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페소문제 징후보이는 경제상황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2007.09.1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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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우리경제는 양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출호조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설비투자가 꾸준히 증가세를 보였다. 오랜만에 수출과 내수가 균형을 이루며 견조하게 증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자아냈다.

8월에 본격적으로 불거진 미국 서브프라임발 국제금융시장 불안은 올 하반기 경제의 모습이 상반기에 비해 사뭇 다르게 만들 가능성을 크게 높였다. 따라서 최근 발표되고 있는 양호한 모습의 7월까지 우리 경제지표들이 앞으로 상황을 판단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우리 경제상황이 좋고 문제가 없을 것이라 공언하는 것을 보면 내심 걱정이 된다.



경제이론 중에 ‘페소 문제’라는 것이 있다. 1970년대 초 시카고대학의 밀턴 프리드먼이 미 달러화 대비 멕시코 페소 환율이 고정된 수준에 유지되기에는 미국과 멕시코의 금리차가 오래동안 너무 크게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의 상황은 요즘의 엔케리 거래와 같이 미국 자금이 금리가 높은 멕시코로 이동하여 높은 이자소득을 벌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자금의 이동이 없었기 때문에 고정환율이 유지될 수 있었다.



이에대해 당시 미국 투자자들이 페소화 절하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제기됐다. 그리고 실제로 몇 년후 페소화가 50% 가까이 절하됐다. 그 이후 페소문제는 환율, 자산가격 등의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양상을 설명하는데 쓰인다.

향후 발생할 가능성은 작지만 실현될 경우 대상 상품가격에 영향이 큰상황이 기대될 때 그 상품의 현재가격이 상식적인 수준과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다. 설령 지금 날씨가 화창해도 장대비가 걱정되면 계곡으로 놀러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작금의 금융시장의 모습도 일종의 페소문제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주가 지수의 변동폭이 상당히 크다. 경제지표가 양호해서 증가세를 보이다가 어느 날은 수백 포인트나 떨어진다.


시장에서 서브프라임 문제가 더 본격화되어 금융시장 전반의 경색을 가져오고 실물경제가 따를지 모른다는 우려가 줄어들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실제로 8월 소비자기대지수, 고용, 주택경기 지표 등은 좋지 않았다.

문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채권이 다양한 금융상품에 포함돼 광범위하게 분산돼 있어 지금까지의 조치들이 불안해진 투자가들의 심리를 안정시키고 국제금융시장 정상화를 달성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 여파로 미국의 주택시장이 추가로 악화되면 내년 경제에 대해서도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의 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러 전망기관들은 2%대 초반으로 예상되었던 2007년 미국 성장률을 1% 후반으로 낮추고 있다.

미국경기 둔화는 대미수출 의존도가 높은 중국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만약 중국 위안화의 절상이 맞물리면 수출둔화는 더 커질 것이다. 우리의 대중 수출증가세 둔화가 불가피 해질 수 있다.

정책은 개별 금융지표의 안정에 치중하기 보다는 전반적인 경제심리 안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지금의 불안은 엉뚱한 곳에서 문제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폭우가 내릴 가능성에 대비해 집안의 침수피해를 막는 준비가 필요하다.



금융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금리인하 등의 조치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작금의 불안상황이 과거처럼 대선의 해에 경제위기로 이어지는 일을 막아야 한다. 금년이 외환위기 10주년이 되는 해인데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정부, 민간 모두 긴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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