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시장]남북경협과 한미FTA 재협상

송기호 변호사 2007.10.0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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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올 2월 한미경제연구소 초청 강연에서 한국 경제가 풀어야 할 세 가지 과제로 투자부진, 양극화, 그리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제시했다. 정 전 총장이 제 2차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되는 이때에 같은 주제로 강연을 한다면 남북경제협력을 또 하나의 과제로 추가할 듯하다.

국제통상법의 측면에서 볼 때 남북경제협력에서 중요한 과제는 남북경제공동체라는 경제 단위가 국제적으로 승인받는 일이다. 남북관계는 세계화 환경을 피해 갈 수 없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는 한국이 북한산 제품을 무관세로 수입한다든지, 북한과의 교역에 보조금을 지급한다든지 하는 것은 금지 사항이다. 남북경제공동체가 국제 규범으로 승인되지 않는 한 남북경제협력은 모래성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구 서독이 1951년에 가트(GATT)에 가입하면서, 구 동독과의 민족 내부 간 거래를 가트 규범으로 승인받았던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그러나 한국은 1994년에, 농업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WTO에 서둘러 가입하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민족 내부간 교역의 WTO 규범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외면되었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조급함과 오류가 한미 FTA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 FTA에는 남북경제공동체를 배려하는 조항이 없다. 아예 별도의 조문까지 두어 비무장 지대 이북에 거주한 북한 사람에게는 한미 FTA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게다가 영토조항이 있어 남한만을 적용 지역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협상 실무 대표였던 카란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 부대표는 지난 6월, 미국 의회의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하여 한미 FTA에서의 남한의 영토는 현재 남한의 영토로 인정되고 있는 부분에 한한다는 사실은 국제법상 분명하다고 증언하였다.



정부는 얼버무리고 있지만, 한미 FTA의 개성공단조항이라는 것은 한미 FTA가 설령 발효되더라도 다시 미국 의회의 동의를 얻어 개정되지 않는 한 개성공단 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될 수 없도록 되어 있다.(한미 FTA 부속서 22-B)

이러한 한미 FTA 아래에서는 남북경제공동체의 국제규범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8월, 중국-홍콩 사이의 경제 파트너쉽 강화협정(CEPA)을 참고하여 남북한 CEPA를 체결하는 것을 남북경제공동체의 국제규범화 방안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국제법적으로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지만 북한은 남한의 일부가 아니다. 더욱이 남북이 그저 어떤 협정을 맺는다고 해서 바로 WTO 규범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유럽연합은 아프리카·카리브해·태평양의 70여 국가들과 포괄적 경제협정인 로메협정을 맺고 이에 따른 특혜조치를 펴다 WTO 위반판정을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시한 방안의 더 큰 문제점은 장차 북한이 WTO에 가입하기 위해 150개의 WTO 회원국과 가입 협상을 벌일 때 드러날 것이다. 이 가입 협상에서 남북CEPA는 아무런 국제적 규범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남북경제공동체의 국제규범화의 시금석은 한미 FTA이다. 정운찬 전 총장은 한미 FTA가 우리 경제의 국내외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FTA는 남북경제공동체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재검토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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