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3일 카자흐스탄 알마티행 비행기에 올랐다. 국내은행들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영업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풍부한 지하자원을 배경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카자흐스탄 경제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1~2년 전부터. 늦은 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의 해외 IB 영업현장을 둘러보기로 한 마당에서 해외 PF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곳을 빠뜨릴 수는 없었다.
'카자흐스탄=각종 개발사업의 보고(寶庫)'라는 명성은 기내에서도 어렵잖게 확인됐다. 좌석을 빼곡히 메운 승객들 가운데 서류 뭉치들을 뒤적이고 있는 정장 차림의 한국인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가까운 좌석으로 눈을 돌렸더니 국내 대형 건설사의 배지가 선명하다.
↑현지 건설회사가 지은 알마티 시내의 고급아파트. 현지 회사들은 마감공사를 하지 않고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골조 분양'을 주로 하고 있다.
특히 아파트 등 주택개발 사업의 성장세는 눈부시다. 외국 기업 주재원, 주변 CIS 국가들로부터의 노동력 유입, 카자흐스탄 국민의 소득 증가, 2011년 알마티 동계 아시아경기대회 준비 등으로 주택 및 숙박업 관련 건축수요가 급증했다. 알마티에 집중되고 있는 인구를 분산시키고 건설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알마티 인근에 4개 도시를 건설할 예정이다.
강희운 성원건설 중앙아시아 지역본부 사장은 "아직 노후 시설이 많아 주거환경이 개선돼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곳 시장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한국형 아파트의 경쟁력에 대한 기대도 크다. 카자흐스탄 현지 건설사들은 내부 마감 공사는 입주자들이 직접 하도록 하는 '골조 분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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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수 우리은행 부부장은 "한국형 아파트에 대한 경쟁력이 하이빌타운 분양에서 확인됐다"며 "알미타에서 처음으로 분양하는 우림 애플타운에 대한 기대도 높다"고 말했다.
↑우림건설이 알마티시에 건설하고 있는 대규모 고급 주상복합단지, '애플타운'의 모델하우스 외관. 2조5000억 ~3조원의 매출이 예상돼 해외 주택건설사업으로는 사상최대 규모다.
신한은행은 하이빌타운을 공사를 하고 있는 동일하이빌에 대출 형태로 200억원을 지원한데 이어 범양건영이 진행하고 있는 아파트 건설과 상가 건물 공사에도 각각 200억원씩 PF 자금을 지원했다. 기업은행도 성원건설의 '상떼빌-2' 건설사업에 PF 자금 200억원을 공급한다.
국내은행들의 PF 지원은 현지금융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함과 동시에 건설업체의 신용도를 높여주는 역할도 한다. 특히 카자스흐탄에 진출한 건설사들이 대형사들이 아닌 중견건설사들이라는 점에서 은행의 지원은 더욱 요긴하다.
강희운 사장은 "이곳에서 성원건설이 어떤 회사인지 알기 어렵다"며 "한국 금융기관이 금융지원을 한다고 하면 인허가 등을 받는 과정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노용훈 신한은행 글로벌사업부 CIS지역 팀장은 "국내은행들이 과거에 해외진출을 할 때도 유럽, 미국 등 선진시장이 아니라 카자흐스탄 등 개발 수요 있는 곳을 중심으로 지점을 냈더라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시행사 관계자는 "특히 대형 아파트들의 가격이 많이 올랐다"며 "대형 아파트들의 분양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아파트들은 분양에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고경수 부부장은 "현재 은행들이 PF 지원을 하고 있는 사업들은 가격이 지금처럼 오르기 전에 토지와 사업권을 확보한 것이 대부분"이라며 "충분히 경쟁력 있는 분양가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의 각종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도 영업여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올해 4월 알마티의 무분별한 난개발을 방지하기 위해 아파트 신규사업 인허가 규정을 대폭 강화했고, 분양시점도 토지매입을 완료와 건축허가 취득시 가능하던 것이 올해 7월1일부터는 기초공사 완료후 분양을 할 수 있도록 법제화됐다.
토지수용의 어려움도 현지에 진출한 건설업체들이 부딪히는 난관이다. 국내의 경우 '알박기' 방지를 위한 법안들이 도입돼 있는 반면 카자흐스탄은 100%를 모두 사들여야 공사를 할 수 있다. 한채라도 안팔고 버티면 공사를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고경수 부부장은 "현재 시점에서 아파트 건설 사업을 새로 하기는 부담이 적지 않다"며 "도로, 다리, 상하수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쪽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현지 전문가는 "카자흐스탄 정부에서도 이제 자기 것을 챙기려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등 이곳도 만만한 시장 아니다"며 "국내 기업들이 좀더 이른 시점에 카자흐스탄에 진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