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야기]노대통령이 못한 일을…

머니투데이 방형국 부장 2007.06.29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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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와 남미의 몇몇 나라들은 국기에 집을 그려 넣고 있다. 주택난이 상당히 심각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1965년 싱가포르 초대 총리로 취임하고 나서, 가장 관심을 가진 것 중 하나가 집문제였다. 엘리트로 구성된 공무원들의 주거문제를 말끔해 해결해줌으로써 집장만하느라 곁눈질 하지 말고, 청렴하게 국가에 헌신하라는 의미였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상·하수도차관과 함께 주택차관을 가장 낮은 이자율로 저개발국가에 제공한다. 국가·사회의 존립과 발전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인프라 시설로 물과 집이 도로나 항구에 앞서기 때문이다.



집이 국가와 사회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인프라 시설로 평가되는 것은 그안에 가족이 모여살며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고, 후손을 낳고 기르는 국가와 사회 영속성의 최소 단위인 때문이다.

정부가 집문제에 나서는 것은 그 책임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당연하다. 정책의 근본은 저소득 소외계층이 마음놓고 살 수 있는 집을 규모에 맞게 공급하는 일이다.



저소득층이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비축해놓은 집이 바로 사회 인프라 시설이다. 이러한 집은 수요와 공급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며, 자연스레 가격도 조절하는 선(善)의 기능을 하게된다.

우리의 주택정책이 적잖은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참여정부들어 집값잡기에 힘을 쏟는데, 이는 일시적으로 집값을 억누를 뿐 효과가 오래 갈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시장의 순기능을 왜곡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돈 있는 부자들이 얼마에 집을 사고 팔던 이는 그들의 문제일 뿐이다. 이것이 중류층을 포함한 대다수 서민에게 그 여파가 확산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이런 점에서 서울시와 산하 SH공사가 펼치고 있는 장기전세주택을 주목하고자 한다. 지난달 초 장지지구와 발산지구의 장기전세주택 청약경쟁률이 9.2대 1을 기록하며 1순위에 마감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었다.

장기전세주택을 소개하는 SH공사의 사이트가 다운되기도 했다. 인터넷에 어두운 40∼50대에 의해서다. 주택실수요자들이다.

장기전세주택이 인기가 높은 것은 주변 전세시세의 반값에 20년간 '내집처럼' 살 수 있어서다. 정치권이 '반값 아파트'로 수요자를 현혹시킬 때 서울시와 SH공사는 조용히 '반값 전세'를 기획, 서민들에게 주거안정의 빛을 드리운 것이다.

SH공사는 33, 45평 규모의 커다란 장기전세주택도 공급하고, 왕십리 등 요지의 주상복합아파트에도 장기전세를 짓겠다는 방침이다.

집을 살 때 사더라도, 싼 값에 장기전세주택에 살면서 높은 삶의 질을 누리며, 자녀들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어 그 인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SH공사는 최근 장기전세주택의 명칭을 '시프트'(SHift)로 바꿨다. 주택개념을 '사는 것'에서 '사는 곳'으로 전환시키겠다는 속 깊고, 야심찬 뜻이 담겨있다. '시프트'가 수요자들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아 집에 대한 개념이 바뀌기를 기대한다.

집을 국기에 그려넣은 아프리카나 남미의 몇몇 국가들에 못지 않게, 있으나 없으나 많은 우리 국민들도 집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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