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98년 폭락과 같은 점, 다른점

머니투데이 유일한 기자 2007.08.2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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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세계 투자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지난주 폭락에서 벗어나는 조짐을 보이는 증시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금융시장을 옥죄고 있는 신용경색이 '지나가는 태풍'인지 아니면 '더 오래 지속되는 악재'가 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87년과 1998년 있었던 두 차례 급락과 2007년8월을 비교하면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며 자세히 소개했다. 이를 통해 중앙은행(FRB)가 현시점에서 어떻게 해야하는 지도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과거와 현재의 상황은
87년과 98년 7월에서 8월까지 주식시장은 급락했다. 9월에는 다소 진정되는 기미를 보였지만 10월 더 강하게 하락했다. 현재 시장은 당시와 유사하게 움직일 수도 있고 아니면 중앙은행의 개입으로 안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두 차례 조정에서 그리고 이번 하락 국면에서 조정은 컴퓨터에 기반한 매도가 폭발하며 급락세로 돌변했다.



87년 폭락은 최초의 기업인수(바이아웃) 붐 동안 발생했다. 낙관론을 지닌 투자자들은 주가가 수년간 더 오를 것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허물어졌다. 98년에는 롱텀캐피털매니저먼트(LCTM)라는 거대한 헤지펀드가 망가졌고 중앙은행이 급하게 개입했다.

올해에는 텍사스 최대 전력업체인 TXU가 사모펀드에 320억달러에 매각됐으며, 학자금 대출업체인 샐리매(SLM) 역시 250억달러에 매각됐다. 그러나 신용경색 폭풍이 불어닥치며 베어스턴스의 2개 펀드가 자산을 대부분 잃고 파산보호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바이아웃의 정점에서 폭락이 온 것이다.

98년 중앙은행은 세번이나 금리를 인하했다. 87년 중앙은행은 10월에 있었던 '검은 월요일' 사건 이후 개입했고 시장은 금새 안정감을 찾았다.


중앙은행은 이번 사태에 98년처럼 초기부터 시장에 개입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그린스펀 전 FRB 의장과 달리 벤 버냉키 현 의장은 점진적인 접근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린스펀이 98년 했던 것과 달리 바로 금리를 인하하지 않고 재할인율을 낮추는 선택을 한 것이다. 버냉키는 인플레이션이 다시 꿈틀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예일대 교수인 로버스 쉴러는 지금 조정이 87년과 유사하다고 했다. 그는 이달초 주가가 하락하는 시기에 주식을 팔아 재무부 채권에 투자했다. 주식에는 3분의 1정도만 남겨뒀다. 그는 그러나 너무 성급했다고 후회한다.



쉴러 교수는 "99~2000년 당시보다 시장의 방향을 예측하기 너무 힘들다. 추가하락확률이 55대 45정도"라고 말했다.

◇천재로 불리던 컴퓨터, 매번 폭락의 원흉으로 지목
87, 98년과 지난주 급락의 가장 닮은 점은 왜 이렇게 많이 하락하는 지를 알 수 없다는데 있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소리없이 대량의 매도로 조정을 주도하기 때문. 종종 천재로 불리던 컴퓨터 프로그램이 매번 예측불허의 폭락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퀀트펀드, 복제품이 너무 많았다
이번 조정에는 수학적 모델에 기반한 헤지펀드가 주도했다. 프로그램에 강제된 대규모 매도가 일반적인 조정을 급락으로 몰고갔다. '퀀트펀드'로 불리는 이들 헤지펀드는 유사한 수익구조를 갖고 있다. 정체불명의 '괴물'이 주식을 대거 처분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일반 투자자들의 매도를 부추기기도 했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운용회사 글렌메드 트러스트의 고든 파울러 운용본부장은 "유사한 수익구조를 갖는 여러 퀀트펀드들이 시장이 통제할 수 없는 규모의 사자와 팔자를 일으켰다"며 "이는 마치 한 무리의 코끼리 떼가 작은 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라고 전했다. 파울러는 87년과 98년의 급락을 목격했다.

투자자들은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만 믿고 '롱온리'펀드(고전적 방식, 주식을 잘 골라 수익을 내는 방식)에서 자금을 빼 수십 억달러를 새로운 기법의 펀드에 넣었다. 퀀트펀드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퀀트펀드를 운용하는 컴퓨터는 다름 아니라 시장에 중립적인 포지션을 유지하는 가운데 비싼 것을 팔고 싼 것을 사는 롱숏 매니저와 같은 역할을 했다. 수익 기회에 베팅하는 동시에 손실 가능성에도 매도를 하는 전략이었다.



뉴욕에 있는 클리어브리지 어드바이저의 공동 운용본부장(주식 매니저)인 허쉬 코헨은 "어느날 저녁 퀀트 매니저와 있었는데 그들은 마치 나를 공룡 보듯 했다"며 "그럴싸하게 들리는 펀드지만 사실 알고보면 87년과 98년 보았던 펀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87년 포트폴리오 보험 펀드..시장을 능가하는 보험은 없다
87년 투자자들이 의존한 모델은 '포트폴리오 보험'으로 불리는 것이었다. 이 전략은 자신이 보유한 포트폴리오가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것에 대비해 지수선물이나 주식선물을 매도하는 방식으로 모델을 든다. 역사를 분석하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러나 이 전략은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의 모델을 사용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87년 주가가 하락하자 컴퓨터는 주식을 팔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대부분 헤지펀드가 그랬다는 것이고, 결국 시장이 소화할 수 잇는 한도를 넘어섰다. 이는 10월의 대폭락으로 이어졌다.

아틀란타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윌리엄 해크니는 "87년과 98년 모델은 실패했다"며 "87년초 금리와 인플레가 올라가는 가운데 주가가 오르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 보험에 가입했다는 것만 믿고 너무 무분별하게 행동했다"고 회고했다.



2007년 폭락에도 새로운 모델이라고 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컴퓨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무분별한 낙관, 레버리지의 위험 증폭
또다른 큰 교훈은 부채를 동원해 투자를 하는데서 위험이 온다는 것이다. 부채를 수반하는 투자가 항상 시장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주가가 하락하면 펀드는 빌린 돈을 갚기 위해 강제적으로 주식을 팔아야하고 이는 매도 압력을 배가시킨다. 장기간 주가상승으로 낙관론이 지나치게 팽패한 결과 돈을 빌려 투자(레버리지)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요즘에는 거대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대형 펀드들이 정크본드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더이상 자금조달이 여의치않고 87년처럼 바이아웃시장이 고통받기에 이른 것이다.



쉴러 교수는 "매수가 절정에 달한 시기에는 낙관론이 지배하기 때문에 어김없이 성급한 대출의 스탠더드가 생기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가 LCTM이다. 98년 LCTM은 미국채 시장에서 '큰손'이었다. 그해 여름 LCTM은 미국채와 러시아를 포함한 다른 채권시장에 매우 높은 레버리지를 동원했다. 애초 LCTM의 모델은 손실 위험이 매우 적은 것으로 짜여져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디폴트에 빠지자 레버리지가 컸던 펀드는 순간 파산에 직면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많은 투자자들에게 컴퓨터 모델과 레버리지에 대해 많은 것을 일깨웠다.



◇2007년 8월 급락이 과거와 다른 점..희망은 있다
차이점도 있다. 하나는 밸류에이션이다. 87년 당시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0배를 넘었다. 98년에도 비슷했다. 그러나 지금 PER은 20배에 훨씬 못미친다. 45년 이후 평균치인 16배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대신 이번에는 PER가 아니라 부채를 동원한 측면에서 거품이 더 강하다. 투자자들이 모기지 관련한 증권은 물론 듣도보지도 못한 등급의 정크본드에 몰려들었다. 투자은행은 수익기회만 있으면 부실자산이라할 지라도 증권을 발행했다.

다른 차이는 금리동향에도 있다. 2007년 국채금리는 상대적으로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다.



또다른 긍정적인 면도 있다. 87년과 98년 시장의 하락은 혹독했지만 짧았다는 점이다. 87년 36%, 98년 20% 무너졌지만 연간 수익률로 다우지수는 2.26%, 16.1% 각각 올랐다.

투자자들은 특히 87년 10월 19일의 폭락이 새로운 상승을 향한 바닥이었다는 기억도 갖고 있다.

◇급락후 과도한 반등은 또다른 고통을 양산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빠른 반등이 과도한 수준의 상승으로 치닫는다는 것도 유념해야한다. 87년 다음해인 88년 바이아웃 붐이 다시 형성됐지만 89년 무참하게 깨졌다. 90년 다우지수는 약세장으로 돌아섰다.



98년 IT주식의 랠리 이후 2000~2002년 증시는 버블 붕괴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밸류에이션, 중앙은행의 개입 이외에도 투자자들은 기업과 헤지펀드들이 위험에 빠지는지 점검해야한다. 현재의 신용경색을 푸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면 그만큼 경제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크고 자칫 침체도 몰고갈 수도 있다.

버튼 말키엘 프리스톤대 교수는 "시장이 회복하려면 87, 98년보다 빨리 올라가야한다"며 헤지펀드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말키엘 교수는 "베어스턴스나 골드만삭스 뿐 아니라 더 많은 펀드들이 매우 높은 레버리지를 취했고, 이중 상당부분은 수익을 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많은 펀드는 아마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모기지 담보부 증권에 투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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