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원 해고 구조조정…끝없는 행진
산하 헤지펀드 2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충격으로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신용경색의 진원지가 됐던 베어스턴스는 올해 초부터 모기지 사업부문 직원을 40% 가까이 줄여왔다.
워런 스펙터 공동사장까지 퇴진시킨 베어스턴스는 이달 초, 또다시 310명을 추가 감원한다고 밝혔다. 모간스탠리도 모기지 관련부서 직원 가운데 미국에서 500명, 유럽에서 100명 등 총 600명이 회사를 떠나게 된다. 모기지 관련부서의 4분의1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리먼브라더스 역시 올 여름 세 차례에 걸친 해고를 통해 2500명에 가까운 인력을 감축했다. 40억 달러의 평가손을 입은 것으로 알려진 메릴린치는 이달 초 오스만 세메르치 채권 담당 사장과 데일 M 래탄지오 신용상품 담당 사장을 해임했다.
투자은행들이 이처럼 모기지 부문을 대폭 줄이게 되면 모기지 중개를 담당해온 증권사들의 모기지 관련 종업원들은 할 일이 없어지게 돼 일자리를 잃게 된다. 별도의 감원 계획을 수립하고 말 것도 없이 감원이 이뤄지는 것이다.
◆ 도마뱀 꼬리 자르기...'성골'에게는 감원이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대대적인 구조조정 발표에도 불구하고, 월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감원 공포'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회사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아니라 감원이 이뤄지고 있는 부서와 인원은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감원 발표 내용을 자세히 보면 전통적인 핵심 부서라고 할 수 없는 모기지 부문으로 대상이 철저히 국한돼 있다. 5대 투자은행에 근무하는 한 임원은 익명을 전제로 "전통적으로 월가의 프로페셔널들에게 '감원'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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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월가'의 프로페셔널이란 '비즈니스 유닛'에 속한 직원들을 말한다. 월가의 일자리는 크게 비즈니스 유닛과 서포트 유닛으로 나뉠수 있다. 비즈니스 유닛 구성원은 투자은행에서는 포트폴리오 매니저, 리스크 매니저, 딜러 등을 포함하는 '뱅커'를 일컫는다. 브로커리지(증권사) 회사에서는 기관영업 세일즈 부문이 '비즈니스 유닛'으로 구분될 수 있다.
아이비리그 MBA출신이라 하더라도 월가의 성골인 5대 투자은행(골드만삭스, 리먼 브라더스, 베어스턴스, 모간스탠리, 메릴린치)의 '뱅커'로 출발하는 사람은 한 은행당 10명 안팎. 한 해에 40~50명에 불과하다.
명문대 MBA출신 중에서도 1% 안팎이다. 이보다 한단계 낮은 '진골'에 해당하는 비 미국계 투자은행, 증권사를 모두 합쳐도 한 해에 300명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 월가 사람들의 말이다.
치열한 경쟁률과 엄격한 면접을 거쳐 선택된 사람들 가운데에도 가혹한 수련과정을 거치면서 또다시 상당수가 탈락한다. '쓸 만한 인력'의 공급은 은퇴로 인한 자연감소분을 채우기에도 부족하다는 것이 월가의 생리이다.
금융 관련기관 뉴욕 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서포트 부서는 회사에서 키워낸 인재들이 아니고, 급여도 제로베이스에서 실적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회사입장에서는 이들을 해고하는게 구조조정이라고 보기도 힘들다"고 말한다.
물론 메릴린치의 세메르치나 UBS의 휴 젠킨스 투자은행 담당 사장처럼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경영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이미 치열하게 진행돼 온 권력투쟁의 결과라는게 월가의 시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브프라임 사태처럼 대규모 손실이 알려지고 문제가 되면 어김없이 금융회사들은 앞다퉈 '감원', '구조조정', '해고'를 대대적으로 내세우기를 반복한다. 이는 두말할 것 없이 월가가 자본주의의 본산이기 때문이다.
주주들로부터 "돈도 못벌면서…"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지 않도록 미리 차단하는 것이다. 특히 최고경영자가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구조조정'을 방어막으로 사용하는 순발력과 노련함에 있어서도 월가는 세계 최첨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월가에 근무하는 화이트컬러 직원들이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있다. 맡고 있는 분야와 성장 배경에 따라 구조조정의 체감온도는 현격히 차이가 난다.
↑ 월가 중심지 뉴욕증권거래소 앞 전경. 이곳 월가에도 구조조정 칼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