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그린스펀의 고민과 87년의 '데자뷰'

위문복 증권연구가(하나대투증권 팀장) 2007.09.10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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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금요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미국 학술지 `브루킹스 페이퍼스`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강연했다고 보도하였다.

"지난 7주간 시장 움직임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현 금융위기는 1987년 주가 대폭락, 1998년 LTCM 파산은 물론 1837년 부동산 버블 붕괴, 1907년 은행위기와도 유사하다"



이런 보도와 고용지표의 악화 소식에 맞물려 지난 주말 미국 증시는 비교적 큰 폭으로 하락 마감하였다. 3주 연속 반등에 성공하였으나 우리 증시도 번번히 1900선 돌파에 실패하였고 월요일을 앞둔 우리 증시 분위기도 조정 전망이 우세하다.

오랫동안 기술적 분석을 해온 필자는 지금의 우리 증시가 세계 증시의 역사에서 여러 차례 나타났던 고점 패턴과 유사해 지난 달부터 주의 깊게 분석하던 중 접한 그린스펀의 발언은 예사롭지가 않다. 특히 1987년 10월 19일의 “블랙먼데이”까지 직접 언급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당시의 주가 흐름과 현재의 증시 환경을 비교 분석해 보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기우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혹시라도 그린스펀의 경고가 현실화 된다면 미리 준비하고 있는 투자자와 그렇지 않은 투자자의 위기관리 방법은 달라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그래프는 1987년 1년간의 다우지수 일봉 그래프이다.



[기고]그린스펀의 고민과 87년의 '데자뷰'


처음으로 본 인물·광경·사건을 과거의 어느 때 어디서 보았거나 체험한 것 같지만 그것이 언제였는지 알 수 없는 느낌을 데자뷰(Dejavu, 기시감, 旣視感)라 하는데 이는 기억 오류(誤謬)의 특수한 형태이다. 영화의 소재로도 등장하는 이 현상은 주식 시장의 참가자들도 느끼곤 하며 분석가는 이를 기술적 분석 도구 중 몇 종류의 패턴분석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면 여기서 필자는 1987년 당시의 다우지수 주가 흐름과 현재의 세계증시, 특히 우리 증시와 비교 분석을 통해 그린스펀의 경고가 현실화 될 가능성을 점검 해 보도록 하겠다. 다음은 1987년 7월부터 10월 2일까지의 다우지수 일목균형표 일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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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부터 16년간 1천선의 박스권에 갇혀있던 다우 지수는 1982년에 769p에서 마지막 바닥을 찍은 후 1983년 1천선을 돌파한 후 1987년 8월 3000선마저도 넘보는 폭등세를 이어갔다. 기업연금제 도입과 적립식 펀드, M&A열풍으로 5년간 지속적으로 상승하던 다우 지수는 1987년 8월 25일(화) 2736p를 기록한 후 20여일간 8.4% 하락을 한 후 9월 22일(화)부터 열흘 가량 반등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반등은 구름대(양운) 상단인 선행스팬1의 저항을 받고 재차 하락에 접어든다.


일목균형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후행선이 위치한 기본수치 26일을 큰 변곡점이 나타날 가능성이 큰 시점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하루 이틀 정도의 오차는 있더라도 그 시점을 전후해 기존의 추세가 바뀔 가능성에 배팅을 거는 경우도 많이 있다. 어쨌든 28일째가 되는 10월 2일(금)에 고점을 기록한 다우지수는 열흘 가량 하락을 지속하다 결국 10월 19일(월) 하루에만 22%가량 폭락을 하였고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에 1120p가 하락하여 세계 증시 역사에 중요한 기록을 남기게 된다. 이듬해 1월의 “브레디 보고서(Brady's report)”는 이 때의 폭락 원인으로 선물/옵션과 연계된 프로그램 매매을 들었다.

이러한 기본 자료를 가지고 그린스펀이 경고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 증시를 분석해 보자. 다음은 6월부터 현재까지의 KOSPI 일목균형표 일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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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부터 1982년의 미국 다우지수처럼 1989년부터 2004년까지 16년간 1천선의 박스권에 갇혀있던 우리 증시도 2003년 이라크전을 시작으로 상승세로 접어들었다. 적립식펀드와 M&A 열풍 등에 힘입어 2005년 1천선을 돌파한 증시는 올해 7월 2000p 마저도 돌파하는 폭등세를 보였다. 그러나 외국인의 현선물 매도세로 시장은 급락세로 돌아섰고 16일간 18.2%, 390p 폭락을 하였다. 필자도 1970p를 돌파할 당시 머니투데이 “내일의 전략”코너에 “용기있는 조정론”과 ”엘리어트파동론자를 위한 변명”이라는 기고문에 4년 여간의 상승파동을 마감한 우리 증시가 400p 정도의 조정을 보일 가능성을 제기하였었다.

7월 26일(목) 고점(2015p)을 기록한 우리 증시는 17일(금) 반등을 시작하여 하락의 68.4%를 되돌렸다.그러나 9월 4일(화) 이후 일목균형표의 구름대(양운) 상단인 “선행스팬1”이 위치한 1899p선을 4차례나 터치하였으나 번번히 실패를 하였고 오히려 지난 금요일 미 증시의 하락으로 주초 우리 증시는 조정의 압력이 더 강하다. 최근 저점 1626p 이후의 상승세가 새로운 상승파동의 시작인지 아니면 하락 중의 단순 반등인지는 이번 주의 증시 흐름이 관건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그린스펀의 발언 중에는 “지난 7주간 시장 움직임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라는 내용이 있다.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는 지난 3월에도 발생했으나 그린스펀의 시각에는 최근 7주간의 신용위기 사태가 매우 우려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지난 7주간의 세계 증시 상황은 어떤가? 다음의 그래프는 최근 3개월간의 다우존스 산업지수와 운송지수 주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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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산업지수의 주봉을 분석해 보면 증시는 주간 저점 이후 큰폭의 반등을 하였지만 종가 기준으로는 저점 붕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오히려 다우 운송지수의 상황은 더 위험한데 지난 주말 종가상 저점을 하회하여 “삼선전환도”같은 지표는 추가 음전환이 되어버렸다. 특히 운송지수는 “다우이론”에서 보듯이 그 선행성으로 인해 미국의 많은 분석가들을 긴장시키고 있을 것이다.

7주 전에 발생한 주봉의 장대 음봉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뉴욕 증권 시장을 보고 있는 그린스펀에게는 부임 첫해인 1987년의 악몽이 떠올라 그러한 경고를 보내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1987년의 다우지수 주봉과 현재 우리 KOSPI의 주봉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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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당시 4주간의 하락으로 주봉 삼선전환도는 2개의 음전환이 되었으나 2주간의 반등에도 불구하고 양전환에 실패한 증시는 재차 하락세로 돌아서 “블랙먼데이”의 쓰라린 고통을 겪었다. 우리의 KOSPI도 4주간의 하락으로 주봉 삼선전환도가 음전환이 되었으며 3주간의 반등에도 불구 아직 양전환이 되지 못한 상태이다. 향후 주간 양전환이 되려면 주 종가상 1983p를 돌파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에는 1987년 10월 2일 당시의 다우지수 월봉과 9월 7일 현재 우리의 KOSPI 월봉을 비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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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8월 당시 고점을 기록한 다우지수는 9월 급락을 맞았으나 월말 반등에 성공을 하여 아래꼬리가 긴 음봉으로 마감을 하였다. 그러나 위의 다우지수 월봉에서 보듯이 10월 들어 이틀간 반등세를 이어가던 다우지수는 결국 하락세로 돌아서 장대 음봉을 기록하게 된다. 현재의 KOSPI 지수도 7월 고점을 기록한 이후 8월 300p 이상 급락을 하기도 하였지만 중순 이후 급반등에 성공을 하여 아래 꼬리가 매우 크고 몸통이 작은 음봉으로 마감하였다. 9월 들어서도 반등을 지속하여 소폭의 상승세를 기록 중인 KOSPI월봉도 그린스펀의 경고가 현실화 된다면 재차 음봉을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KOSPI의 삼선전환도 월봉은 현재 양전환 된 이후 변화가 없는 상태이며 추가 양전환 지수는 1933p이며 음전환 지수는 1542p이다.

한편 이번 그린스펀의 경고가 나온 배경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증시의 상승파동 마감과도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MSCI 세계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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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라크전 이후 상승세를 기록했던 세계지수는 지난 5년 여간 우리의 증시 흐름과 매우 밀접한 흐름을 보였다. 2004년의 조정과 2006년의 조정을 거친 세계지수는 최근 급락을 보인 이후 최근 50%의 반등을 하였다. 그런데 이 지수의 산술차트(청색)에 비해 로그차트(적색)는 기존 상승 추세의 일시 붕괴현상을 보이고 있다. 즉, 이미 세계지수의 상승 파동은 마감이 되었으며 지금은 조정기임을 보여주는 단서로 볼 수 가 있는 것이다. 우리 증시의 반등 지속 여부와 함께 세계 지수의 흐름을 살펴 볼 일이다.



물론 다음의 그래프에서 보듯이 1987년 당시의 다우지수도 상승 5파가 마감된 이후 급락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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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후의 우리의 증시도 지난 7월 5파가 종료되었다고 가정할 때 최근 400p의 폭락으로 조정이 마무리 되었는지 아니면 한차례 조정이 더 남았는지, 그리고 조정이 남았다면 미달형 또는 플랫파동이 될지 아니면 저점을 깨는 지그재그 파동이 될지를 고민해 볼 일이다.

그린스펀의 경고 중에는 미국의 신용위기와 함께 세계 증시의 유동성 문제도 지적하고 있다. 다음의 달러인덱스(녹색) 그래프에서 보듯이 1987년 증시 급락은 급격한 달러 약세기에 나타났으며 현재의 달러 약세도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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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약세로 인해 유동성의 미국 이탈이 가속화될 경우 증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한 일이다. 게다가 1987년 당시의 포트폴리오 보험에 의한 기계적 매도를 대신해 현재는 선물과 연계된 과다한 차익거래 잔고와 계량모델을 활용하는 퀀트펀드(Quant Fund)가 그린스펀의 경고를 현실화 시킬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강연 내용의 말미에 그린스펀은 “인류는 아직 단 한 번도 거품에 맞설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비관적 전망도 내놓았다. 기우에 불과할지도 모르나 늙은 그린스펀의 경고를 무시하고 넘기기에는 20년 전의 데자뷰 현상이 너무나도 생생하다.

"Those who can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
( George Santayana, The Life of Reason, 1905.)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저주를 받게 된다는 말은 증권시장에서도 꼭 필요한 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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