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조 국민연금, 이젠 공격 운용…

머니투데이 홍혜영 기자 2007.07.04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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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2000시대, '큰 손'이 온다]국민연금, 국민 먹여살릴 바다로

편집자주 연기금과 은행, 보험 등 '큰 손'들의 자산운용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 국공채 등 안정자산 위주의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국내외 주식과 대체투자, 원자재, 해외 실물투자 등 위험자산 비중을 늘리고 있다. 국민연금 등은 그동안 정부재정으로만 더 이상 적자를 보전하기 힘들어 한단계 진일보한 자산운용전략에 골몰하고 있다. 은행, 보험권 등도 채권 위주 운용에서 탈피해 다양한 고수익 상품을 찾아 '환골탈태'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실정이다. 이에 머니투데이는 국내 연기금과 보험, 은행 등 '큰 손'들의 자산운용전략을 소개하고 향후 수익률 제고를 위한 합리적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갖는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되기 이전 국민연금은 주무 장관마저도 '재정파탄을 야기할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일컬을 정도로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비록 '용돈연금'이라는 비아냥을 듣고는 있지만 숨통이 다소나마 트이게 됐다.

이제 문제는 '얼마나 더 고갈 시기를 늦추면서 종잣돈을 불려가느냐'다. 한정된 돈으로 온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려면 그 만큼 돈을 '잘 굴려야' 하는 것이 자명하다.



지난해 국민연금 기금 운용 총 수익률은 5.77%다. 2012년까지 목표는 7.3% 수준.

국민연금이 수익률 1%포인트를 올릴 수 있다면 약 100만명의 1년치 이상의 연금 지급분을 충당할 수 있다. 또 고갈 시기가 현재 기준으로 5년 정도 연장된다.



국민연금이 수익률 1%포인트를 올리기 위해선 연 2조원을 더 벌어들여야 한다.
수익률 제고를 위해 국민연금은 최근 '중기 자산 배분안'을 통해 2012년까지 주식비중을 높이고 해외투자와 대체투자를 늘린다고 밝혔다.

해외투자를 위해 외국 기관들과 제휴를 맺는 등 현지법인 설립을 준비할 계획이다. 또 기업의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 200조 항공모험, 어떻게 굴릴까= 국민연금의 덩치는 200조원으로 세계 연기금 중에서도 4번째다. 세계적인 컨설팅업체인 왓슨 와이어트(Watson Wyatt)의 잡지 1월호에 따르면 2005년말 기준으로 한국의 국민연금이 일본, 노르웨이, 네덜란드에 이어 연기금 규모 세계 4위다. 덩치는 최상위급이지만 수익률은 위상에 못미친다.


3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04~2006년) 수익률을 비교한 결과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 캘퍼스(CalPERS)가 13.4%, 캐나다 연금투자이사회(CPPIB)가 19.6%, 덴마크 공적연금(ATP)가 13.2%에 이른다.

반면 국민연금은 같은기간 수익률이 6.6%에 그쳤다. 세계 주요 연기금 수익률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치인 셈이다.



성과 차이가 큰 것은 '자산 배분'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캘퍼스는 지난해 6월말 기준으로 전체 자산의 82%를 국내외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CPPIB는 지난해 3월말 기준으로 국내외 주식 비중이 69.3%,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BP)도 지난해 9월말 기준 주식 및 대체투자 비중이 53.2%로 전체 윤용자산의 절반 이상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말 기준으로 국내외 주식에 전체 기금의 11.7%를 투자할 뿐이다. 나머지 87% 이상이 채권에 투자된다.



현재의 자산배분 구조에서 주식 비중을 2012년까지 30%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국민연금 '중기 자산배분안'의 핵심이다.

오성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5~6년 뒤면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가 확실히 바뀔 것"이라고 자신한다.

◇ 외국 기관과 전략적 제휴…'해외로'=국민연금은 해외투자를 위해 외국계 기관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을 예정이다. 한해 20 명 정도의 직원을 대상으로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6개월간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해외투자를 위한 준비는 우선 해외 자산운용사, 투자은행(IB), 연기금과의 연계 등 3가지 축이 바탕이다.



이미 공개 비딩을 통해 크레딧스위스(CS), 모간스탠리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또 전 세계 동향을 살피고 리스크관리 시스템 및 자산관리 등을 배우기 위해 워싱턴의 월드뱅크와 손 잡았다. 세계적인 연기금인 네덜란드의 ABP, 캐다다의 CPPIB와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곡물, 금속, 원유 등 상품에 투자하는 방안도 준비중이다.
김희석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대체투자실장은 "상품 투자는 대체투자를 늘리는 방안 중 하나로, 국민연금법 개정후 시행할 예정"이라며 "ABP처럼 대체투자를 전문적으로 하는 자회사를 둘 것"이라고 말했다.

공격형 M&A도 적극 나선다. 국민연금은 신한지주가 LG카드를 인수할 때 재무적 투자자로 9,028억원을 투자했지만 경영권까지 확보하는 전략적 투자자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앞으로는 직접 M&A도 도외시하지 않을 예정이다. 의결권 행사에도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오 본부장은 "M&A는 대체투자, 주식투자의 일부"라며 "조건만 맞는다면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외환은행도 '좋은 딜(deal)'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다만 기금 가입자를 위한 경영권 지배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은 이미 사모투자펀드(PEF) 등을 통해 간접 M&A를 진행하고 있다.



김희석 실장은 "PEF를 통해 노비타 등 10여 개 기업의 경영권을 간접적으로 인수했다"며 "앞으로는 직접 인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또 주식 직접 투자와 사회책임투자(SRI) 펀드를 통해 의결권 행사에도 나선다. 오 본부장은 "SRI 는 세계적인 대세"라며 "국민연금의 장기투자 방향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6개 펀드에 3000억원을 위탁했다.

◇ '보이지 않는 신경전' = 국민연금은 올해부터 단기성과에 따라 자금 집행을 보류하거나 축소, 늘리는 방식을 택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기관들 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펼쳐졌다. 첫 '반기말 평가일'인 지난달 29일을 앞두고 운용사들마다 수익률 관리에 나섰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매년 6개월마다 33개 위탁 운용사 및 투자자문사의 성적을 평가해 등급을 매긴다. 각 등급별로 25% 씩, S A B C 4개 등급으로 나눈다. 단기 수익률이 높다고 높은 등급을 받지는 못한다. 6번 평가할 경우 3번 이상 A를 받으면 A등급이 되는 식이다.

평가할 때마다 과거 2년치를 누적해 평가하는 등 장기 성적을 중요시하지만 올해부터는 단기 성과에 따라 자금 집행액에 차등을 두기로 했다. 장기적으로 성적이 좋더라도 최단기 성과가 나쁘면 자금 집행이 보류되거나 규모가 줄어드는 셈이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을 담당하는 운용사의 한 펀드매니저는 "장기 성적 기록이 없는 운용사나 규모가 작은 투자자문사들로서는 생사가 걸린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단기 수익률이 높은 위탁운용사를 찾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함께할 '파트너십'을 유지할 운용사를 찾는 것이 목표다. 내년까지 4~5개 운용사를 발굴하는 것을 목적으로 수익률, 운용조직, 펀드매니저 적합성 등을 두루 보고 있다. 운용능력 전반을 평가하는 깁스(GIPS) 제도를 도입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은 과도기적인 단계로, 수익률 경쟁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볼때 국민연금 영향력에 따라 자산운용업계의 질적인 수준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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