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불모지서 '에너지 금융' 꿈을 캔다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진상현 기자 2007.10.1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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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IB' 해외로 뛴다 <7> '제 2의 카자흐' 우즈베키스탄

"이곳 사람들은 은행을 잘 믿지 않아요. 과거 은행에 맡겨뒀던 돈을 찾지 못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은행들이 그런 불신을 해소하려는 노력도 안한다는 거예요."

국내 은행들의 해외 투자은행(IB) 영업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찾은 중앙아시아의 3번째 나라 우즈베키스탄. 점심 식사 자리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은행 얘기가 나오자 현지 가이드가 불쑥 한마디를 꺼낸다.



"'당신의 돈을 안전하게 지켜드립니다' 라든가 '당신의 돈을 불려드립니다' 는 광고도 하지 않아요."

그의 얘기대로 우즈베키스탄 국민 대부분은 은행에 예금을 하지 않는다. 국민의 95%가 은행 계좌를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그래서 외출을 할 때 두툼한 현금 꾸러미를 갖고 다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곳 우즈베키스탄에서 산업은행이 투자은행(IB)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척박한 금융환경과 IB,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산업은행의 우즈베키스탄 현지법인인 우즈KDB 본사 외관. 최근 새로운 사무실을 물색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우즈베키스탄 현지법인인 우즈KDB 본사 외관. 최근 새로운 사무실을 물색하고 있다.


금융 불모지서 '에너지 금융' 꿈을 캔다
◇첫번째 전략 "길게 본다"= 산업은행의 우즈베키스탄 현지법인인 우즈KDB가 영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5월. 자회사인 대우증권이 매각을 추진하던 우즈대우은행 지분 61%를 인수한 후 이름을 바꿔 출발했다. 우즈KDB의 자본금은 현재 900만달러(원화로 90억원)로 영세한 수준. 산업은행의 전공이라 할 수 있는 IB영업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하지만 우즈KDB의 영업 전략은 분명히 IB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둘지 않을 뿐이다. 우즈KDB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우즈베키스탄의 잠재력이다. 우즈베키스탄은 폐쇄적이고 대통령 중심제를 고수하면서 중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도 경제 성장이 더딘 축에 속한다.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92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나라의 20분의 1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이 부상하기 전까지 중앙아시아의 중심 국가였다. 인구는 2600만명으로 중앙아시아 최대인데다 주력 수출품목인 면화를 비롯, 천연가스 금 등 천연자원도 풍부한 편이다. 금 매장량은 세계 6위, 생산량은 세계 10위권이다. 우라늄과 아연 등 상당량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 특히 자원개발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카자흐스탄과는 달리 국토의 상당 부분이 미탐사 지역으로 남아있어 천연자원 개발 여지가 크다는 평가다. 잠재력 만큼은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개방과 자원개발이 본격화되면 사회간접자본(SOC) 및 기간 산업 투자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이고 그때 쯤 기회가 올 것라는 게 우즈KDB의 예상이다. 개발금융으로 '잔뼈가 굵은' 산은의 노하우와 꾸준히 다져진 현지화 노력들이 결합할 경우 확실한 과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국제 자원 가격이 급등하면서 최근 경제성장률도 탄탄하다. 2004~2005년 7%대의 성장률을 달성했다. 2006~2007년에도 러시아의 석유가스 부문에 대한 투자활성화, 금·면화 가격 강세, 면화 가공능력 향상 등으로 7%대의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장진 우즈KDB 행장은 "우즈베키스탄도 자원을 차츰 개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이 우호적인 관계라는 점도 개발금융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 중국 등은 정치적으로 견제해야 할 필요가 있는 반면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부담이 적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는 전언이다. 김 행장은 "한국형 경제모델을 따르고 싶어하고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좋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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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가스 등 자원 개발과 관련한 금융자문도 우즈KDB가 설정하고 있는 중요한 사업 영역 중 하나다. 우즈KDB를 거점으로 우즈베키스탄은 물론,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전반에 걸쳐 국내 기업이나 정부 기관의 자원 개발을 돕는다는 복안이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는 광업진흥공사, 가스공사, 석유공사 등이 석유·가스·광물 탐사작업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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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KDB의 김중곤 차장은 "궁극적으로 중앙아시아에서 에너지 금융을 해보겠다는 계획"이라며 "우즈베키스탄을 포스트로 해 어렵고 복잡한 구조화 금융의 꿈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두번째 전략 "영업기반 점진적 확대"= 우즈KDB가 본격적인 IB 영업을 전개하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관료주의적인 현지 은행들을 압도하는 경쟁력으로 영업 기반을 점차 확대해가고 있다.
 
네슬레 등 외국계 기업이나 현지 우량 기업 등 30여개가 우즈KDB와 거래를 하고 있다. 우량 고객들인 만큼 부실여신은 전혀 없다. 상반기 세전 순익만 180만달러(18억원)에 달한다. 상반기에만 자본금의 20%를 벌어들인 셈이다. 지난해 2월 대우증권에서 인수할 당시 5100만달러 규모였던 총자산도 6월말 현재 6540만달러로 늘어났고 올 연말에는 7300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비교적 큰 규모의 딜도 하나둘 성사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국영 석유업체인 네프티가즈의 가스승압기지 설비자금으로 3000만달러를 대출해주는 거래를 성사시켰다. 국가 위험도 및 보험 문제가 있었으나 수출보험공사의 보증으로 해결했다.



현지의 부실화된 섬유기업을 한국 기업이 인수할 수 있도록 M&A도 주선하고 있다. 현재 국내 섬유기업인 하인텍스가 우즈KDB의 도움을 받아 이곳 섬유기업을 인수하기 위한 막바지 협상을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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