이 넘도록 타결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미국과 유럽연합의 농업보호정책을 개발도상국들이 더 이상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 DDA 다자주의보다 한미 FTA와 같은 양자주의에 치중하기 시작한 배경에는 WTO가 2004년에 미국의 면화농업 보호제도를 불법이라고 판정한 것이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DDA 동향을 감안해 가입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북한으로서는 또한 한미 FTA의 파급력을 생각해 봐야 한다.

특히 한미 FTA가 '남북경제공동체' 대신 남북 분리를 취함으로써 파생될 문제들에 대해서도 대처할 필요가 있다. 어느모로 보나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지금의 북한에게 절실한 '책'이라는 것이 분명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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