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자사 주가 끌어내리기' 왜?

머니투데이 전필수 기자 2007.10.2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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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슈]에이치앤티

"외부 세력이 회사 주가를 너무 많이 올려 사업까지 차질을 빚게 돼 시장경고 차원에서 주식을 팔았습니다."

태양광 테마로 하늘 높은줄 모르고 주가가 치솟았던 에이치앤티 정국교 사장의 말이다. 주가가 최고점에 달했을 때 임원들과 함께 400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팔았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정 사장은 긴급히 간담회를 열어 이같이 해명했다.

대주주인 회사 대표가 자기 회사 주식을 인위적으로 올린다고 작전세력을 비판하는 흔치 않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주가조작은 대주주의 협조나 적어도 방조하에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작전으로 한참 주가를 조작하는데 대주주가 감당하지 못할 물량을 쏟아내면 작전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다단계식 작전으로 루보를 6개월동안 50배 가까이 올렸던 세력들마저 K종목에서 대주주의 중간 대규모 매도로 작전을 실패한 것이 검찰 조사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 상식 뒤엎은 대주주의 주가조작설 제기 '왜'?



주가가 급등하면 가장 수혜를 많이 입는 쪽은 대주주다. 당장 현금화를 하지 않더라도 평가액이 폭발적으로 늘기 때문이다. 정국교 사장도 에이치앤티의 주가 폭등으로 가장 큰 수혜를 봤다.

에이치앤티 시가총액이 연초 600억원대에서 10월 초순 1조4000억원대까지 치솟았다. 9개월여만에 시가총액이 1조3000억원 이상 늘어나며 정 사장의 지분 평가액도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정 사장은 지주회사인 에이치앤티이엔지와 자신의 직접 보유분을 합쳐 50% 이상 보유하고 있었다. 9개월여만에 장부상이지만 7000억원 가량 재산가치가 늘어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 사장은 외부 세력의 주가조작설을 제기했다. 특정세력이 신문광고까지 내 가면서 에이치앤티 사업을 부풀리고, 왜곡하는 방법으로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렸다는 의혹 제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사장의 주가조작 의혹 제기는 곧바로 투매로 이어졌다. 정 사장의 지분매각 사실로 촉발된 주가 급락세에 주가조작 의혹이 더해지자 그나마 있던 매기마저 완전히 실종됐다. 며칠을 점하한가로 떨어지며 연속 하한가 일수를 5일로 늘렸다.

1조원대 중반까지 늘었던 시가총액은 순식간에 5000억원대로 급락했다. 허공에 날아간 시가총액 규모만 9000억원대. 이중 절반 가량이 정 사장쪽 몫이었다. 그런데 이같은 위험성을 무릅쓰고 정 사장은 간담회에서 자신의 발등을 찍는 돌출 발언을 했다. 왜일까.



정 사장은 "세력이 우즈베키스탄 사업과 관련, 사실을 확대한 내용의 신문광고를 내는 바람에 현지 투자비율이 달라지는 등 사업추진까지 차질을 빚게 됐다"고 주장했다. 못된 루머와 주가 과열로 인해 우즈베키스탄 정부 측에서 당 초 85대15였던 지분을 50대50으로 조정할 것을 요구했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주가도 사업진행단계보다 너무 많이 올랐는데 이런 것들은 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제대로 된 사업진행의 방해가 되기 때문에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는 주장이다.

◇ 2%대 지분 매각하고도 340억 현금화



이같은 해명에도 정 사장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눈길은 여전히 싸늘한 편이다. 불과 40만주, 2%대에 불과한 지분매각으로 천문학적 돈을 손에 쥐었기 때문이다. 정 사장이 40만주를 팔고 현금화한 돈은 총 343억여원. 임원들이 판 몫까지 합치면 400억원 가까이 된다.

정 사장은 이 돈을 손에 쥐고도 여전히 에이치앤티 지분을 절반 가까이 보유하고 있다. 시장 경고 차원이든 무엇이든 간에 경영권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수백억원을 현금화한 것이다. 일반 투자자들 입장에서 정 사장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정 사장은 이 돈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을 수 있는 회사와 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단일 아이템에 집중된 사업을 다각화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현재 신재생에너지 업체 3곳을 대상으로 인수를 전제로 한 실사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면 유상증자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이에 대한 정 사장의 답변은 "주가가 너무 올라 유상증자를 실시하기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과거 새롬기술이 시총이 2조원을 넘었을때 유상증자를 실시, 수천억원의 현금을 회사에 유보했던 점을 감안하면 정 사장은 천문학적 금액의 사내 유보 기회를 놓친 셈이다.

대신 자신 명의로 수백억원대의 현금을 손에 넣게 됐다. 물론 사장이 생각하기에도 과도하게 주가가 높은 상태에서 무책임하게 대규모 유상증자를 하는 것이 옳바른 일은 아니다. 새롬기술의 예에서 보듯이 당시 유상증자에 참여했던 투자자들 중 제때 탈출하지 못한 투자자들의 손실은 천문학적 수준이다.

그렇다고 다른 주주들의 희생을 등에 엎고 대주주인 사장이 수백억원대의 주식을 고점에 판 것이 정당화되기는 힘들다. 정 사장과 에이치앤티가 명예회복을 하는 길은 태양광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 회사 가치를 다시 1조원대로 올려놓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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