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債, 절반도 안 팔렸다

머니투데이 황은재 기자 2007.09.03 11:23
글자크기

"대우證 '실적 쌓기'용 무리한 주선" VS "투자매력 충분"

기아자동차가 지난 8월말 발행한 회사채가 아직도 시장에서 절반도 채 소화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투신권을 비롯한 주요 회사채 투자자들이 외면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보험사들만 매수에 나서 대우증권 등 인수 증권사들이 무리한 영업으로 화를 자초했다는 지적마저 일고 있다.

또 회사채 발행 과정에서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그룹의 금융 네트워크를 배경으로 '밀어내기(채권 매수 강요)'에 나섰다는 설이 제기되는 등 뒷말이 무성하다.



기아차債 안팔려 증권사 부담↑

3일 마켓포인트와 채권평가사 등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기아자동차(270회)가 발행한 회사채 2000억원의 유통량은 29일까지 900억원으로 집계됐다.



기아차 회사채를 인수한 증권사와 투자자간의 거래가 단 한 번씩만 있었다는 가정을 하면 2000억원 가운데 최대 900억원만 팔린 것으로 인수 증권사들이 1100억원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지난달 대규모로 발행된 우리금융지주의 회사채 발행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우리금융지주는 5000억원을 발행했지만 8100억원이 거래되는 등 활발한 거래 실적을 기록했다.

우리금융지주가 AAA로 최우량 등급이고, 기아자동차가 AA-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아차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료제공:마켓포인트▲자료제공:마켓포인트


우리금융지주가 AAA로 최우량 등급이고, 기아자동차가 AA-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아차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아차채권은 발행 당일 24일 5.73%에 거래됐지만 다음 영업일인 27일 10bp나 오른 5.83%에 거래됐다. 나이스채권평가는 "올 초 부터 불거진 신용 이슈로 인해 여전히 시장에서 매력적이지 못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회사채 매출이 부진하면서 기아자동차 채권을 인수한 증권사들도 손실을 보고 있다. 채권 발행 이후 금리가 오르면서 31일 현재 1만원당 20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2000억원 기준으로 보면 불과 일주일도 안돼 4억원을 손해본 셈이다.

▲자료제공:KIS채권평가▲자료제공:KIS채권평가
기아차 3년물의 자기등급(AA-)대비 스프레드가 0.12~0.13%포인트(12~13bp)인 점을 감안하면, 24일 발행된 기아차 270회 채권의 신용스프레드의 상승 가능성도 있다.

한 채권평가사 관계자는 "기아차가 자기등급대비 스프레드보다 8~9bp 낮은 수준에서 발행돼 평가상의 애로가 있다"며 "차츰 기아차의 평가수익률을 따라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대해 증권사 관계자는 "기아자동차 인수수수료가 30bp이기 때문에 신용스프레드 상승으로 증권사가 손해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리 상승으로 현재 4억원 가량 손실을 봤고, 신용스프레드가 10bp 이상으로 오를 경우 증권사는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

"우리(기아차)가 팔아줄께..걱정마"(?)

기아차는 당초 입찰 방식으로 채권 발행을 추진했지만 투자 수요를 조사한 결과, 입찰로는 투자자 확보가 어렵다는 판단에 이르렀고 결국 입찰 방식을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또 기아차는 회사채 인수 증권사에 일종의 거래를 시도했다. 할인점이나 대규모 유통점에서 흔히 쓰는 마케팅 전략 가운데 하나인 '1+1'행사였다. 증권사가 200억원을 인수하면 절반인 100억원에 대해서는 기아차가 매출처(투자자)를 잡아주겠다는 것.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기아차가 200억원을 인수할 경우 100억원은 팔아주겠다는 제의를 해서 인수 검토를 했다"며 "그러나 인수를 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100억원은 기아차가 팔아준다고 하더라도 남은 100억원을 매출할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런 관행에 대해 특별할 게 없다는 모습이다. 발행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발행사가 직접 나서서 채권을 팔아주는 영업방식이 심심치 않게 동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의 크레딧애널리스트는 "자금력이 막강한 대기업이 예금 금융사를 부릴 수 있는 수단은 다양하다"며 "기업들이 한 두번은 우겨서 채권을 팔 수 있지만 기아차의 경우 대규모 발행이 더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다음에는 어떻게 소화할 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번에 발행된 채권 가운데 일부는 생보사로 매출됐고, 현대자동차와 금융 거래가 있는 운용사들도 채권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 회사채 주선실적 높이다 큰 것 잃을라"



대우증권의 기아차 발행 주관은 실적 쌓기 성격이 짙다는 평가다.

월 1조4000억원정도 회사채가 발행되는 가운데 2000억원이면 대규모다. 또 기아차 회사채 인수를 통해 향후 현대차와 기아차의 채권발행을 주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회사채 주선 1위였던 대우증권은 올 상반기 현재 7위로 떨어졌다. 1위는 SK증권이 차지했다.

증권사 관계자는 "브로커리지 업무가 대부분인 국내 IB(투자은행) 시장에서 실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며 "회사채 주관 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기아차를 주선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우증권은 그러나 기아차에 대해 시장의 우려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대우증권 관계자는 "기아차의 유동성 사정과 금리 수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투자매력이 있다"며 "두산메카텍이나 대림코퍼레이션도 회사채 발행 이후 한동안 투자자들에게 팔리지 않았었던 점 등에 비춰 성급한 판단을 내릴 시점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