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 누비는 한국 불도저, 은행원

알마티(카자흐스탄)=진상현 기자 2007.10.0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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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IB' 해외로 뛴다<5> '개발광풍 들썩이는' 카자흐스탄

"중앙아시아 취재요? 너무 늦게 가는 것 아닌가요?"

지난 9월13일 카자흐스탄 알마티행 비행기에 올랐다. 국내은행들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영업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풍부한 지하자원을 배경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카자흐스탄 경제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1~2년 전부터. 늦은 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의 해외 IB 영업현장을 둘러보기로 한 마당에서 해외 PF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곳을 빠뜨릴 수는 없었다.

'카자흐스탄=각종 개발사업의 보고(寶庫)'라는 명성은 기내에서도 어렵잖게 확인됐다. 좌석을 빼곡히 메운 승객들 가운데 서류 뭉치들을 뒤적이고 있는 정장 차림의 한국인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가까운 좌석으로 눈을 돌렸더니 국내 대형 건설사의 배지가 선명하다.



알미타 시내에서 접하게 되는 '개발 열기'는 한층 뚜렷하다.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공사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공사 현장과 공사 현장이 맞닿아 있는 지역도 있고, 불과 몇백미터 사이를 두고 여러개의 공사가 이뤄지기도 한다. 대부분 아파트 건설 공사다. 현지에 진출한 한 국내 건설회사의 직원은 "도시의 절반은 공사터 같은 느낌"이라고 전했다.
↑현지 건설회사가 지은 알마티 시내의 고급아파트. 현지 회사들은 마감공사를 하지 않고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골조 분양'을 주로 하고 있다. ↑현지 건설회사가 지은 알마티 시내의 고급아파트. 현지 회사들은 마감공사를 하지 않고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골조 분양'을 주로 하고 있다.


◇건설붐 타고 국내건설사 속속 상륙= 카자흐스탄은 지난 1991년 구소련 연방으로부터 독립한 후 초기부터 시장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2000년 이후에는 석유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연평균 10% 내외의 고도 성장을 하고 있다.

특히 아파트 등 주택개발 사업의 성장세는 눈부시다. 외국 기업 주재원, 주변 CIS 국가들로부터의 노동력 유입, 카자흐스탄 국민의 소득 증가, 2011년 알마티 동계 아시아경기대회 준비 등으로 주택 및 숙박업 관련 건축수요가 급증했다. 알마티에 집중되고 있는 인구를 분산시키고 건설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알마티 인근에 4개 도시를 건설할 예정이다.



건설붐을 타고 국내 건설업체들의 진출도 활발하다. 동일하이빌이 2004년 국내 건설사 최초로 카자흐스탄에 진출해 2005년 9월 아스타나시 대통령궁 앞에 '하이빌 타운' 380가구 1차 분양을 마친데 이어 2009년까지 단계적으로 66㎡(20평)~396㎡(120평) 아파트 3000여가국을 분양할 예정이다. 우림건설은 알마티 시내에 3500세대의 대규모 고급 주상 복합단지와 비즈니스센터인 '애플타운'을 2013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중이다. 10, 11월 중 첫 분양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 밖에 성원건설, 범양건영, 삼부토건 등도 사업에 착수했거나 MOU 체결 등을 통해 현지사업에 나서고 있다.

강희운 성원건설 중앙아시아 지역본부 사장은 "아직 노후 시설이 많아 주거환경이 개선돼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곳 시장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한국형 아파트의 경쟁력에 대한 기대도 크다. 카자흐스탄 현지 건설사들은 내부 마감 공사는 입주자들이 직접 하도록 하는 '골조 분양'을 하고 있다.


고경수 우리은행 부부장은 "한국형 아파트에 대한 경쟁력이 하이빌타운 분양에서 확인됐다"며 "알미타에서 처음으로 분양하는 우림 애플타운에 대한 기대도 높다"고 말했다.
↑우림건설이 알마티시에 건설하고 있는 대규모 고급 주상복합단지, '애플타운'의 모델하우스 외관. 2조5000억 ~3조원의 매출이 예상돼 해외 주택건설사업으로는 사상최대 규모다.  <br>
↑우림건설이 알마티시에 건설하고 있는 대규모 고급 주상복합단지, '애플타운'의 모델하우스 외관. 2조5000억 ~3조원의 매출이 예상돼 해외 주택건설사업으로는 사상최대 규모다.
◇중견 건설사-은행 IB '윈윈'= 국내 건설사들의 카자흐스탄 진출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국내은행들의 PF다. 국내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영업에 부진을 겪고 있던 건설업체들과 은행 IB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 우리은행은 우림건설의 애플타운 공사 PF 자금 2000억원 중 800억원을, 성원건설이 짓고 있는 '상떼빌-1' 공사 PF자금 300억원 중 90억원을 각각 지원한다.

신한은행은 하이빌타운을 공사를 하고 있는 동일하이빌에 대출 형태로 200억원을 지원한데 이어 범양건영이 진행하고 있는 아파트 건설과 상가 건물 공사에도 각각 200억원씩 PF 자금을 지원했다. 기업은행도 성원건설의 '상떼빌-2' 건설사업에 PF 자금 200억원을 공급한다.



국내은행들의 PF 지원은 현지금융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함과 동시에 건설업체의 신용도를 높여주는 역할도 한다. 특히 카자스흐탄에 진출한 건설사들이 대형사들이 아닌 중견건설사들이라는 점에서 은행의 지원은 더욱 요긴하다.

강희운 사장은 "이곳에서 성원건설이 어떤 회사인지 알기 어렵다"며 "한국 금융기관이 금융지원을 한다고 하면 인허가 등을 받는 과정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노용훈 신한은행 글로벌사업부 CIS지역 팀장은 "국내은행들이 과거에 해외진출을 할 때도 유럽, 미국 등 선진시장이 아니라 카자흐스탄 등 개발 수요 있는 곳을 중심으로 지점을 냈더라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자흐 누비는 한국 불도저, 은행원
◇부동산 거품 우려, 높아지는 문턱= 카자흐스탄 PF에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최근 몇년새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것이 부담이다. 주카자흐스탄 대사관이 지난 6월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알마티의 아파트 평균 가격 상승률은 지난 2005년 44%, 지난해에는 71.5% 급등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카자흐스탄 현지은행들이 대출 금리를 인상한 것도 '거품 붕괴'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현지 시행사 관계자는 "특히 대형 아파트들의 가격이 많이 올랐다"며 "대형 아파트들의 분양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아파트들은 분양에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고경수 부부장은 "현재 은행들이 PF 지원을 하고 있는 사업들은 가격이 지금처럼 오르기 전에 토지와 사업권을 확보한 것이 대부분"이라며 "충분히 경쟁력 있는 분양가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의 각종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도 영업여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올해 4월 알마티의 무분별한 난개발을 방지하기 위해 아파트 신규사업 인허가 규정을 대폭 강화했고, 분양시점도 토지매입을 완료와 건축허가 취득시 가능하던 것이 올해 7월1일부터는 기초공사 완료후 분양을 할 수 있도록 법제화됐다.

토지수용의 어려움도 현지에 진출한 건설업체들이 부딪히는 난관이다. 국내의 경우 '알박기' 방지를 위한 법안들이 도입돼 있는 반면 카자흐스탄은 100%를 모두 사들여야 공사를 할 수 있다. 한채라도 안팔고 버티면 공사를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고경수 부부장은 "현재 시점에서 아파트 건설 사업을 새로 하기는 부담이 적지 않다"며 "도로, 다리, 상하수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쪽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현지 전문가는 "카자흐스탄 정부에서도 이제 자기 것을 챙기려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등 이곳도 만만한 시장 아니다"며 "국내 기업들이 좀더 이른 시점에 카자흐스탄에 진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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