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금리로 막을까 환율로 막을까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2007.10.29 17:05
글자크기
금리로 막을까, 환율로 막을까. 국제유가가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다.

지난 17일 한은이 발표한 '9월 가공단계별 물가동향'에 따르면 원재료 및 중간재 물가는 8월보다 1.5%나 올랐다. 7개월 연속 상승세이고 전년비로도 4.7%나 올랐다.

그러나 당국이 인플레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그리 많지 않다. 크게 보면 금리를 올려 소비(경기)를 위축시키거나, 원화강세를 용인해 수입 물가를 낮추는 정도다.



에너지 절약 캠페인, 해외유전 개발 등이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단기에 안심하고 믿을 만한 카드는 못된다.

◆ 금리인상 가능성은? = 한국은행은 지난 8월 콜금리를 전격 인상한 이래 2개월 연속 금리를 5.00%로 고정시켜 놓고 있다. 금리를 올린 직후 때마침 ‘서브프라임 우려’가 현실화됐고, 미국의 경기 하강 우려가 본격화된 결과로 보인다.



그럼 고유가로 물가상승 압력이 커진 지금, 한은은 다시 금리인상 카드를 고려할 수 있는 걸까.

결론적으로 그럴 확률은 매우 낮아 보인다. 금리인상 압력에 직면할 때마다 재정경제부가 늘 강조하듯 금리정책은 국가경제 전체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금리인상은 인플레에 긍정적 효과가 있는 반면, 경기에 찬물을 끼얹고 환율하락으로 수출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빈대 잡자고 집을 ‘홀라당’ 태울 수는 없다는 논리다.

게다가 미국의 추가금리 인하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미 연방제도이사회는 지난달 단기금리를 5.25%에서 4.75%로 0.5%포인트 전격 인하한 바 있고, 오는 31일에도 적어도 0.25%포인트 내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주가와 경기의 견조한 흐름, 유가의 사상최고치 경신 행진에도 불구하고 한은이 미국의 금리방향과 역주행하기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행동보다 말로만 ‘선제조치’를 강조해 온 지금까지의 모습을 감안했을 때, 한은이 금리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릴 시점은 물가 때문에 ‘악’ 소리가 날 때로 보인다.

◆ 환율하락 어디까지 = 이런 관점에서 외환정책 쪽은 금리 쪽보다 부담이 덜하다고 볼 수 있다.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에는 부정적이지만 물가하락에는 도움이 된다.



사실 국제유가 100달러를 코 앞에 둔 시점에서 큰 부담 없이 자가용을 몰 수 있는 것도 환율하락의 공이 크다. 달러/원 환율의 하락, 즉 원화가치 상승으로 석유수입 가격이 많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정책당국 입장에서는 수출기업들의 원성만 빼놓는다면 환율하락을 기를 쓰고 막을 이유가 없다. 정부 표현대로 한국경제는 이미 ‘IMF 외환위기’를 졸업했고, 산업구조 또한 가격경쟁력 중심에서 품질경쟁력 중심으로 옮아가고 있으므로 원화강세는 필연적 결과일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 26일 달러/원 환율은 트리플 바닥인 913원 아래로 떨어졌다. 913원은 당국이 기를 쓰고 막았던 지점이다. 910원에 걸린 옵션 물량 등을 감안하면 이제 800원대 진입은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이제 관건은 수출 중심의 우리 경제가 환율하락을 어디까지 버텨낼 수 있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환율하락의 후폭풍이 어떤 모습, 어떤 강도로 다가올 지도 주요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 골디락스, 위협 직면 = 유가가 100달러를 바라보면서 이른바 ‘골디락스’로 표현되는 세계경제의 선순환 구조는 이제 중대한 위협을 맞게 됐다.

사실 지금까지 세계경제가 높은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물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역장벽의 완화 추세에 발맞춰 중국 등 이머징 마켓으로부터 값싼 물건들이 대거 유통된 영향이 컸다.



이는 미국이 쌍둥이 적자(경상수지, 재정수지)에도 불구하고 높은 달러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한 매커니즘이다.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 중동 등 뾰족한 투자 대안이 없는 나라들이 달러자산을 꾸준히 매입해 줬기 때문에 달러가치의 유지가 가능했다.

우리나라 또한 세계경제의 이러한 선순환 구조에 힘입어 환율이 떨어져도 사상 최대의 수출 행진을 펼칠 수 있었다. 유가가 올라도 물가는 3% 아래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였고, 주가 또한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다. 주가상승률이 유가상승률에 비례하는 현상은 지난 세기에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순환 구조에도 균열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시작이 달러약세인지 고유가인지는 분명치 않다. 달러약세와 고유가가 상호 연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막대한 외환보유고로 위안화의 아시아 결제통화를 꿈꾸고 있고, 외환보유고의 다변화를 꾀하는 나라들이 다수인 점도 이러한 흐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중동 국가들도 달러 자산 투자를 자제하는 분위기여서 짐 로저스의 권유대로 달러를 내던지는 흐름은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 변곡점은 어디?= 세계경제가 선순환 구조에서 악순환 구조로 바뀌는 변곡점은 어디일까. 이는 세계경제가 고유가를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느냐, 국제유가가 얼마까지 올라야 3차 오일쇼크가 올 것이냐와도 맞닿은 질문이다.

혹자는 두바이유 기준 국제유가가 90달러를 넘게 되면 제3차 오일쇼크가 가시화될 것으로 본다. 100달러는 넘어야 위기가 올 것이란 시각도 있다.



외국계은행 한 임원은 “한국경제가 어느 수준까지 고유가를 감내할 수 있느냐가 투자자들의 최대 관심사”라며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도 버틸 수 있다는 시각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 정도 체력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국제유가가 일시적으로 100달러를 돌파할 수는 있겠지만, 시장 자체의 조절 능력으로 다시 100달러 아래로 하락할 것이란 시각도 만만찮다.

산은경제연구소 박용하 국제경제팀장은 “1차, 2차 오일쇼크의 경우 지정학적 문제에 따른 석유생산국들의 공급 문제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수요 요인이 강하다”며 “가격상승이 점진적으로 진행돼 왔고 OPEC이 페이스를 조절할 수도 있기 때문에 3차 오일쇼크나 악순환 구조로 바뀔 가능성은 낮게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문제를 금리로 대응하기는 힘든 상황이고 환율 부분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재정상태가 적자를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본다면 유류세로 막는 게 가장 합리적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