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실물경제 파급효과 미치나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김병근 기자 2007.08.1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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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캐리 청산 도미노?…실제영향보다 과도한 시장 반응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신용경색 여파가 금융시장을 넘어 실물시장으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신용경색에 대한 우려는 미국 뉴욕 증시는 물론 한국,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 증시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증권시장 충격파가 워낙 커 일각에서는 이번 서브프라임으로 인한 신용 경색 우려를 두고 실체보다 과도한 불안 심리가 증폭된 일종의 '풍선효과'와 같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일각에서는 이번 위기가 실물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내놓은 서브프라임발 위기의 예상 손해액은 500억~1000억달러에 불과하다.

리먼브러더스는 "손해액이 2000억달러까지 늘어도 5000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저축액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며 전세계 채권시장 대비 0.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투자자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며, 이로 인한 실물 경제로 파급효과는 예상보다 크게 확대될 수 있다. 특히 유동성 과잉에 따른 자산 가격 고평가가 문제로 떠오른 만큼 자산 가격 거품 붕괴는 실물 경제에 어느정도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 신용경색 일파 만파,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실제로 서브프라임은 여파는 이미 주식시장은 물론 주택시장, 차입매수(LBO), 상품시장, 채권시장(자산담보부증권(CDO), 모기지채권) 등 다양한 금융 및 실물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세계 증권시장이 과도한 불확실성을 보이고 신용경색이 가시화되면서 그동안 이머징 마켓에 투자하며 세계 유동성 자금 공급에 일조했던 엔캐리트레이드도 대거 청산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머징 시장에서 투자를 정리한 후 이를 다시 엔화로 바꿔 대출을 갚다보니 엔화가치가 연일 강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



이날 엔케리 청산 자금이 몰리면서 엔/달러 환율은 지난주말 118.40에서 112.01까지 급락한 상황이다. 엔화 가치는 최근 9년래 최고 주간 상승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엔/유로 환율은 지난주 162.13엔에서 151.74엔으로 하락, 1999년 유로 도입 이후 최고 낙폭을 기록했다.

무타 세이치로 UBS 외환거래 팀장은 "투자자들이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했다"며 "엔화 수요가 강세를 꾸준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 주택 시장 경기 10년래 최악

서브프라임 모기지 우려를 야기한 미국 주택시장은 10년래 최악의 침체를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 상무부는 16일(현지시간) 7월 신규주택 착공건수가 138만1000건(연율)으로 전월대비 6.1% 급감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1997년 1월 이후 최저이며 월가 예상치인 140만건을 밑도는 수준이다.

고용시장도 악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주 신규실업수당청구건수는 32만2000명으로 전주보다 6000명 늘어났다. 지난 6월 이후 2개월래 최대 수준이다. 변동성이 적은 4주 이동평균 청구건수도 4750명 늘어난 31만2500명을 기록했다.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은 전날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신용위기로 미국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겠지만 경제가 견조한 만큼 침체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브프라임 폭풍이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한 이래 폴슨 장관이 서브프라임이 펀더멘털(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원자재 시장, 서브프라임 영향 가시권



서브프라임 사태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가 원자재 수요를 줄일 것이란 관측으로 구리 가격과 원유 가격이 급락했다. 향후 손실을 예상한 투자자들이 대거 '팔자'에 나섰기 때문이다.

전날 뉴욕상품거래소(NYSE)에서 구리 가격은 5%, 아연 가격은 8% 각각 급락하며 광산주를 나락으로 내몰았다. 세계 광산업계 1·2위업체인 BHP와 리오 틴토의 주가가 각각 7.3%, 7% 급락했다.

유가도 마찬가지. 전날 9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전날보다 3.18%(2.33달러) 떨어진 배럴당 71달러에 거래됐다. 여전히 북상중인 허리케인 '딘'을 앞에 두고 유가가 큰 폭 하락한 것은 심상치 않은 증거가 되고 있다.



위즈덤파이낸셜의 트레이더인 자차리 옥스먼은 "심각한 글로벌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구리, 원유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은 그동안 투기적인 수요와 함께 중국 경제가 초고속성장을 하면서 이들을 빨아들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급등세를 유지했다. 때문에 상품 가격 상승은 중국의 급성장에 따른 글로벌 경기 호황을 대변해왔다.

앞으로 상품 가격 급락이 지속될 경우 세계 경제의 앞날도 우울하다는 전망은 거세질 전망이다.



◇ LBO 시장 위축

사상 최대 규모의 차입매수(LBO)를 이끌던 사모펀드들도 최근 신용시장이 위축되면서 주춤하는 모습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기업 인수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고 이는 월가 투자은행들의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자금이 부족해지면서 겨우 잡은 인수기업을 도로 놓아줘야 할 형편에 놓인 사모펀드들도 늘고 있다. 회사채와 주식발행 등 직접조달 시장도 마비되면서 사모펀드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모기지 증권에 투자한 헤지펀드들도 대규모 손실과 환매 요구에 시달리면서 신용경색 우려를 키우는데 일조하고 있다. 헤지펀드들에 대한 대출은 거의 중단된 상황이다.

글로벌 주식시장 폭락으로 이미 인수·합병(M&A)이 성사된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 일부 거래 차질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투자자들이 차입매수를 위한 채권 및 대출 투자를 거부하면서 이미 몇몇 거래는 지연되고 있다. 세계 최대 제과업체인 영국 캐드베리 슈웹스는 미국 음료 자회사 매각을 연기했다. 영국의 버진 미디어도 한달새 주가가 19%나 폭락하자 회사 매각을 연기했다.

론스타 펀드도 어크레디트 홈 렌더스 인수를 완료하지 못할 수 있다고 밝혔다. 론스타는 "어크레디트 홈 렌더스가 공개매입을 완료할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라며 "어크레디트 홈 렌더스의 금융과 운용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사모펀드의 M&A 거래가 향후 몇개월간 중단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FT에 따르면 대형 투자은행들은 3000억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M&A 딜에 제공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최근 신용시장이 크게 경색되면서 이 자금의 집행은 당분간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모기지증권 거래 실종

서브프라임을 비롯해 우량 등급의 모기지 증권 거래도 실종된 상황이다.

지난 15일 블룸버그통신은 지난주 새로운 주택대출을 담보로 한 증권의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신규 발행 물량도 1주일 전의 거래 물량에 비해 87%가 감소한 13억달러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고 전했다.



스탠더드 앤 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3대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모기지에 기초한 자산담보부증권(CDO), 모기지증권(MBS) 등에 대한 신용등급을 대거 하향 조정하고 있다.

무디스는 지금까지 194억달러 규모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담보증권 691개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으며, 피치도 지난 3년간 신용등급을 부여해왔던 121억달러 규모의 모든 서브프라임 모기지 담보증권에 대한 등급 하향조정을 경고했다. S&P는 23억달러 규모의 모기지담보증권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그리고 일반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다. 기업들의 자금 차질은 결국 실물 경제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할 수 있다.



채권시장 부진과 함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의 영향으로 초단기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의 잔고가 지난주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주 MMF잔고는 703억달러 증가한 2조6810억달러로 불어나 직전 최고치인 지난 7일의 2조611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로 신용경색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금융시장이 혼란을 겪음에 따라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고 있는 MMF에 자금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 서브프라임 위기와 배경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지난해 시작된 주택 가격 하락에 기인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준 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린 반면 주택 가격은 하락하다보니 비우량 대출인 서브프라임에 먼저 충격이 온 것이다. 서브프라임 부실 위기는 보다 우량한 대출인 알트에이(Alt-A)로 번졌고, 이후 모기지 증권 발행시장은 큰 타격을 입었다.

결과적으로 채권 발행은 위축됐고 기업들의 회사채 시장도 위축됐다. 그리고 모기지증권에 투자했던 헤지펀드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지난 6월말 베어스턴스의 2개 헤지펀드 청산 위기는 이러한 우려를 폭발시키는 역할을 했고, 이는 전반적인 신용경색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맞물린 구조는 악순환을 양산하는 최악의 순환과정으로 접어들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문이 취약해 진 것은 2001년 9.11테러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테러 사태 이후 경기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FRB는 금리 인하에 나섰다. 당시 1년간 지속된 1% 금리는 모기지 대출을 눈덩이처럼 불리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다시 FRB가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금리 부담이 눈덩이처럼 늘어나자 대재난은 예고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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