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제가 날개를 달아드릴게요"

이건희 외부필자 2007.11.02 12:31
글자크기

[이건희의 행복투자]할머니와 교감이 EQ 높인다

# 내 입맛은 특이한 편이다. 어린 나이부터 쌍화탕을 좋아해서 남들은 쓰다고 인상 쓰는 한약을 굉장히 좋아한다. 또 날계란에 밥을 비벼 먹기도 하고 식사 중에 함께 우유를 마신다. 물론 나와 같은 입맛을 지닌 사람도 종종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내가 그렇게 밥을 먹으면 특이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이런 독특한 입맛을 형성해주신 분은 바로 지금은 하늘에 계신 할머니시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할머니께서 나를 돌봐주셨다.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내게 자주 주신 음식을 좋아하게 되었다. 내 입맛 속에는 항상 할머니가 계신다. 지금은 내 곁에 계시지 않지만 언제나 내 입맛 속에서 나와 함께하신다. 할머니께 딱히 효도를 많이 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할머니께 해드리지 못한 것을 해드렸다.



예전에 2층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베란다에 이불을 널었는데 1층으로 떨어졌다고 하셨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여쭤보자 할머니께서 “이 할머니가 날아서 이불을 주워왔단다.”라고 대답하셨다.

그 때 아직 5살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할머니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할머니를 위해서 스케치북에 날개를 그려서 오린 다음 할머니께 드렸다. 할머니께선 날개를 받아들고는 말없이 웃으셨다. 그 때는 그 웃음의 의미를 잘 몰랐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누구나 조부모님, 부모님께 어버이날에 카네이션 하나쯤은 가슴에 달아드린다. 하지만 날개를 달아드린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달아드린 날개는 비록 종이 날개였지만 등에 달면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진짜 날개이다.

지금은 하늘에서 할머니께서 그 날개를 달고 계신다. 그 날개를 달고 하늘나라에서 훨훨 날고 계신다. 긴장되는 행사가 있는 날이면 손에 꼭 쥐고 가는 것이 있다. 바로 호박모양의 옥색 구슬이다. 진짜 할머니의 유품은 아니지만 나는 할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믿고 있다.

~*~*~*~*~*~*~*~*~*~*~*~*~*~*~*~*~*~*~*~*~*~*~*~*~*~*~*~*


보통은 사람들이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생겨나는 불편하고 나쁜 점을 주로 의식하는 편이지만, 할머니와 함께 사는 것에서 얻어질 수 있는 가치도 큰 것입니다. 부모는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이성적으로 자식에게 대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할머니는 부모와 달리 무한한 애정으로 손자에게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때 아이의 버릇이 없어진다는 단점이 있기도 하지만 아이의 정서가 풍요로워지고 감성이 풍부해진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아이의 버릇 면에서는 웬만한 경우에는 부모가 별도로 신경을 써주면 큰 문제는 없습니다.)



제 둘째아이가 정이 많고 감성이 풍부하게 된 데에는 타고난 선천적인 면에 덧붙여서 할머니와 함께 생활한 것도 영향이 꽤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부모 이외의 다른 어른도 함께 살아가면서 그 어른으로부터 무조건적인 푸근한 애정을 받은 아이가 성격이 밝아지고 정서가 풍부해지는 확률이 높습니다.

아이가 경쟁사회에서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한 부모로서는 공부나 어떤 능력 면에서 우수해질 때에 아이를 더 높게 평가해주고 더 예뻐해 주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태도로 자신을 대해주면서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아이에게는 심리적인 탈출구가 되고 심리적으로 편안해져서 정서가 안정됩니다.

즉 부모의 역할과 상호보완적이 되는 것입니다. 제 아내도 정이 있고 원래는 성격이 밝은 편인데, 본인 스스로 말하기를 어려서 집에서 큰 어머니가 함께 살았었고 큰 어머니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제 경우에는 어렸을 때에 외할머니가 집에 오셔서 머무는 때가 자주 있었고 형제들 중에서 제가 외할머니와 가장 많은 교감을 나누면서 자랐었습니다.



흔히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지적인 면의 능력을 늘려주는데 크게 신경 쓰는 편입니다. 아이에게 예능교육을 시킨다하더라도 예능에 대한 기술적인 능력 향상에 흔히 초점을 맞춥니다. 우수한 지적인 능력은 당연히 추구할 수 있으면 추구해야합니다. 다만 균형 잡힌 성장과 발전이 더욱 중요합니다.

지금은 높은 IQ가 요구되는 시대로부터 높은 EQ가 요구되는 시대로 변화해가고 있습니다. 높은 IQ가 아닌, 높은 EQ, 즉 감성에 바탕을 둔 경쟁력도 점차 중요해지는 시대입니다. 이런 사실을 바라볼 때에,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EQ를 높이게 해주는 환경으로써 할머니와 많은 교감을 나누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의 가치는 의외로 클 수 있습니다.

예전처럼 아이가 가정 안에서 많은 형제들과 어울리면서 자라는 것도 아니고, 과거와는 달리 맞벌이하는 부모라서 아이에게 신경써줄 여력이 적은 가정이 많습니다. 저만 하더라도 동네 아이들과 골목에서 많이 놀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놀더라도 사람을 대하지 않고 주로 컴퓨터를 대하면서 노는 것이 대부분 가정의 현실입니다.



학교나 밖에서는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뭐든지 숫자화하고 점수화하는 것들로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환경은 EQ의 증진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방해가 되는 편입니다.

할머니는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가정학습지 영어선생님도 아니고, 수학선생님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이 없는 할머니처럼 보이지만 요즘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아이의 감성을 키워주는 역할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할머니는 잘한다고 칭찬할만한 것도 아닌 일에서도 아이가 무엇을 하던지 잘한다고 추켜세워 주는 경향이 부모에 비해서 많습니다. 그에 따라 아이가 자신감을 가지고 자라날 확률이 높아집니다. 할머니와 살면서 생겨나는 단점을 부모가 충분히 보완해준다면 할머니와 살면서 얻을 수 있는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합치면, 즉 “장점+단점”이 아이에게는 크게 플러스로 나타나게 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가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 대하는 것을 자식 부부가 보면서 그러지 마시라고 할머니에게 너무 지나치게 간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예외적인 상황도 있습니다.) 서로의 지나친 간섭은 함께 사는 것을 불편하고 힘들게 만들 뿐입니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교육시키고 싶은 것은 할머니가 안보는 곳에서 해도 대부분은 충분합니다. 할머니의 아이에 대한 태도가 아이의 정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면이 크다는 것도 인식하고 부모가 해주지 못하는 역할을 할머니가 해주는 것의 가치를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할머니와 함께 살 때에 또 하나의 좋은 점으로서, 집안에 어른이 계시기에 부부 사이에서 말과 행동에 조금은 더 조심하게 됩니다. 저 또한 그랬었다고 기억됩니다. 부부로서도 과격한 말과 행동을 자제하는데 효과가 있고 집안 분위기 상 아이들에게도 좋은 것입니다. 부부싸움시 언성을 크게 높이거나, 아이에게 화나거나 야단칠 때 순간의 감정에 치우쳐서 필요 이상의 안 좋은 비이성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을 할머니가 보고 들을까봐 의식하여 자제하게 됩니다.



또한 조부모님이 계심으로써 직접적인 교육 효과를 얻어낼 수도 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부모인 자신들에게 어떻게 대하라고 가르치기는 어색한 측면이 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부모 스스로가 어떻게 대하는지를 아이들에게 보여줄 때의 교육적인 효과가 큽니다.

예를 들어서 인사성도 연습과 훈련에 의해서 형성되어집니다. 집에서 나가고 들어올 때 자식이 부모에게 인사를 잘 하도록 습관화 시키는 것에서도 부모가 집에서 나가고 들어올 때 조부모님에게 인사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을 유도하면 쉽습니다.

인사 잘하는 것은 사회생활에서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서 출세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목적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인사를 잘하는 것보다는 평소 아무 때나 아무에게라도 인사 잘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 사회생활에서 훨씬 효과가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인사성이 밝은 아이를 선생님은 좋아하게 되어있고, 더 커서 어른들의 사회도 똑같습니다. 인사성 하나를 예로 들었지만, 신경만 잘 쓰면 조부모님과 살면서 현실적인 교육효과도 나름대로 얻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맞벌이 부부이거나, 혹은 맞벌이가 아니라도 부부가 함께 외출할 때에 어린 아이 때문에 걸림돌 되는 부분을 함께 사는 할머니나 다른 어른들로 인하여 해소하는 것도 큰 이점입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거꾸로 핵가족이 더욱 보편화되어 있는 셈입니다.

사회제도 면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 아파트 청약 자격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게 만든 것은 매우 적절합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 경제적으로도 큰 이득을 얻을 확률을 높여주는 것도 사람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데 기여하니까요. 또한 집 안에서 아이를 돌봐주는 어른이 계시면 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엄마로서 시간적 부담이 그만큼 줄어드니까 사회생활하는 여성들이 출산을 꺼리는 요인을 줄어들게 해주어서 국가적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데 고려해야할 제약 요소는 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겪어야하는 갈등과 힘든 점이 임계치를 넘어가는 데에도 함께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부모님을 위해서도 적절치 못할 것입니다. 다만, 부모와 자식 사이에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면이 나타날 때 피차 양보하는 마음으로 어느 정도 선까지는 극복될 수 있습니다.

이 때 노인이 된 부모가 양보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보다는 자식이 양보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 좀 더 우선되는 것이 타당합니다. 왜냐면 자식을 낳아주고 길러준 세월 동안에 부모가 자식에게 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는 과거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 볼 때에도 그러합니다.

자식이 부모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은 유리한 입장이므로 인생에 있어서 자식보다 이미 불리한 입장이 된 부모를 우선적으로 배려해 드리는 것이 민주적인 시각에서도 기본정신입니다. 자식 또한 나이 들면 부모와 같은 입장이 될 것입니다. 현재 유리한 입장의 사람이 불리한 입장의 사람에게, 강자가 약자에게, 조금 더 양보하고 배려해주는 방식의 시스템이 꼭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대부분의 것들은 돌고 돌아서 나에게도 결국은 영향이 오게 됩니다. 상생에 있어서 올바른 의미와 이로운 점은 단순히 도덕교과서가 아닌 민주주의 현실과 자본주의 현실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느냐 못하느냐는 것은, 당장 눈앞의 것만을 바라보느냐, 멀리까지 총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의 차이입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