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먹고싶다던 SC제일銀 '버터경영'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2007.07.1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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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제일은행 통합2년] (1) 글로벌스탠더드 갈등

 2006년 4월21일 존 필메리디스 SC제일은행장(사진)은 통합 1주년을 맞아 한국에서 토착화 노력을 자세히 설명하고 SC제일은행을 외국계 은행이 아닌 국내 은행으로 봐달라는 바람을 나타냈다.

비빔밥 먹고싶다던 SC제일銀 '버터경영'


이날 필메리디스 행장은 "해외 SCB네트워크 인원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불고기·비빔밥을 먹고 싶어한다"고 소개하면서 토착화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노사관계에 대해서도 "제일은행을 인수한 첫날부터 노조를 회사 직원들의 의견을 대표하는 동료로 간주했다"며 "노조와 술자리, 축구, 등산 등 다양한 접촉을 통해 친밀해졌고, 은행 발전을 위해 서로 손을 잡았다"고 했다. SC제일은행에 대해 토종은행보다 더 된장냄새 풍기는 외국계 토종을 자처한 셈이다.



 그로부터 1년이 더 지난 지금 SC제일은행은 된장냄새보다 버터냄새를 더 피운다는 지적이다. 상징적으로 노동조합이 본점 로비에서 두달째 농성 중이다. SC제일은행 노조의 농성은 임금인상·처우개선 등 다른 노조의 투쟁과 다르다. SC그룹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생각하는 운영방식을 잇따라 이식하면서 생겨난 문화적 갈등이다. 그러한 SC그룹의 행태 속에서 일할 동기는 침식당하고 있고 실적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를 믿지 못하는가…" =현재 SC제일은행의 임원은 모두 48명이다. 이중 교포 등 외국 국적 소유자를 제외한 순수 외국인은 60%가 넘는다. SC그룹의 글로벌 스탠더드 정책을 적용하기 위해 글로벌 본부에서 파견한 인력들이다. 또 2005년 80여명에 불과하던 전문계약직도 현재 250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기존 제일은행 출신들은 소외되고 있다며 서운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한 직원은 "외국인 경영진이 국내 직원들을 안 믿는 것같다"며 "기존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단기계약 외국인 임원 또는 전문계약직 영입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때문에 은행의 정책이 개인성과 중심의 단기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소외감은 커졌으나 커뮤니케이션은 원활치 않다. 매일 글로벌 본부 및 외국인 임원들과 영어로 의사소통하는데 직원들이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 한 내부 소식통은 "영어가 글로벌 시대를 맞아 필수적인 것은 맞다"며 "그러나 현재 영어가 부족한 직원들은 수시로 외국에서 날아오는 e메일 처리에 본업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4월 통합1주년을 맞아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필메리디스 행장이 "한국어는 은행 내 공식어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영어 때문에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과 상반된 결과다.


◇글로벌 스탠더드 갈등 =이같은 문제는 최근 노사갈등으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최근 SC제일은행 노조는 두달 넘게 본점 로비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은행이 '클러스터 매니저'(CM)제도라는 생소한 관리제도를 도입해 CM이 영업점 직원들에 대한 성과 및 인사평가권을 행사하도록 한 것이 화근이 됐다. 노조는 이것이 한국적 영업현실에 안맞는 것이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으나 사측은 꼭 필요한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입장이어서 접점을 찾기 어려운 국면이다.
↑지난해 SC제일은은행장이 맞잡았다던 노조와의 손은 다시 떨어졌는가. <br>
지난 5일 임단투 승리결의대회를 가진 SC제일은행 노조.↑지난해 SC제일은은행장이 맞잡았다던 노조와의 손은 다시 떨어졌는가.
지난 5일 임단투 승리결의대회를 가진 SC제일은행 노조.
 클러스터매니저(CM)는 지역본부장과 영업점장의 중간에 위치한 '소본부장' 격이다. 현재 34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각각 10개 점포를 관리하면서 영업점 직원들에 대한 성과·인사평가권을 행사한다. 사실상 영업점의 CEO격인 지점장들이 졸지에 CM이라는 상관의 통제를 받게 돼 자체 권한을 상당폭 넘겨주게 된 셈이다.



 기존 직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의 소매영업 조직이 지점장을 중심으로 다져진 팀워크를 중시해왔다는 점을 간과한 일방적 조치라는 주장이다. 특히 일선에 배치된 영업장교인 지점장의 고유권한이 대폭 약화된 만큼 사기가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노조는 "전국 306개 영업점포를 사실상 34개로 줄이는 것과 다름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 측은 이같은 제도가 영업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공평한 인사평가제도를 정착시키는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외에도 1년 전 "노사가 손을 맞잡았다"는 행장의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노사의 신뢰는 금이 갔다. 노조는 지난해 10월 노사 합의 사안인 △본점 조직 축소 △영업인력 확충 △영업점포 확대 △임원 축소 및 국내 임원비율 확대 등 약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당시 노사는 196개 본점조직을 올연말까지 120개로 줄이고, 매년 200명씩 영업인력을 확충하며 약 40 -50개씩 점포를 매년 늘리기로 했었다.



SC제일은행 노조관계자는 "스탠다드차타드그룹이 인수한 후 2년 연속 국내 은행 최하위의 실적을 올리며 낙후된 경영능력을 여실히 노출했고, 더구나 은행으로서의 고유기능마저 상실해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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